조카 돌 반지
힘들지만, 함께해서 즐거웠다 ⑧
나에게는 나와 여섯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우리가 결혼하던 그 해에, 내 여동생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한 지 얼마 안 있어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낙엽이 지는 늦가을 즈음이었다.
내 여동생은 예전부터 결혼하면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고 말하고는 했었다. 형제가 나와 동생, 이렇게 둘 뿐이었기 때문인지, 동생은 평소 적어도 세 명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는 했었다. 맞벌이 기는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이기 때문에 아이 때문에 경력이 단절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하지만, 요즘은 건강한 부부 사이에서 임신을 해도, 아이가 건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결국 장기에 이상이 생겼다. 그대로는 산모도 아이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조카는 임신 7개월째에 제왕절개 수술로 세상에 태어나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 칠삭둥이로 태어난 조카는 그 후 잔병치레가 좀 있었지만, 다행히 무사히 자라났고, 돌이 다가왔다.
동생은, 돌잔치는 가족들끼리 조촐하게 할 생각이라고 했다. 요즘에는 서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회사 사람들을 초대하지 않고 가족들끼리 하는 경우도 많다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친가와 시댁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한 번에 모이기는 쉽지 않으니, 친가 쪽 식구끼리 한 번, 시댁 쪽 식구끼리 한 번, 이렇게 두 번 할 생각이라고 했다. 음식이나 그 외 준비할 것은 자신들이 할 테니 부담 갖지 말고 와서, 그냥 맛있게 먹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도 했다.
여동생의 연락을 받고 사실 난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돌잔치가 있으니, 참석해서 축하해 줘야겠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아무리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오라고 했어도, 조카가 돌을 맞이했는데 삼촌이면서 아무런 선물도 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잖아. 우리 돌 반지라도 어떻게 해서 든 하나 해 주자.”
다행한 것은, 그 당시 우리들이 금 한 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금 돼지가 달려있는 열쇠고리였는데, 회사에서 무슨 기념일에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근처 금은방을 찾아가서 팔았고, 그 돈으로 조카의 돌 반지를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여동생에게, 그리고 돌을 맞이한 조카에게, 오빠로서 또 삼촌으로서 해 줄 도리를 할 수 있었다. 조촐한 돌잔치에 우리가 준 선물을 받고, 여동생은 뜻밖의 선물이라며 너무도 좋아했다.
내 아내는 나보다 두 살이 어리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세상의 이치에 밝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내 아내는 잘 알고 있었다. 예의를 알고, 도리를 안다. 삶에 있어서 내 아내는 나보다 훨씬 현명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내 아내를 존경한다.
그런 모습을 가진 데에는, 장인어른, 그리고 장모님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 집안은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여유를 잃지 않았고, 항상 서로 농담을 던지며 웃을 줄 알았으니까. 그리고 가족을 위할 줄 알고, 도리를 알고, 항상 화목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내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도 힘들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아는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자기야.
생각해 보니, 그때 돌 반지 하나라도 해 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치를 알고, 예의를 알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할 줄 아는 현명한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