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식하는 날

힘들지만, 함께해서 즐거웠다 ⑨

by yangTV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은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날이 있었다.


바로 처갓댁에 가는 날이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취업 때문이었다. 낯선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퇴근하고 혼자서 밥을 먹을 때도 많았고, 빨래나 청소도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살고 있는 동네도 생소해서 주말에는 집 근처를 배회할 뿐, 어디 먼 곳으로 가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같이 만날 친구도 없었다. 당연히 난 문득문득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런 내가 낯선 타향살이를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내 아내와 처갓댁 식구들이 있었던 덕분일 것이다.


내 아내와 연애할 때, 난 자주 아내의 집에 놀러 갔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자주 놀러 갔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사귀고 있다 해도 결혼도 하기 전에 집안 어른들이 계시는 곳에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잖은 부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내가 아내에게 선물해 준 노트북이 고장 났다. 아내는 미안하지만 고쳐줄 수 있냐고 물어왔고, 난 기꺼이 그것을 수리해 주러 갔다. 처음 뵙는 어른들이 낯설었지만, 그것은 그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먼저 다가와서 말도 걸어 주시고, 타지에 혼자 와서 고생이 많다면서 저녁을 먹고 가라고도 말씀해 주셨다. 난 염치없지만 저녁을 얻어먹고 왔다. 그리고, 노트북을 수리해 준 이날을 계기로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처갓댁 어른들은 타향살이에 힘들어할 나를 위해 자주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해주시기도 하고, 와 있는 동안 불편해하지 않도록 배려도 해 주셨다.


결혼하고 우리는, 당연한 듯이 신혼집을 처갓댁 근처에 마련했다. 직장도 직장이지만, 아픈 아내를 위한 배려였다. 언제 갑자기 아내의 상태가 안 좋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도 내 아내도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처갓댁에 가는 것이 좋았다.


연애 때부터 같이 있던 시간이 많아서 인지, 처갓댁에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거나 싫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편하고 좋았다. 장인어른도, 장모님도,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처남도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무심한 듯 배려해 주는 그 마음이 좋았다. 처갓댁 식구들은 나를 사위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새로 자식이 생긴 것처럼 편하게 대해 주셨다. 격식을 차리거나 하지도 않았고,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항상 편하게 대해 주시니 어느 순간엔 마치 또 하나의 고향집이 생긴 것 같았다. 난 처갓댁에 놀러 가면 별 거부감 없이 바로 거실 바닥에 누워서 뒹굴뒹굴 거리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느낌인가 보다 생각했다.


우리는 주말이면 항상 처갓댁에 갔다. 그렇게 처갓댁에 가는 날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


“우리 외식하는 날”


힘든 생활 중에, 우리가 유일하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처갓댁도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오면 불고기를 해주시기도 하고, 삼계탕, 닭볶음탕, 뼈 해장국 등 집에서 흔히 먹기 힘든 음식을 자주 해 주셨다. 그러니 처갓댁에 가는 날이 외식하는 날이 아니고 뭐겠는가?


우리가 보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고, 어떻게 해서 든 우리들만의 힘으로 살아가 보려고 노력했던 그때, 우리에게 그 “외식하는 날”이 없었다면 조금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항상 처갓댁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고맙다.





사랑하는 자기야.


나에게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힘든 시기에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으니,

앞으로는 우리가 희망이 되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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