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 그릇으로 할 수 있는 일
힘들지만, 함께해서 즐거웠다 ⑫
힘들었던 시절. 아껴야 했던 우리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하지만, 그런 우리도 가끔은 식당 음식을 먹을 때가 있었다.
콩나물 국밥이었다.
우리는 정말 가끔 국밥 일 인분 또는 이 인분을 시켜서 포장해 왔다. 식당에 가서 먹으면 되지 왜 포장해 왔을까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식당에 가서 먹는 것과 포장하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큰 차이가 있었다.
식당에 가면 우선 각각 시켜야 한다. 즉, 둘이 식당에 가게 되면 이 인분을 꼭 시켜야 했다. 하지만, 포장은 다르다. 일 인분만 포장해도 된다. 한 푼이 아쉬운 우리에게, 그만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그리고, 포장하면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많이 국물을 준다는 것이다. 국물 양이 많아서 아껴서 먹으면 일 인분으로도 우리 둘이 먹을 수 있었다. 어쩌다 이 인분을 포장해 올 수 있으면 더 좋았다. 두 번, 많게는 세 번에 나누어 우리 둘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참고 참다가 정말 견디기 힘들 때면, 가끔 국밥을 포장해 왔다.
아내는 식당에서 국밥을 포장해 올 때면, 정말 좋아했다. 한 번 포장해 오면 이렇게 오래 먹을 수 있으니 식당은 절대로 못 가겠다며 너스레를 떨며 오히려 즐거워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이상하다.
다른 사람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면, 힘들어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며 불쌍하게 생각할지도 모를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매사에 즐거워했던 것 같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야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고 일부러 웃었던 것이 아니었다. 정말 행복해서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행복해서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같이 하면서 생긴 그러한 소소한 에피소드를, 우리는 괴로워하며 서로를 탓하기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상황을 즐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 아내 덕분이었다. 아내는 노력해도 안 되는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이해해 주었다. 그 흔한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고 내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 나는 그런 아내의 모습에 더 미안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국밥 한 그릇에도 그렇게 즐거워하고 서로를 보며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현명한 나의 아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자기야.
난 정말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주변에 경제적 어려움에 서로 싸우는 부부를 많이 봐.
우리가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너라는 존재가 있어서 가능했을 거야.
현명한 너를 존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