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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국에 살다

by 신지승


"우리는 그림을 보는 것보다는 그려야 하고 연주회에 가기보다는 악기를 연주해야 하며, 예술의 형식과

원리에 우리의 모든 감각을 집중하여 스스로 춤추고 노래하며 연기해야 한다. -

인간에게는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있는데 이러한 개성의 표출욕구와 창조성이 억압되기 때문에 사회의 각종 병리현상이 나타난다

예술을 표현하고 즐기는 것을 통해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허버트 리더 1966

21세기 문학관에서 2달 동안 글을 쓴다고 아이들과 떨어져 있었다. 영화의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 두 번째 책을 내겠다고 나름 결의에 찬 시간이었다. 증평역 대합실 서가에 꽂혀 있던 책. 처음 들어 보는 허버트 리더라는 작가의 책 '예술과 사회'였다. 책을 읽고 있을 바로 그 시간.. 양평의 숲 속 집에서 불이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어떤 미련에 그 책을 기차역 서가에 꽂아 놓지 않고 들고 기차를 탔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5톤 트럭을 타고 남양주 삼패한강공원, 아바이 마을, 속초 , 강릉의 수많은 주차장을 전전했다.


인간은 어딘가 떠나야 할 땐 생전 가 보지도 않은 곳을 찾거나 추억 속의 공간을 찾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추억의 공간을 선택했다.

아무도 없는 밤에만 몰래 주차장에서 밥 해 먹고 화장실에서 아이들 샤워시키지만 흔적이 남았는지

주차관리인들은 눈에 가시처럼 우리 가족을 대했다.

그냥 눈감아 주기를 기도하고 애원해 보았지만 그들도 야박하게 우리만을 특별히 대우할 수 없는 정치 위에 있었다. 우리는 복지 없는 작은 영토에 살면서 매번 영토를 바꾸어 살았다.


속초 아바이마을

아바이 마을해변가 항만과 가까운 구석진 도로

오래전엔 이 도로에 트럭을 세워놓으면 그만한 천국이 없었다

바다 가장 가까이에서 바다를 마주 보고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 밤이 지나자 차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여기 주차하면 안 돼요. 이렇게 큰 차를 대놓으면 다른 차가 지나가기가 힘들어요"

'차도 없고 옆으로 가면 되지요"

목소리도 컸고 체구도 컸고 눈도 컸다.

그런데 이리저리 사람의 표정을 살펴보니 그렇게 모진 사람 같지 않았다.

"여기 관리인이세요?

" 아닌데요? "

" 그런데 왜?"

" 마을을 위해...:"

"아 그러시군요"

"갈 데가 없어요.. 사실 집에 불이 나서 이 차밖에 남지 않았어요 "

"차가 크긴 크네요 "5톤 5명! 4 사람에 개 한 마리 까지"

이렇게 해서 말문이 터이고 알고 보니 그는 전 철인 3종경기 챔피언. 지금은 모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체인 '불고기파티' 푸드트럭 박사수대표였다.

사업이 망해 속초 바다 마을로 잠시 내려와 있었고 푸드트럭을 하지 않는 날은 연고도 없는 이 아바이마을을 위해 쓰레기를 줍고 해변 앞을 청소하며 살고 있었다. (박대표는 몇 년뒤 사업을 다시 일으켰다. 나의 초대로 외국감독들이 서울로 오면 항상 박대표는 불고기버거를 대접해 주며 아직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아바이마을에서 공공근로를 하던 할머니가 트럭 안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너무 좋겠어요 아이들과 이렇게 멋지게 살아가니 "

"저희들 집에 불이 났어요. 그래서 잠시 이렇게 트럭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러워하지 마세요) "

할머니는 단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이상한 할머니구나 생각하였는데 좀 있다 어딘가에서 빌려온 이천 원을 아이들에게 건넸다.

"돈을 안 가지고 와 빌려 보려고 해도 안되네 " 속으로 불이 나고 난 뒤 처음으로 많이 울었다.

친척들도 가족들에게도 어떤 위로의 전화나 부조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인지 더 슬프고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 뒤 할머니집에서 김치를 얻어먹었는데 아무도 찾지 않는 외로움을 하소연했다.


무료 물품 배급소에서 쌀을 가져오고 라면을 가져다 아이들을 먹였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 세상을 낮은 나라를 가르쳐 주도록 누군가가 기회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혁명을 위해서 빠뜨린 게 있었다고 내 어깨에 죽비를 내려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허균의 집(허균허난설헌 생가기념관)

경포대 주차장에서 쫓겨났다

어디로 갈 것인가 둘러보다 허균의 생가 주차장이 너무 넓고 좋았다. 밤에도 주차장과 생가도 차단되지 않았다. 그러니 밤에나 낮이나 우리 가족의 장원이 되었다.

"여기 주차장에서 좀 생활하려고 합니다. 작품 하나를 찍고 싶은데요. 작품은 잃어버린 개 한 마리를 찾기 위해 가족들이 5톤 트럭에서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부디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배려 바랍니다 "

그때는 같이 있던 복실이를 잃어버려 강릉에서 찾은 이후여서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좀 회복되었을 때였다. 너무 자주 주차장에서 내쫓기다 보니 이제는 안전감 있게 주차하고 작품이라도 찍고 싶었다. 허균의 집은 산책하기도 좋고 허균 기념관 옆에서 작은 다리만 건너면 '녹색체험 컨벤션 센터'가 있어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밤에 야외에 있는 수도가에서 목욕하기도 편했다. 간혹 주말이면 공연도 하곤 했다.

이전과는 다른 신세계였다. 우리는 상상의 율도국에 도착한 것인가?


가족은 비로소 길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연기하면서 그 길 위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집과 돈 없이도 즐겁게 살면서 다가올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가진 것 없는 이들이 되어 가난한 자들을 만났다.

노숙자도. 광산에서 일하다 폐병에 걸린 할아버지도. 어릴 적 살았던 금강산을 그리워했지만 , 마을사람들도 모르게 죽은 할머니도 , 떠돌이 개들도 , 주차장 화장실에서 빨래한 죄 때문에 내쫓던 주차장 청소아줌마들도 , 당장 그 자리에서 행복해야 하는 이들. 담벼락에는 대통령선거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넘쳤지만 춤도 , 노래도, 시 하나 읊어주는 이 없었던 나라.


정치인들은 권력을 잡으면 반대파 숙청작업에 들어가는 일 밖에 일상의 행동강령을 찾지 못한다.

빼앗은 권력을 유지하는 기술이 숙청 밖에는 사실 별다른 게 없다. 허균 같은 신돈 같은 이는 마피아 같은 조직에서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를 일으키는 것은 권력 그 자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민중들을 위한 새로운 가치나 윤리는 당대의 예술이나 종교가 맡아야 하는 것이지만 권력이 바뀌면 예술과 종교는 적당히 2중대 역할을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민중과 공동체를 위한 적극적인 새로운 가치투쟁을 할 능력도 비전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야 그냥 해온 대로 권력이 바뀌면 닭모이를 좀 더 많이 얻고 또 바뀌면 좀 더 적게 먹는 것에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정치의 시간은 대체로 정치권력의 무능만 드러내는 기회와 시간만 축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치권력은 끊임없이 위험에 빠진다. 그들의 왼발에 오른발이 걸려 넘어지는 역사의 법칙에 따라.


허균은 조금 달랐을까? 신분·혈통보다 평등한 윤리적 가치적 공동체를 부르짖었다. 광해군의 체제 안 개혁과 허균의 체제밖의 혁명은 일체화되지 못하였다. 민중에게 궐기를 요청한 것도 아니었다. 마냥 사상적 급진성과 정치적 고립, 개인적 성벽 등등으로 사지가 찢기는 형벌로 죽었다. 조선 왕조정치의 틀 자체를 벗어나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제시하는 용기. 하지만 그의 죽음은 당시 광해군 시대의 장치당파들의 역학관계로 인한 갈기갈기 찢겼다.

어차피 정치가들은 권력을 잡으면 권력생리에 스스로 갇히면서 자신을 중심으로 한 질서를 외친다. 최대한 그들로부터 희망고문을 받지 않는 경제, 문화예술적인, 이념적 독립을 확보하는 게 가난한 이들에게 더 중요하다. 허균의 율도국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

생각해보면 따로이 영토를 가진 율도국은 그 얼마나 허황되고 비현실적인가? 가난하고 상처 받은 이들은

유랑하거나 무엇을 찾아 헤매일 시간도 부족하다 . 만인을 위한 팔만 대장경을 짓고 가난한 이들의 역사실록을 만들고 평등한 창작을 거친 달빛 아래 축제를 열어 가면 된다 .

관계의 해방과 평등은 굳이 영토와 군대와 권력을 가지지 않아도 가능할 것 같다 . 장엄한 건물을 가지지 않아도 되고 총 칼을 가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 상처 받지 않은 이 누구일까 ? 바람 처럼 스쳐가는 짧은 시간만이라도 , 상처를 부풀리지 말고 위로나 위안을 구하지 말고 스스로 일어나 나누는 율도국의 시간만 있으면 그렇기에 나의 혁명은 정치혁명이 아니라 탈정치적 문화민주주의다.


"나의 집은 강릉 땅 돌 쌓인 갯가로

문 앞에 흐르는 냇가에서 비단옷을 빨았지요.

아침에 노 젓는 배 한가히 메어두고는

짝지어 나는 원앙새를 부럽게 바라보았네요." (허난설헌의 시)


10일 정도 머물면서 내 아이들이 처음으로 시를 배우고 두 발 자전거를 배웠던 허균의 생가 주차장

그런데 오봉저수지가 말라가고 강릉에 역대의 가뭄이 다가왔다.

갑자기 야외 수도가 잠기고 공공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율도국의 행복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다 물걱정 없는 곳을 찾았다 .오래전 영화를 찍었던 인제 월학리 냇강마을을 떠올렸다.


5톤 트럭에서 바라본 세상은 내가 20년 동안 다녔던

마을에서 보던 세상과는 분명 달랐다.

그때 찍은 영화는 '길 위의 빛들'(dmz 국제다큐영화제 추청 , 부산국제동물영화제 베스트 상)이라는 영화를 통해 선보였다. 불과 물이 가져다준 선물이었고 내가 국제마을영화제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영화이기도 했다. 내 아이들을 위한 기억의 유산으로서 그 시간의 드라마는 완벽했다.


ps 경제 붕괴 이후 집을 잃고, 밴이나 RV에서 생활하며 미국 서부를 떠도는 노년 여성들의 삶을 다룬 중국계미국 감독 클로이 자오가 연출한 '노마드랜드](2020) 영화가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Jessica Bruder)**가 쓴 논픽션 르포르타주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 (2017)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이 나온 시기와 영화개봉시기도 겹친다 .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프란시스 맥도먼드) 수상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골든글로브 작품상(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 실제 재난피해자였던 가족들이 직접 찍은 영화 '길위의빛들'과 프란시스 맥도먼드(Frances McDormand)가 연기한 영화와의 비교는 나의 입장에서 필요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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