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0주년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역대 최대규모인 64개 나라, 341편의 영화가 초청됐습니다."
이 한 문장은 겉보기에 화려하지만, 그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른 풍경이 보인다.
유엔 회원국가가 193개국이다. 그러나 자국 자본으로 영화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30여 개국 남짓일 것이다. GEMINI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영화 생산 편수는 미국 1,126편, 프랑스 427편, 중국 413편, 한국 261편 순이다. 30위권에 위치한 슬로바키아는 연간 22편. 그 아래로 내려가면 영화 생산량은 급격히 줄어들고, 사실상 국제 영화제에 초청될 만한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나라는 소수에 불과하다.
1 미국 1,126편 2 프랑스 427편 3 중국 413편 4 인도 335편 5 영국 283편 6 대한민국 261편 7 스페인 241편 8 독일 222편 9 이탈리아 219편 10 튀르키예 206편 11 러시아 175편 12 일본 146편 13 캐나다 143편 14 브라질 130편 15 호주 98편 16 멕시코 73편 17 네덜란드 57편 18 포르투갈 57편 19 체코 49편 20 벨기에 47편 21 루마니아 43편 22 스웨덴 40편 23 아일랜드 37편 24 폴란드 34편 25 핀란드 33편 26 덴마크 29편 27 노르웨이 29편 28 뉴질랜드 28편 29 아르헨티나 26편 30 슬로바키아 22편 (GEMINI 통계 )
64개국 341편이라는 숫자도 그 안을 열어보면 편중이 잠복되어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상업영화 대신 인디·독립영화 중심의 초청이니, 국가별 격차는 실체적 격차를 반영하거나 크게 도드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독립영화보다 아시아 독립영화들이 많은 숫자를 차지할 수도 있다. 영화라는 장르는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로컬 영화들이 생각보다 왕성하게 생산되지 못한다.
몇 해 전, 나는 제주 북촌리에서 마을주민들과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북촌리는 4.3 사건의 최대 피해 마을 중 하나이자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지이다. 그곳에서 우연히 1945년 영국 BBC가 촬영한 16mm 흑백 다큐멘터리를 접했다. 주인공은 북촌리의 아이들이었다.
그 영상은 아주 옅은 극적 연출이 개입된, 그러나 의외의 기록이었다. 그 영상 덕분에 4.3 이전 북촌리의 일상, 주민들의 표정, 웃음, 공간의 결을 생생히 상상할 수 있었다.
한국에는 그런 다큐멘터리가 없다. 4.3이라는 정치적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들은 있었지만, 실제 소수 주민 (더 깊게는 제주 연극배우) 들이 참여한 극영화들은 있었고 '폭싹 속았수다'나 '우리들의 블루스' '웰컴투 삼달리' 같은 드라마들은 전문연기자들의 드라마였다. 실제 주민들의 일상, 웃고 떠드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창작은 절박한 동기와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외부의 시선이 기록해 낸 것들이 훗날 한 지역의 문화적 기억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은 과감하게 로컬 콘텐츠에 투자한다. 덕분에 그동안 주류 영화 시장에서 외면당했던 지역의 이야기들이 글로벌 관객에게 닿는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시장 논리에 따른다. OTT의 창작 동기는 BBC같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호기심과 ‘기록의 열정’이 아니라 ‘글로벌 흥행 코드’에 맞춰질 위험이 있다. 시장성이 사라지면 자본은 언제든 무관심해질 수 있다.
각 나라들이 비록 국내 투자나 생산능력이 없더라도 자국 차원의 로컬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거대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 전략을 인디영화로부터만 가져서는 안 된다. 인디영화도 작가들의 관심으로 인한 제한된 생산과 저예산이라도 돈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제시하는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주민 공동 제작, 초저예산 창작, 로컬 인문학 축제와 결합한 마을영화다.
이는 단순한 영화 제작 방식이 아니라, 자본에 예속되지 않고 관계의 드라마와 기록을 이어가기 위한 문화적 실천이다. 북촌리의 아이들이 1945년에 남긴 웃음처럼, 오늘의 지구 위의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축복하고 미래를 위해 남길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시장성’이 아니라, 공동체의 ‘열정과 협력’으로 존재할 수 있고 독립영화보다 예산적으로도 월등히 문턱이 낮다 .
64개 나라, 341편이라는 숫자가 화려한 이유는 단순히 규모 때문이 아니다.
그 숫자 속에서 여전히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 기록되지 않은 마을사람들, 그리고 사라지는 웃음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영화제의 초청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만개영화프로젝트는 그 일을 글로벌적으로 하려는, 공동극창작이며 기록이며, 수행이고, 미래의 기억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중국 국보 1호로, 12세기 북송시대 한림학사 장택단이 그린 풍속화 <청명상하도>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당시 북송 사회의 모든 면을 담아낸 백과사전 같은 그림이다.
가로 528.7cm, 세로 24.8cm의 거대한 두루마리에 담긴 북송 수도 개봉의 하루를 그린 이 작품에는 사람 814명, 가축 83마리, 선박 29척, 마차 48대가 그려져 있는데, 놀랍게도 모든 인물이 각각 다른 표정과 동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청명상하도(清明上河图)는 마치 카메라가 천천히 이동하며 도시의 리듬을 기록한 한 편의 장편 롱테이크 영화 같다. 두루마리 속 시선은 교외의 강가에서 시작해 다리 위와 아래를 건너고, 시장 골목을 지나 도심의 관청 앞까지 이동한다. 그 안에는 장사꾼, 아이, 관원, 짐꾼, 스님까지 약 800명의 삶이 숨 쉬듯 등장한다. 이 그림은 북송 시대 개봉의 하루를 날것 그대로 옮겨놓은 거대한 파노라마다. 마을영화가 마을의 몸짓과 관계를 주민들의 연기로 포착하려 할 때, 바로 그 ‘있는 그대로’라는 이상이 무엇인지 청명상하도는 미리 보여준다. 풍경 속 사람들은 배우가 아니지만, 그들의 자리와 몸짓,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결국 마을영화란 이처럼 하나의 마을을 두루마리처럼 펼쳐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하여 연결해 하나의 드라마로 엮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살인,폭력의 반경에서 벗어난 재미난 일상의 드라마를 찾아 공동체 성찰의 축제를 열어 보려는 것이다 . 각 나라마다 전 세계 마을마다 '청명상하도' 하나를 가지는 것 , 주민들이 함께 그들의 마을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앞으로 올 AI 시대 마을의 소득과 개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새로운 장르를 가지려는 것이다. 물론 누가 누군지 모르는 '청명상하도'나 김홍도의 풍속화도 아닌 그들의 얼굴, 말투, 웃음, 관계들, 생각들이 올곧이 연결되어 기억할 수 있는, 렘브란트의 집단 초상화처럼 그 얼굴이 뚜렷하게 , 생활공동체 단위로 잘게 쪼갠, 흥미롭게 소비할 기록과 상상의 축제형 스토리의 마을영화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 지금 우리는 OTT를 소비하고 환호한다. 차라리 지금 지구 각국의 미래영화를 위해 김홍도의 풍속화와 중국의 '청명상하도'의 현대적 버전를 떠올려야 할 시간일지도 모른다.
PS .1945년 8월 17일경,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당시는 만주국집정)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망명하려 했다가 '청명상하도'가 들어 있던 가죽 가방을 잃어버렸다.공항 일꾼이 푸이가 잃어버린 가죽 상자를 주웠고, 그림은 한동안 동북박물관의 창고에 방치되었다. 이후 혼란스러운 과도기를 거치던 1952년에, 자료를 정리하던 연구원에 의해 작품의 가치가 재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