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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영화의 귀향

by 신지승


그 마을에 들어간 것은 2010년 겨울이었다. 한 달 남짓, 그 마을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세 명의 스태프와 함께 시작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 앞에서 일주일 뒤 그들은 하나둘 떠났다.

홀로 남았다.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하고, 한 손에 붐 마이크를 쥐고, 주민들의 연기를 담았다. 감독이자 촬영감독이자 녹음기사였다.

나에게 주어진 보상은 적었다. 마을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말에 처음에는 기대했을 것이다. 〈워낭소리〉처럼 자신들을 유명하게 만들어줄 영화를. 〈워낭소리〉는 한 개인과 소의 관계를 따라간 다큐멘터리였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연기해야 했다. 그것은 그들 에게 낯선 방식이었다.

감독이 혼자 뛰어다니는 모습은 초라했다. 마을의 한 주민은 나를 무능한 감독으로 처음부터 낙인찍었다. 다른 주민들에게 촬영에 참여하는 것에 거리를 두기를 선동했다.

외로웠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차를 몰고 고속도로로 나갔다. 몇 시간이고 달렸다. 해가 뜨면 다시 마을로 돌아와 카메라 앞에 섰다.

어느 날 실마리가 보였다. 내가 잠자던 방 앞, 웅크리고 있던 개 한 마리때문이였다.

복실이. 어느 집에서 마을에 풀어놓고 키우던 개였다. 그 개는 나를 따라다녔다. 마을에서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복실이를 통해 나는 이 영화의 주제를 발견했다.


정월 대보름이 다가왔다. 달집태우기. 그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어야 했다.

달집을 태운다는 것. 나는 그 불 속에서 다른 이야기를 보았다. 달을 가둔 집을 태우는 의식. 여성의 해방. 편견과 억압의 틀을 불태우는 밤. 정월 대보름은 나에게 단순한 민속 행사가 아니었다. 나에게 묶인 것들이 풀려나는 밤이이기도 했다.

지자체가 이 마을을 전통 체험 마을로 지정했다. 그로 인해 선진지 견학을 다녀온 마을 사람들은 '발전된' 방식을 배워왔다. 축제를 준비하며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을 자유로이 다니던 개 ,복실이를 묶는 것이었다.

마지막 촬영만 남았다. 하지만 하늘을 향해 치솟는 달집의 불꽃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그 밤의 마을축제를 혼자서는 촬영을 감당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살아 숨 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었다.

여성으로 상징되는 달의 집을 태워 달을 해방시키는 달집태우기전통의 재해석을 통해 공동체내의 약자, 가난한 자 ,묶인 자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지역 대학 영화과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하루만 도와줄 사람을 구한다고. 몇 시간의 일. 적지만 돈도 준다고. 누구라도 올 것 같았다.

전화가 왔다. 그 대학의 교수였다.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나는 기대하며 그를 찾아갔다. 그는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그저 파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 영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인간적인 예의는 조금도 없었다. 관심은 더욱 없었다. 깊은 인간적인 모독이 나를 오래동안 휘감았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문득 인력 사무실로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구하는 일은 단순했다. 붐 마이크를 배우의 입 가까이 들고, 카메라를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는 것. 그게 전부였다. 내가 모든 것을 지시할 것이다. 그들은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틀날, 두 명의 청년이 왔다. 그들은 불안해 보였다. 처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몇 시간 동안 장비 사용법을 가르쳤다. 내일 촬영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괜찮다고 말했다. 실수해도 된다. 나에게는 다른 카메라가 있다. 내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녹화 버튼만 누르면 된다.

그리고 그날 아침 축제준비에 들뜬 마을 주민들 몰래 복실이의 목줄을 풀었다.

복실이는 축제장을 마음껏 뛰어 다녔고 어떤 사람들도 복실이를 무서워 하거나 민원을 넣지 않았다 .


그렇게 촬영을 마쳤다.

지금 보아도 믿기지 않는다. 그 절박했던 시간이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되었는지.

마을 회관에서 상영회가 열렸다. 사람들이 웃었다. 박수도 나왔다. 영화의 주제를 그들이 알아챘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나오는 화면을 보며 좋아했다.

그때 마을의 오랜 방해자가 말했다. "개가 주인공이네." 그의 목소리는 비웃음을 담고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후 영화는 마을에서 지워졌다. 최소한 마을에서 환호받지 못한 영화. 개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버려진 영화.

영화는 그렇게 잊혔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마을 박물관이 있었다. 이 영화는 당연히 거기에 초대받지 못했다.

몇 년 후, 마을은 〈추노〉의 촬영지가 되었다. 전통 체험마을로 방송국들이 몰려들었다. 마을은 관광지가 되었다. 유명해졌다. 나의 영화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마을의 사람들이 TV에 나왔다.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찍은 영화를 보며 즐거워 했듯 웃음이 나왔을 것이다. 화면 속 자신의 얼굴 앞에서, 영화가 담았던 그들 삶의 질감과 공동의 상상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는 몇몇 영화제로 갔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수상을 하기도했다. 심지어 어느 영화제에서는 개막작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흘렀다. 15년. 그 영화에 나왔던 사람들 중 많은 이가 이제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이 영화는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작품중의 하나이다.

얼마 전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당시 영화에 쓰이지 못한 영상을 발견했다.


촬영을 마치고 그때 복실이를 마을에서 용문산 외딴 우리집으로 데려왔다. 묶여 살게 할 수 없었다. 복실이는 14년을 함께 하다가 작년에 죽었다.

복실이가 죽고 나서 나는 복실이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 영화를 작년 부산국제동물영화제에서 초청상영했다.


며칠전 그런 생각이 스치고 갔다. 이 마을의 영화를 다시 마을에서 상영하면 어떨까 ?

마을을 다시 찾아갈 것이다. 이 영화 안에 무엇이 있는지, 15년 전 그 마을에 있었던 이야기를 이제 한번 더 보여주고 싶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알게 될 것이다. 영화와 방송이 어떻게 다른지. 시간이 만든 이야기의 깊이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뒤 이 영화가 마을 박물관에 들어가야 하는지 말것인지 그들이 다시 결정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영화는 그들에게 보물이 될 것이다 .

이 영화는 또 다른 질문에 답한다.

AI가 순식간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인간은 왜 여전히 카메라를 드는가.

기계가 생성한 영상과 사람이 몸으로 만든 이야기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이 영화가 그것을 증명한다.

영화는 기술만이 아니다. 삶이 벌어지는 자리에서 태어난 이야기이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어울려 몸으로 만들어진 창작의 기억이다.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산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빚어내는 예술이다. 이 영화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잊혔던 영화 속에는. 방송이 담지 못한 그들의 일상이, 그들의 몸짓이. 거기에는 드라마가 있다. 방송의 대상이 아니라 창작자였던 그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기에 이것은 그들의 귀중한 공동의 유산이다 ..

그리고 그들이 잃은 자유가 보일 것이다. 농촌 체험 마을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라졌는지.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묶이지 않고 마을을 뛰어다녔던 개 한 마리를.

이것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마을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이제 그 마을을 찾던 방송의 광품이 잦아들 시간일 것이다 .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남았다. 복실이는 죽었지만 영화속에서는 여전히 뛰어다닌다.

15년 만에 그 마을로 찾아가 그들에게 물을 것이다.

당신들은 그때 무엇을 연기했습니까? 지금 당신들은 어떻게 사십니까?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그 이야기. 그것은 당신들이 나와 만든 너무나 멋진 이야기였습니다.잊혀지기에는 너무나 아쉽고 불행 할

이제 조롱받았던 감독이 그 이야기를 되돌려주러 간다. 그후 15년의 이야기를 덧입힌 영화로 새로이 만들어. 전세계적으로 만개 영화프로젝트가 있어야할 이유는 최종적으로 응원해야 할 영화의 최후의 장르이기 때문이다라고 믿는다. 상품의 영화는 10년을 지나면 마을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몰라도) 공동적으로 기억할 필요도 없고 잊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을에서 빛을 발하는 영화는 그들이 함께 창작자로서 나선 그들의 영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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