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패배자입니다

반드시 성공하는 능력

by 농신
돈이 없어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일이 너무 힘들어서..


저는 살면서 많은 핑계를 댔습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모든 것을 핑계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안에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근데 언제까지 핑계를 댈 거야? 사람들에게 못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게 싫겠지. 근데 넌 결국 이런저런 핑계로 포기한 거야. 넌 그냥 힘들어서 핑계 탓을 대면서 포기한 거밖에 안 돼. 지금의 넌 그냥 패배자야. 핑계를 댄다는 건 ‘나는 패배자다’라고 인정하는 거야. 핑계를 댈 시간에 다른 방법을 찾아봐. 네가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라는 걸 증명하는 데 힘써. 네가 노력해서 승리자가 된다면 그 어떤 핑곗거리도 필요가 없어.'


아마 핑계를 대는 제 자신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삶이 옳지 않다는 것을 느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잡고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혹시 자신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삶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화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말은 제대로 하자. 넌 노력하지 않아. 그냥 징징거리는 거야.


CF / 나이키

어쩌면 이건 내 잘못이야...

어쩌면 내가 너희들에게 이게 쉽다고 믿게 한건 지도 몰라,

사실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을.

어쩌면 내가 너희들에게

나의 명장면들은 체육관에서 부터가 아니라.

자유투 라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는지도 몰라.

어쩌면 내가 너희들에게

내가 쏜 모든 슛들은

모두가 승리를 가져다준 역전골이었다고

생각하게 만든 건지도 몰라.

나의 경기들은 빛(화려함)으로 만들어졌고,

불(열정)로는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어쩌면 내가 나의 실패가 내게 힘을 주었다는 것을

나의 그 고통들이 나의 동기가 되어주었다는 것을.

너희들에게 못 보여준 것이 잘못이야.

어쩌면 내가 너희들에게

농구는 신이 내린 선물인 것으로 믿게 한 것인지도 몰라.

그리고 내가 내 평생 중 단 하루도 놓지 않고

그것을 위해 노력을 한 것이 아니라고.

어쩌면 내가 농구를 파괴한 것인지도 몰라...

아니면 너희가 그냥 변명을 하는 건지도 모르지...

전설이 되거라.


인물 / 카디자 윌리엄스

저의 어머니는 14살 때 차가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저를 출산하셨습니다. 어머니와 전 뉴욕의 거리를 전전했고 무료급식과 쓰레기를 뒤지며 굶주림을 해소했습니다. 전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길거리에서 키워졌습니다. 값싼 모텔과 노숙자 쉼터를 찾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고 대부분 차가운 길바닥과 냄새나는 뒷골목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집 주소는 언제나 뉴욕 어느 동네의 식당 뒷골목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이름은 '노숙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전 공부가 좋았습니다. 가진 것 없는 제가 그나마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한 권의 책을 더 읽고 한 번 더 생각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텐트촌에서 어머니와 저는 두 모녀가 감수해야 할 위험한 시선을 참아내며 필사적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12학년을 다니는 동안 자그마치 12 곳의 학교를 옮겨 다니며 공부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한 달에 5권의 책을 읽었고 뉴욕의 모든 신문을 정독했습니다. 거리의 길바닥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공부방이었습니다.


꿈이 생겼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나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는 꿈. 우리 가족이 더 이상 남들의 비웃음 섞인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되는 꿈.


"노숙자 주제에 대학은 꿈도 꾸지 마라"


사람들은 항상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저는 노숙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항상 머리를 단정하게 했고 옷도 언제나 깨끗하게 입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습니다. 11학년이 되었을 때는 어머니께 이사를 하더라도 더 이상 학교는 옮기지 않겠다고 부탁했습니다. 대학에 가려면 저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의 추천서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학교에 갔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돌아갔습니다. 4.0에 가까운 학점을 유지했고 토론 동아리 참여, 육상팀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학교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모든 곳이 저에겐 배움의 장소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복지단체들이 장학금으로 저를 도와주기 시작했고 사회단체에서 절 지켜봐 주었습니다. 절 믿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 인생과 운명을 바꾸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전 결국 브라운과 컬럼비아, 암허스트 등 미 전역의 20여 개 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아냈습니다.


제 이름은 카디자 윌리엄스입니다. 노숙자였던 저는 지금 하버드의 4년 장학생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저를 노숙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전 제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에 언제나 자신감을 가졌어요. 남들이 '노숙자니까 그래도 돼.'라고 말하는 걸 너무나도 싫어해요. 전 가난이 결코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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