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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하 Jun 08. 2020

자장자장 우리 할머니

2020년 6월 3일, 천사가 된 유영복 할머니께


"자장자장 우리 아가"

초등학교 2학년, 그 해 여름은 매우 더웠다. 괴롭히는 친구들이, 학교가 싫었던 소년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첫 결석을 했다. 멍하니 놀이터에 앉아있던 아이는 모아놓은 용돈 500원을 털어 1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5개나 사 먹으며 거리를 배회했다. 꽤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지만 아직도 학교에 있어야 할 오후 한 시. 집으로 갈 수 없었던 소년은 무작정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띵동'

할머니는 온화한 미소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생각해보면 왜 왔냐고도 묻지 않고 그냥 안아주셨다. 이내 "뭐 먹고 싶어 내 새끼?"라고 물으셨고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손자를 위해 손수 장을 보시고 요리를 해주셨다. 그러다 어느새 해가 지고 저녁이 찾아왔다. 소년은 아이스크림 때문인지 배가 몹시 아팠고, 밤새 할머니 약손을 받으며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평소 유난히 모기가 좋아했던 아이는 그 날 저녁 단 한 번도 모기에 물리지 않았다.


"할머니의 여름"

천사 같은 할머니의 십 대 어느 날, 그 여름도 매우 뜨거웠으리. 칠흑같이 어두웠던 그 시절, 친지들의 일부는 독립운동을, 또 누군가는 일제의 약탈과 지배하에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아니 살아남았다. 그러다 무더웠던 8월 드디어 독립이 되었다. 모두가 가슴벅찼던 그 순간 할머니도 희망을 보았고 십 대의 푸른 꿈을 꾸었으리라.


하지만 꿈 많던 할머니의 어느 여름날, 탱크가 내려왔다. 푸른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었다. 하늘이 무너진 그 날 황급히 피신하던, 생과 사가 교차하는 가시밭길에서 가족, 지인, 이웃들이 피를 흘렸다. 그리고 다행히 할머니는 살아남으셨다. 그렇게 피신을 하던 중 한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어오신 할아버지와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하셨단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리라.


"할머니의 하늘"

그녀에겐 3남 2녀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었고, 그들은 할머니의 하늘이자 곧 목숨이었다. 손자 손녀들에 대한 사랑은 말할 것도 없었다.  힘든 환경 속에서 5남매 자식들을 키우느라 또한 전란으로 초등학교 중퇴인 할머니에게 한글 공부는 큰 즐거움이었다. 어려서 본 할머니 집에 놓인 신문지, 달력 여백에는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 손녀의 이름과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에서라도 그 이름을 잊어먹지 않으시려고 그렇게 열심히 적으셨나 보다.


너무나 사랑했던 둘째 아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처음으로 그녀의 하늘은 무너졌고 단단했던 눈물 댐이 무너졌다. 먼저 떠난 아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남겨진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에 대한 애착은 더욱 강해졌다. 아마도 온몸을 다해, 목숨을 다해 그들을 사랑할 것이라고 다짐하셨을 것이라. 그렇게 그녀는 인생을 또한 전부를 자녀와 그 자손들에게 걸었다.


그렇게 그녀는 모든 것을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주었다. 식들이 그것을 두고 다투고, 서로를 원망할 때에도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며 가슴을 치고 혼자 골방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손자 손녀들에게 손 때 묻은 편지와 모아놓은 돈을 줄 때에도 그녀는 냉장고에서 곰팡이가 핀 떡을 씻어 드셨다. 구순이 넘은 그녀에게 유일한 미식은 유통기한이 일 년 넘은 라면 한 봉지였다. 그렇게 그녀는 마지막 눈 감는 그날까지도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만 생각했다.


"자장자장 우리 할머니"

유난히 날이 좋았던 올해 여름 어느 날, 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떠나신 날부터 장례기간 내내 다른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아마도 마지막까지 먼길 내려올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을 위해 비를 내리지 않으셨다보다. 하지만 처음으로 할아버지 눈에는 비가 내렸다.
"당신 오늘 참 곱다. 나와 살아줘서, 자식들 잘 키워주어 고맙소.. 잘 가시게.." 말씀하시며.


마치 그날도 하늘나라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더운 날씨에 너희가 고생이 많다고..." 그렇게 항상 미안해 하셨던 할머니께 그때 그 소년은, 못난 손자는 이렇게 뒤늦게나마 글을 통해서라도 말하고 싶었다. 사실은 우리가 너무너무 미안했다고... 할머니는 한 번도 미안할 필요가 없었다고... 할머니 손자여서 너무 행복했다고, 또 죽을 만큼 영원히 사랑한다고.


이제는 자장자장 우리 할머니,
천국에서는 못난 자식, 손자, 손녀들 걱정은 하지 말고 하나님과 주님 사랑 안에서 행복하게 보내고 계시리.
아마도 천사가 되셨을 우리 할머니...

너무 보고 싶고 사랑해...

.

.

이 이야기는

이제는 천사가 된 할머니에 대한 때늦은 그리움라.

이제는 닿을 수 없는, 그저 빈 허공에 홀로 울부짖메아리라.
이제를 살고 계신 혹은 소천하신 위대한 할머니들의 평안을 바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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