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의 성당 그리고 사탑
남쪽 주말은 꽃천지입니다.
하지만, 올핸 봄꽃에 그다지 감흥이 안 생깁니다.
분갈이 걱정, 옥상에 상추나 좀 심어야겠는데
일상에 쫓기면 이런저런 분주한 마음만 먹다가 며칠이 지나갑니다.
이런 맘으로 화초들을 바라보다
녹보수 화분에 눈길이 갑니다.
첨엔 해피트리인 줄 알고 키웠는데
헤어보니 우리 집 식구가 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어떤 경로로 우리 집에 온 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든 우리 집에서
"죽지 않고 버텨냈습니다"
무슨 나무인지 어떻게 키우는지 도통 관심도 없이
그냥 집구석에 묵묵히 버려져 있던 화초
몇 번의 이사 속에서 어떤 때는 마당에 버려지고
어떤 때는 햇볕 하나 안 드는 거실 구석에서
몇 년을 지낸 적도 있습니다.
분갈이 한번 없이 십여 년을 버틴 것도 같고
수년 전부터 화초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돈으로 화초를 사기도 하고
난생처음 분갈이도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녹보수가 갑자기 눈이 부시게 성장했습니다.
분갈이도 해주고 물도 잘 주기 시작하니까
존재감을 나타냅니다.
20여 년 만입니다.
이제 어엿이 녹보수도 큰 화분에 뿌리내리고
거실 한쪽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숱하게 우리 집을 거쳐간 식물들
중에 유일하게 장수 한 식물입니다.
버텨내는 모든 것들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미래를 찾아 버텨내는 청춘들에게도
위로를 보냅니다.
길섶에 해마다 피어나는 개나리들도
지난겨울을 잘 버텨냈습니다.
피사의 사탑도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중력을 견디어 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
긴긴 세월을 버텨낸 피사의 사탑에게도
위로를 보내는 아침입니다.
지난겨울을 잘 버텨 준
몬스테라 두 화분
오후에는 제 몸에 걸맞게 예쁘게
분갈이해주어야겠습니다.
또다시 몇 년을 버텨내 달라고 기도합니다.
모두를 응원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