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운 Apr 04. 2022

버텨내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피사의 성당 그리고 사탑




남쪽 주말은 꽃천지입니다.

하지만, 올핸 봄꽃에 그다지 감흥이 안 생깁니다.

분갈이 걱정, 옥상에 상추나 좀 심어야겠는데

일상에 쫓기면 이런저런 분주한 마음만 먹다가 며칠이 지나갑니다.


이런 맘으로 화초들을 바라보다

녹보수 화분에 눈길이  갑니다.

첨엔 해피트리인 줄 알고 키웠는데

헤어보니 우리 집 식구가 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어떤 경로로 우리 집에 온 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든 우리 집에서

"죽지 않고 버텨냈습니다"

무슨 나무인지 어떻게 키우는지 도통 관심도 없이

그냥 집구석에 묵묵히 버려져 있던 화초

몇 번의 이사 속에서 어떤 때는 마당에 버려지고

어떤 때는 햇볕 하나 안 드는 거실 구석에서

몇 년을 지낸 적도 있습니다.

분갈이 한번 없이 십여 년을 버틴 것도 같고


수년 전부터 화초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내 돈으로 화초를 사기도 하고

난생처음 분갈이도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녹보수가 갑자기 눈이 부시게 성장했습니다.

분갈이도 해주고 물도 잘 주기 시작하니까

존재감을 나타냅니다.

20여 년 만입니다.

이제 어엿이 녹보수도 큰 화분에 뿌리내리고

거실 한쪽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숱하게 우리 집을 거쳐간 식물들 

중에 유일하게 장수 한 식물입니다.


버텨내는 모든 것들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미래를 찾아 버텨내는 청춘들에게도

위로를 보냅니다.


길섶에 해마다 피어나는 개나리들도

지난겨울을 잘 버텨냈습니다.


피사의 성강 그리고 사탑


피사의 사탑도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중력을 견디어 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

긴긴 세월을 버텨낸 피사의 사탑에게도 

위로를 보내는 아침입니다.


지난겨울을 잘 버텨 준

몬스테라 두 화분

오후에는 제 몸에 걸맞게 예쁘게

분갈이해주어야겠습니다.

또다시 몇 년을 버텨내 달라고 기도합니다.


모두를 응원하는 아침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크라이나를 그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