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 그들만의 공동체

산업화, 도시화와 도시교회의 명암

by 여운

농촌공동체의 분해와 도시교회의 태동


해방 이후, 폐허가 된 땅 위에 새로운 희망을 심었던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휩싸였습니다. '이촌향도(離村向都)'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향했습니 다. 대도시는 낯설고 외로운 공간이었지만, 이곳에서 한국교회는 전례 없는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했습니 다. 공장 주변, 달동네, 신개발 아파트 단지마다 교회가 세워졌고, 주일마다 예배당은 성도들로 가득 찼 습니다. 도심 교회는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새로운 공동체이자 심리적 안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와 같은 대규모 부흥 운동은 수십, 수백만 인파를 운집시키며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신앙적 열망과 도전 정신이 빚어낸 놀라운 성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gLt-Pp36kdgJMnYQv_W4aqjv-gs.png 1973년 빌리그래함 전도집회 / 이 집회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성장 그리고 이 집회에서 통역을 맡았던 김장환목사(CBS)의 현재 까지 미치는 무소불위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


초대형교회의 등장과 시스템


이 시기 교회의 양적 부흥은 놀라웠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영락교회, 명성교회등은 시기는 달랐지만, 전쟁 후 월남민들을 통해 부흥한 경우, 이촌향도의 영향으로 성장한 교회들, 그리고 신흥신도시를 중심으로 80년대 까지 급성장한 대형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십만 명의 성도들이 모이는 대형 교회들은 , 효율적인 성도 관리를 위해 구역과 소그룹이 확산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새롭게 유입되는 성도들을 교회에 정착시키고, 개인적인 필요를 채워주며, 소속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기능을 했습니다. 목회자들은 밤낮없이 성도들을 심방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신앙 성장을 독려했습니다. 교회는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 정보 교환의 장이자 사회적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었고, 때로는 재정적 어려움까지 나누는 가족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성장의 이면 : 공동체의 균열, 그리고 훼손


그러나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균열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양적 부흥주의는 교회를 관료화시키고 조직 중심화하는 경향을 낳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 권한이 집중되고 그릇된 리더십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심지어는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가르침과 비정상적인 운영으로 인해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거나 공동체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사례들도 나타났습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본연의 깊이 있는 관계보다는 숫자가, 성도 한 사람의 존재보다는 조직의 한 부분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끊임없는 성장과 봉사를 요구하는 분위기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피로감을 안겨주었고, 관계는 피상적으로 변모했습니다. 수십, 수백 개의 소그룹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의 교제는 얄팍해졌고, 진정한 의미의 상호 돌봄과 희생은 희석되었습니다. 교회는 '거대한 조직'이 되었지만, 그 안의 개개인은 여전히 외로울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 눈부셨던 성장의 영광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습니까? 성장의 열망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또 무엇을 놓쳐버렸습니까?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정말 깊이 연결되어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그저 같은 공간에 함께 있었던 것에 불과했을까요?





성장의 시기
기독교는 하나님의 위로와 안식을 제공했지만
교회의 대형화와 교회공동체의 변질과 훼손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다음 회 예고 ㅣ 7월 31일 목요일 연재 됩니다

" 21세기 변화의 물결 흔들리는 공동체"


외로움.png


keyword
이전 04화밥상 공동체를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