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성은 거창한 의무감이나 억지스러운 강요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봄날의 새싹처럼, 성령께서 부드럽게 불어넣으시는 감동에 기꺼이 마음을 여는 내면의 자유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 깊은 곳에서 샘솟는 기쁨과 감사로 '하고 싶어지는 마음'. 그 마음이 이끄는 섬김은 단순한 행위를 넘어, 메마른 땅을 적시는 생명의 물길이 됩니다.
억지가 아닌, 기쁨으로 드리는 헌신
성경은 이 진리를 고린도후서 9장 7절을 통해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 말씀처럼, 억지로 낸 봉사는 봉사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를 지치게 합니다. 반면, 기쁨으로 드리는 섬김은 공동체에 신선한 샘물을 길어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바로 이 자발성의 아름다운 모델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4장에는 자신의 밭과 집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어떤 강요나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사도행전 4:34-35)라고 기록된 것처럼, 기쁨으로 서로를 섬기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으로 이 놀라운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이렇듯 은사는 개인의 자랑이 아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성령의 선물입니다.
로마서 12장의 말씀처럼, 교회는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진 지체들이 모인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억누르지 않고 자발적으로 기여할 때, 그 흐름은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향해 흘러나가는 생명력이 됩니다.
진정한 자발성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이끄심에 귀 기울이며, 그분이 부르시는 사명의 자리에서 기꺼이 순종하는 더 큰 자유입니다. 하워드 스나이더의 말처럼, 공동체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때 비로소 강제가 아닌 사랑의 에너지로 움직입니다. 이 자유의 공기 속에서 성도들은 억눌리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헌신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야기는 자발적인 헌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그녀의 행동은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칭찬하시며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마가복음 14: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의 자발적인 헌신은 세상의 계산법을 뛰어넘는, 사랑과 믿음의 결정체였습니다.
이제 교회는 '위로부터의 지시'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응답'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스스로 은사를 발견하고 나눌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는 구조, 즉 소그룹 리더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특정 사역을 위한 TF팀을 자발적으로 꾸리게 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성도는 단순한 '교회 소비자'를 넘어 '공동체의 주체'로 다시 서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공동체 안에는 지금 어떤 바람이 불고 있나요? 억지로 하는 헌신입니까, 아니면 성령 안에서의 자유로운 순종입니까? 제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자발성과 나눔, 치유는 교회를 숨 쉬게 하는 세 개의 심장입니다. 이 세 심장이 유기적으로 함께 뛸 때, 교회는 경직된 건물이 아닌,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상 속에 빛을 발할 것입니다.
우리 함께, 이 세 심장이 힘차게 뛰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요?
자발성의 원리는
내면의 치유에서 시작된
기쁨의 열매이다
다음 회 예고 ㅣ 8월 18일 월요일 연재 됩니다
"빛과 소금" 공공성을 잃어버린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