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으로서의 교회 — 공공성의 회복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처럼, 공동체는 세상으로 흘러야 합니다

by 여운


11화. 빛과 소금으로서의 교회 — 공공성의 회복

부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처럼, 공동체는 세상으로 흘러야 합니다



" 빛과 소금 우리의 교회"

오늘 우리의 공동체는 정말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내고 있습니까?

‘교회답다’는 말은 예배당 안에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라”(마태복음 5:13–14) 말씀하셨을 때, 그 부름은 개인의 신앙심이나 내부의 경건 생활에 머물라는 요청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가 세상 한가운데서 빛을 발하고 부패를 막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교회의 공동체성이 진정한 것이라면, 그 증거는 담장 안이 아니라 담장 밖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신앙의 진정성은 공동체 내부의 열심만으로 입증되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경건은 반드시 흘러나가 어둠을 밝히고, 상처 입은 이웃을 덮어주어야 합니다.


에스겔은 성전 문지방 아래에서 물이 흘러나와 점점 깊어지고, 마침내 사해(死海)까지 살아나게 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겔 47장). 이 물은 성전 안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시작된 그 물은 넓어지고 깊어져 광야와 사막을 지나, 마침내 모든 생명이 죽어버린 바다까지 흘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나무가 자라고, 물고기가 살고, 소금바다마저 치유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공동체가 지녀야 할 공공성의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살아 있는 공동체는 반드시 밖으로 흐릅니다. 안에서만 머무는 신앙은 강이 아니라 웅덩이입니다. 웅덩이는 썩지만, 흐르는 공동체는 세상을 살립니다.


우리는 이미 ‘나눔·치유·자발성’이라는 공동체의 핵심 원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세 가지가 공동체 안에서 생명력을 만들어냈다면, 공공성은 그 생명이 담장을 넘어 세상으로 흘러가는 필연적인 열매입니다. 나눔은 교인들끼리의 상호부조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울타리를 넘어설 때 비로소 지역의 부족함을 채우는 공적 나눔이 됩니다. 치유 역시 안에서만 서로를 위로하는 데 그친다면 닫힌 모임일 뿐입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세상 속으로 나아가 사회적 아픔을 끌어안을 때, 치유는 공적 사역으로 확장됩니다. 자발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부 운영에만 쓰인다면 곧 소진되지만, 공동체가 경계를 넘어 시민적 참여와 연대의 자리로 나아갈 때, 그 힘은 세상을 살리는 에너지로 변합니다.

따라서 공공성은 새로운 구호가 아니라, **나눔·치유·자발성이라는 공동체성의 외화(外化)**입니다. 교회의 공동체성이 밖으로 드러나 **공적 선(善)**을 이루는 것, 그것이 곧 공공성입니다.


"이웃을 향하는 교회"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 흐름을 스스로 막아왔습니다. ‘성장’이라는 언어가 ‘확장’의 사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공동체가 내부의 필요와 논리에 갇힐 때, 빛의 방향은 흐려지고 소금의 짠맛은 사라집니다. 빛은 비치어야 빛이고, 소금은 스며들어야 소금입니다. 문턱을 낮추지 못한 공동체는 등잔 밑이 어두운 집과 같습니다. 지금 필요한 회개는 멈춘 공동체를 다시 흐르게 하는 회개이며, 담을 세우던 습관에서 문을 여는 습관으로의 전환입니다.

그러므로 공공성의 회복은 단순히 봉사 프로그램을 늘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정체성과 존재 방식에 관한 문제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가진 자원—공간, 시간, 관계망, 은사와 기술, 신앙적 가치—을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구조를 재편하는 일입니다. 예배당은 주일 하루만 사용하는 건물이 아닙니다. 더위와 추위에 지친 이웃을 위한 쉼터가 될 수 있고, 아이들을 위한 학습과 놀이 공간이 될 수 있으며, 돌봄이 필요한 가정을 위한 안식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의 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강단에서 흘러나온 말씀은 골목과 시장, 학교와 직장으로 이어져 사람들을 살리는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인적 자원은 설교를 넘어 멘토링과 교육, 동행과 중보의 형태로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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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공공성은 무한 확장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공동체가 그 방향을 잃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사람을 존엄하게 대하고, 관계를 연결하며, 공동선(共同行善)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눔은 품위를 지켜야 하고, 치유는 진실과 안전을 전제로 해야 하며, 자발성은 일부에 과부하가 쏠리지 않도록 권한을 나누고 분산하는 구조 속에서 지속 가능해야 합니다. 빛은 눈부심이 아니라 길을 보여주는 분별이어야 하고, 소금은 지나친 자극이 아니라 부패를 막는 절제이어야 합니다. 공공성의 회복은 더 많은 이벤트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상 속에 공적 책임과 사랑의 질서를 새기는 일입니다.


다시 에스겔의 환상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강은 처음부터 깊지 않았습니다. 발목에서 시작하여 무릎과 허리를 지나, 마침내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공동체의 공공성도 이와 같습니다. 거대한 사업보다 작은 흐름이 중요합니다. 한 교실의 문을 여는 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주중의 빈 공간을 열어 이웃의 삶과 연결되는 일. 이런 작은 흐름이 모여 결국 사람을 살리는 강이 됩니다. 그 강이 흘러갈 때, 메말랐던 관계가 다시 싹트고, 소금기만 남았던 자리에도 생명이 돌아옵니다. 공동체가 성전의 물처럼 흘러갈 때, 도시의 사해는 다시 호흡을 시작합니다.


공동체 다운 공동체, 교회다운 교회

예수님의 말씀은 선택이 아니라 존재 선언입니다. “너희는 빛이다, 소금이다.” 그러므로 공공성은 부가 기능이 아니라 공동체 본질의 증거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공공성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선교 전략을 잃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성을 잃는 것입니다. 반대로 공공성이 회복될 때, 공동체는 다시 신뢰를 얻고, 세상에 희망이 됩니다. 살아 있는 공동체의 생명은 경계에서 드러납니다. 문턱을 낮추어 안과 밖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공동체는 가장 교회답습니다.

이제 질문을 남깁니다. 당신의 공동체는 지금 어디로 흐르고 있습니까?


등잔대 위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등불입니까, 아니면 골목의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까? 소금단지 속에 갇힌 소금입니까, 아니면 상한 이웃의 삶을 지켜내는 소금입니까?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사해를 살렸듯, 우리의 공동체가 세상 속으로 흘러갈 때, 도시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공동체의 공공성은
닫힌 울타리 안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흘러갈 때 살아납니다




다음 회 예고 ㅣ 8월 21일 목요일 연재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공동체"

-나눔과 치유, 자발성이 향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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