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치유, 회복을 넘어 재생의 공동체로
치유는 단순히 과거의 상처나 현재의 아픔을 덮어두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회복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용기 있는 여정입니다. 이 여정은 개인의 내면 깊은 곳을 넘어, 깨어진 관계와 공동체의 아픔까지도 끌어안는 총체적인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치유의 시작은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우리는 흔히 상처가 아물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회복은 단순한 원상복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상처의 흔적을 통해 이전보다 더 완전하고 강한 존재로 '재생'되는 은혜입니다. 마치 찢어진 옷이 기워지며 더 단단해지고, 부러진 뼈가 붙으며 더 강해지듯, 우리의 연약함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드러날 때, 그 상처는 역설적으로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문제들까지 치유하는 영적인 통로가 됩니다. 이처럼 치유는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새로운 생명력의 증거로 바꾸는 놀라운 신비입니다.
성경은 치유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의 모든 아픔과 연결되어 있음을 선포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육체적 고통은 물론, 영적이고 관계적인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근원이 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여호와 라파(Jehovah-Rophe)', 즉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소개하십니다(출애굽기 15장 26절). 이는 치유가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고치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혼, 몸, 관계의 온전한 회복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치유 만능주의'**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치료자이시지만, 모든 고통이 우리의 신앙 부족 때문이 아니며, 모든 질병이 즉각적으로 기적처럼 치유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더 깊은 뜻을 발견하며 인내하는 것 또한 영적인 치유의 중요한 과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도했듯이, 하나님의 치유는 우리의 존재 전체를 포괄하는 완전한 사역이지만, 그 회복의 때는 온전히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유하시는 세 가지 활동으로 요약됩니다(마태복음 4장 23절). 이 세 가지는 각각 분리된 활동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가르쳐 깨어진 영혼을 치유하셨고, 복음을 선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셨으며, 병든 육체를 고치심으로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이처럼 영혼, 관계, 육체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회복이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누가복음 10장)는 이 치유의 관점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훈을 넘어, 상처 입은 인류를 구원하고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상징합니다. 그는 우리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죄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며, 하나님과의 온전한 회복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공동체가 ‘회복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상처 입은 죄인들이 서로를 용납하고 고통을 나누며,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를 경험하는 영적인 병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치유의 주체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며, 교회가 그분의 사랑이 흐르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위선적인 가면을 쓰는 문화가 아니라, ‘정서적 안전지대’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자신의 아픔과 연약함을 드러내도 비난받지 않고 오히려 깊이 품어지는 공간이 교회여야 합니다. 이러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용서와 용납’의 태도입니다. 서로를 정죄하지 않고 품어줄 때, 우리는 상처를 숨기지 않고 마주할 수 있고, 그 안에서 공동체는 함께 치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치유는 또한 개인의 내면을 넘어, 세상의 고통과 아픔까지 끌어안는 확장된 사역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는 세상이 말하는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논리가 아니라, '깨어진 것을 다시 살리는 재생'의 논리에 닿아 있습니다. 예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신 것처럼, 교회는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향한 사회적 불의 앞에서도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치유 사역은 단지 개인에게 위로를 주는 것을 넘어, 상처 입은 사회를 향한 정의와 회복의 공공선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치유 사역이 당신을 통해 어떻게 확장되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교회공동체의 치유는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함으로서
단순한 회복을 넘어 더욱 더 완전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음 회 예고 ㅣ 8월 14일 목요일 연재 됩니다
" 공동체란 무엇인가?" - 자발성의 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