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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들의 옷을 벗겼을까?

키워드로 풀어보는 예술, 예술가, 그리고 삶

by 여운

스펜서 튜닉이라는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1992년부터 공공장소를 배경으로'집단 누드사진'을 찍어온 사람입니다.

수백, 수천 명 최대 2만 명이 넘는 대규모의 인원이 참가하여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지금껏 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공공장소를 누비며 촬영을 해 왔습니다. 초창기에는

공공기관과의 다양한 마찰로 몰래 촬영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현재 그의 촬영 현장은

지역의 축제처럼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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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학교 시절 땀에 젖은 제복을 입고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있는 대열 속의 군상들이 자유를 갈구하는 것을 보며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초창기 그는 뉴욕의 공공장소에서 누드촬영을 시도하다가 여러 번 체포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왜 흔쾌히 누드모델로 나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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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찍은 사람들의 인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마치 나의 몸을 보는 듯이 배가 나오고 어깨가 굽은 노인들 가슴이 축 쳐진 할머니, 상품화된 모델들의 몸매는 결코 아닙니다. 포르노는 더더욱 아닙니다. 수많은 우리네 갑남을녀들이 아름다운 건물이나 풍경을 뒤로하고 맨몸으로 촬영에 임했습니다.

단지, 기념으로 촬영된 사진을 선물 받는 것 외에는 특별한 모델료나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갈 수 록 더 늘어만 갑니다.


아마도 스펜서 튜닉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옷을 벗게 한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의 반학급의 단체사진 한 장을 찍는데도 꽤 많은 수고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수백수천의 옷을 벗은 사람들이 때로는 줄지어 때로는 얼음 산과 바닷물에 반쯤 몸을 담근 채 한 장의 마음에 드는 오케이 컷을 건지는 것이 얼마나 수고 로운 일일지 상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광장에 도열해 있는 수많은 나신들의 건너편에는 그들이 입고 온 옷들이 또한 줄지어 질서 있게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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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들은 왜 이런 작품에
흔쾌히 참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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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 McCartney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영국 런던 뒷골목에 작업실을 펼쳐 놓고 인체를 표현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특별한 작업을 해 오고 있습니다. 인체 중에서도 여성의 '질'을 석고로 본을 떠서 작업을 하는 독특한 예술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작품의 제목은 "the great wall of vagina"입니다.

세계 모든 대륙의 인종들 모녀와 자매, 18세에서 부터 76세에 이르기까지 막론하고 그는 여성의 질을 석고로 본을 뜨고 작업을 해서 '질의 만리장성'이라는 연작의 작품으로 전시를 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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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질의 모형을 석고로 작업하는 것에 동의 한 사람들은 자비로 영국 런던에 까지 날아와 그의 작업실에 불편한 자세로 누워 차가운 석고로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위를 본을 뜨는 작업을 흔쾌히 진행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본이 뜨여진 작품은 대형 석고 캐스트 프리즈로 작품화되어 도록에 실리기도 하고 전시되기도 합니다.



왜, 이들은 이런 작품에
흔쾌히 참여할까요?




예술의 주체가 된다는 것

예술의 향유자가 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말로 하지 못하는 정서의 문제, 획일화되고 제도화된 사회에 일탈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를 든 두 작가는 이러한 우리들 속의 욕구를 건드리고 그것에 참여하게 만든 특별한 케이스 인지 모릅니다.


나는 저들의 작품이 추구하는 예술의 세계나 작품성에 대해서는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것인 과연 예술인가?라는 제복 입은 질문에도 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관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입니다.


예술가는 우리들에게 쌓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말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 말하게 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분명한 것은 스펜서 튜닉의 사진 작업이 이루어지는 도시는 이른 아침부터 일탈과 함께 축제가 시작되며 촬영을 하는 내내 참가하는 모두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하루를 보낸 다는 사실입니다.

찝찝하고 불편한 석고 본뜨기를 견뎌내는 수많은 여성들은 그 어떤 대가도 없이 스스로 찾아와 그 불편함을 감수하지만, 자발적으로 즐거워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속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비 논리적인 정서가 있습니다.

예술 혹은 예술가는 그들의 정서를 이끌어 내고 말하게 해 주는 사람입니다.


결코, 예술가는 예술가 자신의 특별하고 고귀한 철학을 어려운 예술에 얹어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술의 주인은 우리 모두입니다.


저들은 스스로 벗었습니다.

예술의 주체는 시민 스스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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