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풀어보는 예술, 예술가, 그리고 삶
뱅크시는 지난 2018년 소더비 경매를 통해 자신의 작품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가 낙찰 후 현장에서 파쇄되는 장면을 보여 주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반쯤 파쇄되고 멈춘 그 작품은 이후 작품의 제목마저 바뀌었습니다.
(Getting Banksy-ed) <LOVE IS IN THE BIN> '뱅크시에게 당했다'
과연 그럴까? 소더비는 뱅크시에게 당했을까?
이 질문은 잠시 미루어 두고,,,,,,,
뱅크시는 지난 시절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테이트 미술관 등 뉴욕과 런던의 대형 미술관에 숨어 들어가 그의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뱅크시 스스로 자신이 몰래 전시했다고 고백하기 전까지 그 작품들이 몰래 전시되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도대체 예술품의 전시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어떤 작품은 미술관에 전시가 되고 어떤 작품이 그 가치가 수억 혹은 수백억 원에 이르는 것일까요?
뱅크시의 질문입니다.
뱅크시의 조롱은 극에 달합니다. 시대 배경과 맞지 않는 방독면과 스프레이를 든 초상화를 버젓이 전시 해 두고 관람객은 물론, 큐레이터 들 조차 알지 못하는 현실을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몰래 전시를 하기 전 스프레이 물감을 들고 영국의 곳곳 건물에 그렸던 작품들은 그다음 날 바로 지워지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훼손당하기도 했습니다.
밤새 그려진 그의 작품은 '키스를 하고 있는 두 남자 경관' '바람을 피우다 들켜 창문 밖에 알몸으로 도피 중인 남자' '길가에 노상 방뇨하는 경관'등 기존의 윤리와 질서를 비꼬고 들춰내는 그의 정서가 드러나 있었고 건물주를 비롯한 그의 작품이 불편한 사람들에 의해 벽화는 즉시 훼손되곤 했습니다.
똑같은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되면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거리에 그려진 그의 작품은 훼손당하고 파괴당했습니다.
뱅크시는 물었습니다
니들이 예술을 알아?
그러나, 영국이나 미국은 그의 이러한 조롱을 받아들이는 패기가 있습니다. 미술관은 그가 걸어 둔 작품을 '영구 소장'하기로 합니다. 우리의 미술관과 비교해 보고 싶은 대목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유사한 일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거지?
한 걸음 더 나가면
누가 내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거야?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을 길거리에서 직접 판매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30,000달러를 호가하던 친필 사인이 담긴 그의 작품을
단돈 60달러에 내어 놓았지만 종일 고작 3점이 팔렸습니다.
이제 런던에 남아있는 뱅크시의 그라피티는 건물주들이 유리벽을 만들어 보존하거나. 특수한 방법으로 유지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낙서들은 엄청난 가치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작품이 그려진 벽을 뜯어가는 도난 사건까지 생기기도 했으니까요,
런던에는 뱅크시의 낙서들을 따라 투어를 하는 프로그램도 생겨났습니다.
카트를 공격하는 원시인을 그린 그림과 고대 벽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미술관, 외설과 도발을 그려놓은 건물의 외벽의 가치가 갑자기 올라가는 일.
그러나, 파쇄기를 거친
그의 작품은 가격이 더욱 올랐습니다.
또다시 뱅크시에게 당한 것일까?
소더비는 뱅크시에게 당한 것일까??
아닙니다.
소더비는 그들을 향한 조롱마저도 상품으로 바꾸고 그것의 가치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분쇄기가 달린 그의 작품을 소더비가 사전에 인지 하지 못했을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소더비는 권위와 가치에 대한 도전 자체도 흥행성이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내었습니다.
적어도 소더비와 뱅크시는 "동상이몽"을 꾸며 동지가 되었겠지요.
어쩌면 이것 역시 뱅크시에게 당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예술의 권위에 조롱과 대항을 하는 뱅크시
그러나, 그 대항과 조롱마저 상품화하는 예술시장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가치는 더 높아지는 현실
저항과 항거가 또 다른 질서를 만드는 장면입니다.
어쩌면 예술의 권위에 대항하고 그 질서를 파괴 함으로써
또다시 자신의 권위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뱅크시.
아니면, 적어도 그것을 즐기는 뱅크시.
확실한 것은
예술 테러리스트를 소더비는 고용을 했고
뱅크시는 적당히 타협하고 있습니다.
소더비에서 파쇄되는 그의 작품은
과거 미술관의 전시된 작품처럼
절대로 몰래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에.
그는 더 이상 예술 테러리스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소더비가 뱅크시에게 당한 것이 아닙니다.
소더비와 뱅크시에게 우리가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던지는 질문
예술의 가치는 누가 결정하지?
이 대답은 적절하고 유효한 질문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뱅크시 덕분에
적어도 우리는
내 작품이 예술인지 아닌지
가치가 어떻게 평가될 것인 가에 대해
긴장하고 주눅 들지 않아도 좋을 듯합니다
내 작품에 누가 시비를 걸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임으로.
니들이 예술을 알아?
예술의 가치는 결코 누군가 정해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애당초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고유한
정서의 문제 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