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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Jun 19. 2020

글 쓰는 사람의 루틴 -연필을 깎으며

브런치를 여는 험난한 여정

아주 오래전 어느 티브이 교양 프로그램에 박동규 교수가 나와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아버지의 서재에서는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가 들려오면 어머니는 아이들을 등에 업고 손목을 잡고 희미한 가로등이 켜지는 골목길로 마실을 나가셨다고 합니다.  

 그 가로등 골목으로의 늦은 마실은 저녁마다 이어졌고, 바람 부는 날이나 눈, 비 내리는 추운 날도 어머니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마실을 나가셨다고 기억합니다.


 



글을 쓰고자 브런치를 열 때 만나는 몇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단상이 떠오르고 그것을 붙잡고 어떻게 하던지 빨리 글자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만 있는 경우. 이때는 그냥 컴퓨터를 켜고 부팅도 채 끝나기 전  브런치를 향해 마우스를 클릭하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일단 적기 시작합니다.

이런 날은 비교적 쉽게 글 한편을 탈고합니다.


그러나. 조금 묵직하거나 '이런 내용'에 대해 써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한 경우는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포털사이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기사라도 하나 만나면, 글을 쓰고자 컴퓨터를 켰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여하튼 포털은 무조건 경유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유튜브도 한번, SNS도 한번 일일이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어렵게 브런치를 클릭해도 브런치 피드와 나우를 거치다, 좋아요라도 몇 번  클릭하다 보면 다시 인터넷으로 돌아갑니다.

결국은 제목만 적어 놓고 몇 시간을 헤매다 브런치를 종료합니다.

그래서인지 나의 서랍애는 못 끝낸 글들이 수두룩 합니다. 이상하게도 이런 글들은 그냥 탈고가 되지 않은 채 서럽게 계속해서 쌓이기만 합니다. 억지로 완성을  하게 되더라도 웬만해서 발행이 잘 안됩니다.




어린 시절 글을 쓸 때는 늘 대학노트 한 권을 준비해두고, 탁상 스탠드를 머리맡에 내려놓고 매일 밤마다 엎드린 채 습작 노트의 처음부터 다시 읽습니다. 처음 생각을 옮긴 글은 한 페이지를 다 못 채우기 일쑤이고, 그러면 다음 페이지로 옮겨 적습니다. 옮겨 적으면서 표현을 바꾸고 생각을 이어갑니다. 또 한 페이지를 더 넘기고 또 이전 페이지를 옮겨 적으며 수정을 거듭합니다.

두꺼운 대학노트 한 권의 뒤쪽에 가서야 한 편의 시가 탈고됩니다.


이런 글쓰기는 고등학교 시절 처음 시를 알려준 선생님의 덕인가 싶습니다.

시문학 동아리에 처음 들어가자 선배들은 시 한 편의 완성을 시인이신 선생님께 찾아가 글을 보여주고 빨간 줄이 그어지지 않은 채 돌아오는 그 원고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날부터 점심시간, 쉬는 시간 선생님께 글을 적어 달려갔습니다.

처음 썼던 글이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도시의 밤'의 황량한 풍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처음 제 원고를 보고 아마 10줄 남짓한 글 중 3~4줄은 좋은 표현이라 동그라미를 쳐 주셨고, 또 3~4줄은 다른 표현으로 고쳐 보라 했습니다.

다음날 고쳐서 들고 간 그 원고는 또다시 그 정도의 동그라미와 빨간 줄이 그어졌습니다. 아마 20번 이상 찾아가서 글을 보여 드렸던 같습니다.

마지막, 빨간 줄 하나 없이 그대로 내게 다시 돌아온 원고를 받아 든 그날은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원고와 처음 원고는 단 한 글자도 같은 것이 없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은 시간이 좀 더 지나서였습니다.

 고교시절 시화전을 준비하는 동안 빨간펜과의 씨름은 끝없이 이어졌고 한편이 완성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가는 것을 느끼던 어느 날, "이제 날 찾아오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라는 말씀을 듣던 그날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탁상 스탠드를 머리맡에 내리고 대학노트를 꺼내 처음부터 읽는 것,

박목월 시인이 저녁 무렵이면 사각사각 연칠을 깎는 것.

감성의 문을 열고, 글이 써지는 길을 여는 아름다운 습관입니다.




요즘, 루틴이라는 뜻을 '하루에 꼭 정해진 행동을 하는 것, 시간을 정해 꼭 하는 것'이라 설명하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딱히 잘못된 설명이라 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는 사람의 루틴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원고를 쓰는 프로그래밍된 것을 일컫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시간 훈련된 작가들은 결과적으로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원고를 써내었지만 그것 자체가 결코 루틴이 될 수 없습니다.


 글 쓰는 사람의 루틴은 내 몸에게 글이 써질 준비를 시키는 과정입니다. 사각사각 연필을 깎기 시작하면 주위가 정리되고 생각이 모아지고 이제 글이 써지겠구나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순서.

글 쓰는 사람의 루틴은 잡다한 정보매체와 미디어, 소음과 단절되고 내 속에 있는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시간입니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관들을 잠시 닫아 두고 들어온 정보들을 올곧게 내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루틴은 바로 그 과정을 위한 끌 것은 끄고 켤 것은 켜는 과정입니다.


글 쓰는 사람에게 루틴은 외로워지고 혼자인 시간으로 자신을 인도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정래 작가처럼 혹은 이외수 작가처럼 단호하지 못합니다.


나는 오늘도 컴퓨터를 켜면서 글 쓰는 새로운 루틴을 정착시키기 위해 온갖 포털사이트와 유튜브 알림의 검문과 검색을 거쳐야 조용한 책상에 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매번 검문에 걸려 몇 시간 인터넷을 헤매다 잠이 드는 날이 더 많습니다.


이제는 연필을 잡아도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처음 워드프로세스를 만났을 때 저 혼자 껌벅거리는 커서를 바라볼 때의 비참함이란.....

이제, 자판으로 사고를 합니다. 연필보다도 자판이 사색을 더 빠르게 합니다. 사실은 초고 없이 컴퓨터로 글쓰기까지의 길은 험난했었습니다.


지금도, 컴퓨터를 켜고 브런치의 발행 버튼을 누르기 위해  온갖 신선한 유혹을 버티고 가장 빠르게 내 몸에게 글 쓸 명령을 내리기 위해 오늘도 다양한 경로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자유자재로 글 쓸 준비가 되는 내 몸을 만들기 위해 트레이닝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지요. 언젠가는 다른 길로 새지 않는 모범생이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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