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서둘러
간혹 자녀 학업 관련 카페 글을 읽다 보면 이해 안 되는 말이 하나 있다.
'정말 공부를 해보긴 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내가 공부를 그만큼 해보지 못해 이해를 못 하는 걸까?'
"끝 내 다."
초등 때까진 영어를 끝내고, 중등 때 고등수학까지 끝내고.. 고등 땐 또 뭘 끝내야 하나 싶은데 끝낸다는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 것이 의아하다. 가끔 나만 딴 세상에 사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생각이 많고 복잡한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마무리 짓는 것은 죽기 전까지 불가능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끝내기 힘든 것이 공부라 생각한다. 물론 입시를 목표한 공부라 끝이 있는 공부일 테고 목적 달성을 위해 반드시 기한안에 끝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 저장소는 무한한 것이 아니고 기억보다 망각에 더 익숙한 동물인데 끝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정말 궁금하다.
'최상위 수학 문제집을 만점으로 끝냈다. 영어학원 최고 레벨 달성!’
뭐 이런 것이 끝을 의미하는 걸까?
무엇보다 과학과 의료 발전에 의해 백세를 넘게 살아야 하는 재앙 아닌 재앙을 목전에 둔 우리는 왜 예전보다 더 열심히 지치도록 이리 서두는 걸까? 시간이 무한한 들 욕심 없이 살지 않을 인간이지만 넉넉하게 주어진다고 여유롭지 못한 것이 인간임을 자청하는 것 같다. 물론 주어진 시기에 맞게 해야 할 것들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시기를 놓친다고 해서 다시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고, 삶을 포기할 정도의 시련 또한 없다고 본다.
그저 누구보다 빠른 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위해서 끝내려는 작업을 하는 거겠지만 과정의 즐거움 없이 목표물만 그것도 성인 스스로의 삶을 위해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인생을 어른들이 결론 내어 마무리 지어주는 모습이 안타깝다. ( 가끔 나란 인간도 그런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살짝 부럽기는 하다. )
내 아이가 누구보다 빠른 끝냄으로 그다음을 준비할 여유와 자세가 갖춰져 있다면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느낌으로 감정이 상할 일 없이 무난하게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게.. 육아의 스트레스나 자식을 키우는 책임감이 싫거나 버거워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어난 것처럼 언젠가 우리는 집안에 인간의 형태를 띤 로봇 자녀가 등장하고 그래서 누군가와 경쟁하거나 끝내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애완동물 대신 자녀 대신 로봇 자녀들 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암튼 끝낸다는 표현에 꽂혀 로봇 자녀라는 말도 안 되는 결론까지 왔는데 자녀를 키워보니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다는 것을 점점 더 많이 깨닫고 있는 시기에 호기 있게 "끝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학부형이 존경스러워 오늘도 주절거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