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을 두려워말자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겠지만 반면 매사에 불만이고 불만족하며 타인과 비교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성향의 경우 본인뿐 아니라 가족 또한 힘들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을 대체적으로 부정적 사고를 가진 자라 판단하지만 긍정과 부정을 단정하긴 쉽지 않다.
나의 경우 주변 지인들에게 긍정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실제로 스스로는 의심과 불안이 높은 사람이라 여기는데도 말이다. 이는 아무래도 부정적인 기운을 낮추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애쓰는 긍정 기운을 타인 앞에 내세우는 경향이 짖어서 인 것 같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스스로를 긍정적인 인간인가 부정적인 인간의 기준을 타인의 눈과 입으로 확인하지 않길 바라며 각종 책과 논문에서 언급하는 표본을 내게 자꾸 적용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습관을 버렸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고 사례나 주변의 조언으로 도움을 받은 경우도 많았으나 결국 내 생각과 판단이 우선되지 않은 상황은 희극보다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주변의 시선과 조언에 귀를 닫고 눈을 피하기란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육아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라면 한 번쯤은 가입해봤을 만한 카페의 경우 너무나 많은 사례와 정보로 넘친다. 염려와 우려로 나의 고민과 사연을 토로하게 되는 순간 타인에게 내가 언급한 내용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과장될 때도 있고, 의도와 다른 답을 받게 될 때도 있다. 그런 경우 맘에 들지 않으면 삭제 해버 리거나 어차피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기에 크게 상처 받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 만남은 그러기 쉽지 않다. 서로가 주고받는 대화 이상 눈으로 보이는 나의 가족의 모습이 내 뜻대로 보이지 않거나 표현되지 않으면 당황스럽고 난감하다. 나의 경우 내 아이가 인형같이 가만히 있지도 않고,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행하는 성향도 아니었기에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역부족을 느낄 때가 많았다.
"집에서는 이러지 않았는데..."
무언가 변명하고 수습해야 순간을 모면할 것 같은 약한 대사라도 하나 던지면 그것은 곧 상대에게 먹이가 된다.
‘당신 자녀에게 이렇게 해줘야 될 것 같다.’
‘아이가 엄마에게 갖는 감정이 이래서 이런 것 같다.’
‘내 사촌, 내 형제도 당신 자녀와 비슷했다.’
‘주변 사례를 예를 들며 성장하면 이런 일을 겪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등등 어느 심리상담가나 육아전문가보다 프로페셔널한 자세를 취하는 학부모를 만나게 되면 갑자기 숙연해진다. 아니면 불안에 떨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더 흥분하는 경우도 있다. 그도 나도 아마추어인 것은 자명한데도 말이다. 그런 자세가 그저 부모로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마음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런 말을 듣고 우리는 아이를 가만두지 않는다. 타인의 눈과 귀에서 나온 것을 마음에 품고 아이를 고쳐보려 애쓴다. 이는 지인뿐 아니라 육아서를 읽고서도 하는 시행착오인데 지인의 조언은 육아서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유는 부모가 창피해서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감정적인 대응을 하기가 쉽다.
‘네가 이래서 내가 이런 말을 들었다. 당장 고치지 않으면 혼내주겠다. 다시는 나에게 이런 창피를 주지 말길 바란다.’란 속내을 품고 말이다.
번듯하고 잘 키운 아이를 둔 엄마의 조언일수록 더 강력하게 자극이 되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진심을 다해 조언하는 학부모의 말에는 더 맥을 추지 못하며 수긍하기 일쑤다. 그래서 나아지는 것은 하나 없고 결국 내 아이를 사랑의 시선이 아닌 몇 시간 지켜본 타인의 눈에 의해 조정하려 들었기에 아이도 당혹스럽다. 어제의 엄마가 아닌 다른 엄마가 온 것 같아 혼란스럽지만 당해낼 재간이 없는 어린 자녀는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드는 순간 자녀 또한 부모를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나의 인격체를 무시하고 깔 본, 줏대도 없는 양육태도를 가졌던 부모를 향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자신에게도 의견이 있고, 자신도 생각이 있으니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말에 좌지우지되지 않겠다고 말이다.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지 않은 대가로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느라 바쁜 시간에 아이는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자아가 확립되며 부모와 같이 부모의 말보단 타인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친구나 셀럽에 빠지며 그들의 말에 맹신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기적인 엄마가 되자.'라고 말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너무 높게 정하지 않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누군가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아이가 가장 편할 수 있는 기분이 좋은 상태를 유지시켜 주기로 마음먹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아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시선 따위 내팽개치고 온전히 내 아이만 바라보는 어미가 되도록 마음먹었다. 게임을 무한정하고 유튜브를 하루 종일 보며 외출을 거부하며 방안에만 있더라도 내 아이에겐 지금 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해해 주려 노력했다. 누군가는 이러면 안 된다는 시선과 말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내 아이를 인정해 주고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니 무언가에 빠지고 신나 할 때마다 난 숙제나 공부를 시킨다며 가로막았다. 누군가 또는 육아서에서 이 시기엔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고 배웠기에 혹여나 하지 못한다면 안절부절못했다. 어떤 것도 증명된 바도 없고, 아이들마다 각자 개성과 특성이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내 아이를 통상적인 기준치에 맞춰 키워내야 좋은 부모라 여겨질 것 같아서였다. 소위 말하는 '엄친아'에 함정에 빠져 나도 그런 아이를 키운 어미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이젠 그런 환상을 버리고 진짜 엄친아. ‘엄마와 친한 아들’로 키우겠다 마음 자세를 바꿔 먹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아이로 키우기보다 부모와 함께 행복하게 자라는 안정감 있는 아이로 키우겠다 마음먹고 나니 모두가 편안해졌다. 아이도 남편도 나도 말이다.
그래! 난 이기적인 엄마가 되기로 했다. 더 이상 타인의 시선으로 아이를 괴롭히고 증명되지 않은 잣대로 아이를 측정하지 않기로 했다. 난 진짜 아들과 친한 엄마, 엄마와 친한 아들이 되길 바라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