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만든 습관, 멀티태스킹

그 늪에 몰입을 돕는 구원, 외부의 강제성

안녕하세요. 플러수렴입니다.




<오늘의 글감>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작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은 "하는 동안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대로 들지 않는 일은 글쓰기뿐이다."라고 말했다. 내게도 글쓰기가 그렇다. 머리에서 생각을 끄집어내 글로 옮길 때 나는 운명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세상이 멀리 사라지고 나는 내 안에 온전히 빠져든다.

하는 동안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일, 당신에게 그런 일은 무엇인가? 언제 마지막으로 그 일을 해보았는가?




저는 이 글감을 보고

왜 '멀티태스킹'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을까요.


뇌를 망치는 주범 중에 하나가

멀티태스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알면서도

멀티태스킹을 자주 합니다.


노트북으로 어떤 작업을 하면서

휴대폰을 확인하고,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밥을 먹거나 설거지를 하고,

심지어 TV를 보면서 휴대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넘기기도 합니다.


A를 하면서 "B, C도 해야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돕니다.


어떤 날은 이것저것 해야 한다는 생각의 무게에 짓눌려,

그 어떤 일도 온전히 하지 못한 채

"아, 이거 하고 자야 하는데..."라는 중얼거림과 함께 불을 켜둔 채 잠들기도 합니다.


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이는 동안,

제 뇌는 불안함과 분주함에 절여져 스스로를 마비시키는 것 같습니다.

온전한 몰입을 허락하지 않는 대신,

불안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며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이죠.




그런 제게,

몰입을 허락하는 구원이 있습니다.

바로 외부의 강제성입니다.


첫 번째 강제성은 데드라인입니다.

마감에 쫓기는 상황.

그때서야 비로소 머리에서 모든 파도들이 잦아들고, 오직 하나의 닻만 내립니다.


마감에 쫓겨 긴장하고 바쁜 채 어떤 일을 하다보면,

"이 일을 균등하게 매일매일 했으면 얼마나 마음이 평화로웠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미리미리 균등하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제게는 현실이 아닌 이상이라는 것을요.

마감이 있으니 결과물이 어떤 것든 나오는 것이란 사실도요.


두 번째 강제성은 시험 시간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지만,

모두들 각자의 눈 앞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그 고요한 시간.

옆자리 응시자의 기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오직 문제와 답안지에 풀로 집중하는 그 시간을

저는 즐기는 편입니다.

시간제한과 규칙이라는 엄격한 통제 아래서,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생각을 제쳐두고 집중하는 그 시간이

평화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외부의 강제성을 만듭니다.


어떤 시험을 신청하고

스터디나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동참하고,

누군가에게 제가 먼저 "언제까지 공유하겠다"며 선언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기한을 부여합니다.


혼자서는 산만함을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외부의 강제성을 통해 '운명적인 몰입'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저는 '마감'이나 '시험'이라는 폭력적인 상황에서야 겨우 몰입이라는 평화를 얻는 듯합니다.

저에게 '하는 동안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대로 들지 않는 일'은

이제 '데드라인 직전의 일' 혹은 '엄격한 평가가 따르는 시험 상황'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이것 또한 진정한 몰입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이 장치들을 통해

스스로를 움직에게 하는 동력을 얻고

짧지만 몰입에서 비롯된 평화의 순간을

제 뇌에 선물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외부의 강제성을 빌려

겨우 몰입을 흉내 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운명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으로

온전히, 푹 빠져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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