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삼행시에 담은, 나를 지키는 마음
안녕하세요, 플러수렴입니다.
<오늘의 글감>
시인 되어보기.
시 한 편을 필사하고 나만의 시 한 편을 완성해보세요.
'시'.
왜인지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 시인을 꿈꿨던 적이 있어요.
나름대로 시를 모아서 적어두는, 작은 노트도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시'라는 단어를 잊고 지낸 지가
몇 년은 된 것 같습니다.
가끔 지하철역에서 좋은 시를 읽고, '잘 썼다'고 생각하는 찰나만 있었달까요.
그래서 오늘의 글감을 받고는
"와. '시'라는 단어 자체가 정말 오랜만이다. " 고 생각했습니다.
시를 써보기는 커녕
읽어본 기억도 가물한데,
도대체 어떻게 시를 써야하나 고민했지요.
그러다,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는
한 작가님께서 삼행시를 작성하신 것을 보고,
저도 삼행시를 써보았습니다.
이방인
이 '이타심 있는 나'에 취해, 이것주것 내어주며
방 방심하고 경계를 풀어버린다면
인 인간의 욕망에 탄식하게 되리라
한민족국가라 불리던 우리나라는 이제
아시아 최초의 '다인종ㆍ다민족 국가'라고 합니다.
국내 외국인 비율이 5%를 넘어서서
OECD 기준, 다인종ㆍ다민족 국가로 분류된다고 하네요.
그런 만큼 요즘은
외출을 해서
단 한 번도 외국인을 만나지 않는 날이 드뭅니다.
지방, 시골, 서울과 수도권 어디에서든요.
외출 중에 문득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그 단어를 주제로 시를 작성해보았습니다.
이 삼행시의 '이방인'은 단지 국적이나 민족이 다른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 때도 필요한
'건강한 자기보호'와 '명확한 경계' 설정의 메지를
담아내고 싶었는데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는 말처럼
처음에 작은 호의로 시작한 '도움'이
나중에 나의 '책임'이나 스리슬쩍 나의 '일', '의무'처럼 되어버리기도 하니까요.
혹은, 굴러온 돌에게 자리를 빼앗긴 '박힌 돌'처럼,
타인에게 상처받거나, 나의 울타리가 위협받기도 합니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탄식하지 않으려면
호의의 온도는 따뜻하되, 선을 분명히 하는 냉철함이 필요합니다.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착한 사람 증후군'인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려고 하거든요.
제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이타심'은
어디까지나 '나'가 단단하고 안전하게 지켜진 상태 위에서만
비로소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뇌입니다.
누군가를 위한 마음 안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지혜의 필요성.
나만의 명확한 선과 경계.
그것이 오늘 제가 시에 담아본,
제가 저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