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지 낀 환기필터가 내게 준 메세지
안녕하세요 플러수렴입니다.
오늘 오후, 발코니의 배기장치 하자 처리를 위해, 수리기사님께서 방문하셨어요.
접수했던 하자 관련해서는 약간 눈에 거슬리지만, 이중처리가 되어있어서 환기기능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혹시 필터는 갈았던 적이 있냐으세요?"하고 물어보시더라구요. "아니요, 한 번도요"라고 대답하자, 한 번 확인해주신다며 필터를 뽑아 꺼내셨는데.... 정말, 엄청 새까만 먼지층이 수북히 쌓여있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꼭 필터 교체해주세요. 요 며칠 여러 집 하자 처리하면서 봤는데, 이 집 필터가 제일 심각해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왜 그 말씀이 뭔가 '환기구 필터'만이 아니라 '제 일상'에도 던지는 말씀같이 느껴졌을까요..?
수리기사님께서 가시고 난 후, 한 몇 분을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어요.
'내 삶에서 필터는 무엇일까?'
'그 필터, 교체주기가 지난 것은 아닐까? 지금 제 기능을 하고 있는 걸까?'
'혹시 나는 먼지 낀 채로, 무의미하게 돌아가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오늘은 이 주제에 대해서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는데요.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 벌써 밤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도 저 질문들에 대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도저히 키보드 앞에 앉을 수가 없었어요.
미루고 미루다 결국 지금 이렇게 앉아있습니다. 23시 50분까지는 글을 마치자고 저와 약속했으니까요.
다만, 제가 저런 질문을 떠올렸다는 것 자체.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꼭 필터 교체해주세요" 그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찡하고 뜨끔했던 그 기분..
그 이유를 조금은 알 듯합니다.
그건 아마, 최근의 제 모습이, 요즘의 제 생활이 저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
먼지로 가득 찬 새까만 필터는, '나 자신도 점검이 필요하다'는 메세지를 주었고,
내 삶의 필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으나,
최근 제 마음에 쌓여있던 먼지 같은 것들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완결되지 않은 고민들', '계속 미뤄둔 생각', '익숙해져 버린 나태함' 같은 것들 말이에요.
생활공간이 변하면서 다시 한 번 세워보았던 수많은 목표들.
그 중 많은 것들을 제대로 실행해내지 않았던 요즘의 저.
머릿속에 맴도는 '해야하는데' '그런데 하지 못했네' 라는 생각들이 먼지처럼 켜켜이 쌓이고 쌓여
제 하루가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라는 필터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시간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것도 같구요.
먼지가 쌓여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필터.
"최대한 빨리 새 필터를 주문해서 바꿔주세요"라는 말씀처럼 저도 제 안의 어떤 불순물들을 닦아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습관일 수도 있고, 생각의 방식일 수도 있고,
혹은 저조차도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일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그저 계속 돌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숨 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가 제대로 기능해내기 위해서는,
때때로 멈춰 서서, 나를 들여다보고,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는 '환기'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내일은 환기 필터도 교체하고,
제 마음의 먼지들도 조금 더 닦아내는 그런 하루로 지내야겠습니다.
저희 집도,
그리고 저도,
좀 더 상쾌한 공기로 더 잘 숨쉴 수 있게 되는 그런 하루를 맞이할 생각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겠어요.
문득 위안이 되는 것은
이 브런치라는 공간이 저에게 작은 '환기구' 같은 존재라는 점이에요.
글을 마치기가 쉽지 않았지만 써내려가면서 종일 찝찝했던 마음이 조금은 나아졌거든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먼지를 털어내며
상쾌한, 뻥 뚫리는 듯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