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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pmage Jun 01. 2020

『82년생 김지영』을 읽고서

두 번째 책, 82년생 김지영

1.

연도를 알 수 없는 12월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은 매서운 칼 바람이 종일 도심을 헤집고 다녔었다. 손이 너무 시려서 문자 보내는 것도 힘들고 귀찮았었다. 그런데 멀리 떨어져 살던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성탄이 다가오고 있는데 저녁이나 한 끼 먹자고. 의외였다. 우리 남매는 서로의 안부를 서로 묻고 챙기는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고 서로에게 무관심하던 남매였다. 그만큼 전화가 온다는 것은 집안의 특별한 행사가 있거나 친족의 부고 소식이 생겼다는 거였다. 지금은 둘 다 희끗희끗한 새치가 앞머리와 옆머리에 제법 자리를 틀었고 이마와 볼에 넉살이 조금은 붙어서 예전보다 사이가 좋아진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도 그 사이가 너무 좁혀진 것은 아니다. 암튼 전화가 온 그날 당일 저녁에 누나를 영등포에서 만났다. 살갑지 못한 만큼 어색한 분위기가 둘 사이를 휘감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티를 못 낼 뿐이었다. 영등포역 근처 설렁탕 집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으며, 서로의 행간을 겉핥기 식으로 확인하다가 누나가 문득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누나가 가족과 직장에서 겪은 차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누나의 차별의 역사에 내가 변두리에 있지 않았다. 나는 그날 숨을 죽이면서 놀라운 기색을 애써 숨겨야 했다. 그날 누나가 내게 했던 모든 말이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날 내가 기억하는 것은 누나의 차분함과 담담함 그 자체였다.


누나와 나(남동생)는 연년생이다. 그 말은 누나가 어린 시절에 마땅히 받아야 하는 부모의 애정과 관심을 나로 인해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아와 유아의 올바른 정서 발달을 위해서는 만 3세까지 부모의 무조건이고 맹목적인 애정과 관심이 필수적인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박탈당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어린 누나 입장에서는 사랑스러운 동생이면서 굴러들어와 단단히 박힌 돌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절대 빠지지 않을. 물론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 누나의 마음속에 상처과 슬픔이 움 틀고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점점 크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내가 인문계에 진학할 대 누나는 여상에 진학했으며 내가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대학에 입학할 때(나도 제대 후에는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는 독립적으로 해결했다) 누나는 야간 대학을 자기가 벌어서 다녔다. 상징적인 한 예를 말하면 누나는 아버지로부터 대학 등록금을 일절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지만, 누나는 사회생활로 힘들게 번 돈을 내게 쥐여주었다. 3만 원을.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철도 없었던 나는 3만 원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영등포에서 나는 누나가 하는 말을 묵묵히 들어주며 그 어떠한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아담스미스 지음/비봉출판사)에 따르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 동류의식(Sympathy)을 느끼게 되는 원천은 상상을 통해 고통받는 자와 입장을 바꿔봄으로써 타인의 고통을 느끼거나 또는 타인이 느끼는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공감이 형성되면 생면부지의 사람이 오랜 친구로 느껴지고, 그렇지 않을 경우 세상 친한 친구가 갑자기 너무 멀게만 느껴질 것이다. 나는 누나가 담담히 자신의 차별의 역사를 나직하게 풀어내는 동안 화가 나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감하고 있었다. 누나와 내가 별반 다르지 않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고 느꼈다. 차이점이 있다면 차별의 정도와 대상이 각자 입장에 따라 다른 것뿐이었다. 나도 오랫동안 집안에서 차별을 받고 있었다. 할머니의 빗나간 자식 사랑 덕분에 손자들까지 서로 비교되고 차별받는 대물림의 소용돌이에서 나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따뜻한 밥 한 공기에 참기름과 간장을 비벼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것은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내가 82년생 김지영을 읽고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내(가족과 직장에서의) 차별의 역사에서는 성(性)을 나눌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책을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2.

사 오 년 전의 어느 날, 내 부서 팀장과 그의 단짝인 법무팀장의 행아웃에 의도치 않게 엮여서 강남대로의 어느 스타벅스 매장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 둘은 늘 그렇듯 영양가 없는 농담과 음담을 주고받으며 시시덕 거렸는데 그 정도가 심했다. 매장 안을 오고 지나가는 여성들을 보며 품평회를 했다.이미 나는 안중에 없었다. 마치 나를 그들 부류의 하나라고 여기고 안심하는 듯했다. 패담을 듣는 것 이상으로 불쾌하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웃기는 일은 법무팀장에게 딸이 있다는 것이었다. 딸을 이런 품평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문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른체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조차 이런 상황이 역겨운데, 책에서 지영도 광고주 홍보팀과의 저녁 회식에서 홍보부장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보고 머리가 지끈했을 것이다. 자신 옆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미모를 평가하고, 술을 따르라 하고, 남자친구와의 진도를 묻는 이 저속한 중년 남자가 밤늦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딸이 무섭다고 호출하니 딸을 데리러 간다는 모습에 얼마나 기가 찼을지 공감이 간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또 다른 곳에 또 다른 억울함이 있었다. 접대 회식에 빠져나갈 수 없는 그녀의 처지를 알면서 술 먹은 것을 탓하는 남자친구의 냉담한 반응이 그것이었다. 나 또한 지영의 남자친구와 같은 행동을 과거에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도 직장을 다니는 여자친구를 보면서 학생 신분이라는 초라함에 억눌려 그녀가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워 못나게 굴었던 철부지 행동들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나를 보며 가졌을 감정을 지영을 통해 받는다. 그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를 밀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3.

2018년 12월의 어느 날, 나는 사무실에서 연말을 체감하는 업무를 쳐내면서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 동료가 내게 친근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자신이 받은 단톡방의 글을 보여주었다. 독신남과 유부남끼리 어느 동남아 국가로 원나잇-스탠드를 하러 가자는 글이었다. 나를 재밌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동료에게 살짝 엷은 미소를 건네면서 '나는 관심이 없다'라고 말해주었다. 동료는 순간 1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미소로 화답하고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평소에 내가 아는 이 남자 동료는 배우자와 아이를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빠이다. 그가 진정 내게 동남아를 가자고 이야기하러 온 것이 아님을 안다. 그는 그저 나와의 재미를 위해 농담을 하러 온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 그것이 전부이다. 그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인식하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면 남성이 여성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방식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와 문화에서 우리가 자라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8세기와 19세기에 유럽을 냉철하게 바라봤던 '귀스타브 르 봉'의 유명한 저서 『군중심리』 中 '군중의 감정과 도덕성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여성을 열등한 진화 유형이라고 언급한다.


 ".... 또한 여성이라든지 미개인, 어린이 같은 열등한 진화 유형에 속하는 인간을 관찰해도....."

책의 후반에서 지영의 입사동기 강혜수가 찾아와 회사 여자 화장실 몰카 사건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남성이 몰카 사건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가 여성의 그것과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회사의 남자 동료들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내용을 사내 공유했다. 회사의 대표는 남자 동료의 가정과 미래를 걱정하며 문제를 축소하려 했고, 사진을 보고 방조했던 남자 동료들은 유포하지 않았는데 성범죄가 된다고 억울해 했다. 사실 회사의 남자 동료들은 몰카 사진을 방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고를 하는 행동은 마초적 남성조직에서 튀는 행동을 넘어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내부고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의 회사 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이고 그의 등에는 배신자란 낙인이 주홍글씨처럼 어디를 가던 쫓아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내 눈앞에서 당당히 벌어지는 사내 언어 성추행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랐고(정말 미안했어요. 글 참조), 당시 회사의 여자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러한 인식에 대해 매우 염려하고 있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과거 TV 환경에 비해 통제불가능한 디지털 및 인터넷 환경에 아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 위기의 아이들(캐서린 스타이너 어데어 지음 / 오늘의 책)은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이 아이들을 어떻게 좀먹는지에 대해 낱낱이 파헤진 책이다. 여기에 인디애나 대학 연구원 니콜 마틴스와 크리스 해리슨이 TV 시청이 아이들의 자기평가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과 성에 의한 비교 결과를 연구한 내용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백인 남자아이들은 스스로 우월하며, 여자와 유색인종을 그들 보다 하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은 여성을 단순하고 제한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로 인식했다고 한다. 그것은 여성이 자신이 가진 힘의 주요 원천은 육체와 외모뿐이라는 이야기이다. 반면, 남자아이들은 지나친 남성성 또는 남자다움에 시달린다. 다른 남자아이 또는 열등한 존재 보다 우월하고 이상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는 압박감에 원하지 않는 가학과 폭력에 노출되어 영향받고 행사한다. 책에서는 아이들이 '나로 있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를 형성하는 시기에 성 역할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고 융통성 시도를 하며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좋은 예로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년)』가 있다. 남자 주인공(제이미 벨, 설국열차에 출연했었다) 빌리는 복싱을 배우러 매일 체육관에 가다가 발레 수업에 빠지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성 정체성이 아니다)을 발레에서 찾게 된다. 발레는 여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노발대발하던 빌리의 아버지 재키도 나중에는 아들을 발레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파업을 그만두고 석탄을 캐러 갱으로 들어간다. 이후 빌리는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성장하여 백조의 호수의 주연을 맡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영화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여전히 억압된 페르소나에 갇혀 신음하고 있으며, 이들이 성인이 되면 악순환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BTS의 Love Yourself가 유독 세계 10대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노래가 그들의 페르소나를 한풀 벗겨주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빌리 엘리어트 스틸컷, 출처 네이버 무비>


4.

 책의 후반에 다다르면 지영과 대현 두 사람이 출산과 육아에 대해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영은 일과 가정(보육)을 양립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대현이는 지영의 마음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지영에게는 충분치 않다. 지영은 출산이 다가오면서 다시 고민한다. 출산휴가만 낼지, 육아휴직도 같이 낼지 아니면 회사를 떠날지. 지영은 왠지 자기 권리 보다 남은 직원의 입장을 생각한다. 결국 지영과 대현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정하고 장단점을 정리한다. 결국 직장이 더 안정적이고 벌이가 좋은 대현이가 수입을 책임지고, 그렇지 못한 지영이가 전업과 보육을 책임지기로 한다. 지영이가 봐도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그래도 혼자만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가족친화인증기업'이었다. 회사의 남성과 여성 비율이 거의 1:1이었다. 여성 임원과 부서장의 비율도 높았다. 그래서 여성의 사내 발언권, 직원 대우 및 복리후생이 여타 회사 보다 좋았다. 특히 여자 직원의 임신과 출산에 문제 삼지 않았고, 온전한 아이 돌봄을 할 수 있도록 3개월의 출산휴가와 8개월의 육아휴직을 제공했다. 출산 후 복귀를 하여도 정규직을 유지했다. 그래서 여자 동료들은 자기 경력을 유지하면서 자녀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완벽해 보이지만 그래도 문제가 있었다. 우선, 출산에서 돌아오면 다른 부서로 재배치가 되어 경력이 꼬이는 경우가 있었다. 사실 회사와 부서 입장에서는 1년간의 담당자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제한된 인적자원으로 업무조정을 한다. 그래서 다른 부서의 지원자 또는 출산휴가에 복귀한 다른 직원을 그 자리로 재배치한다. 그래서 원 부서에서 일한 경력은 중단되고 재배치된 부서에서 다시 경력을 쌓아야 했다. 한 번은 부서 내 P과장과 점심을 먹었는데 이런 말을 했다. '한번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오니 경력이 꼬였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이니 이제는 타 부서의 공백이 생기면 자기한테 먼저 권유가 온다고 했다. 그래서 경력을 발전시켜 이직할 수도 없고 계속해서 회사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식의 경력 꼬임은 경력 단절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둘째, 회사 상황에 따라 인력 재배치를 못 받은 부서들은 남은 동료들이 업무를 나눠 가져야 했다. 처음에는 흔쾌히 동의하고 업무를 받았지만, 같은 여자 직원의 임신이 해를 거르며 반복되면 남자 직원의 불만이 나왔다. 여자 동료의 업무 평판도 좋지 못했던 터라 앞으로 이런 사람은 받으며 안된다는 말도 나왔다. 이를 모르지 않는 여자 동료는 사내 복도에서 나에게 푸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선뜻 그녀의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다만, 남자 직원에게도 이러한 휴가 제도를 제공한다면 이런 문제는 쉽게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 어느 남자 직원이 1년 육아휴직을 내었다고 건너건너 듣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오면 재배치 받거나 회사를 그만 두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원성이라 생각했다. 남은 남자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신청하지 몰라서 못 한게 아니라는 원성 말이다.


나의 경우에도 지영과 대현처럼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우리 부부는 외벌이였기 때문에 아내가 지영처럼 출산으로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댁과 친정에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은 같았다. 그래서 육아를 온전히 둘이서 해결하려면 내가 돈을 벌고 아내가 육아를 전담해야 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더라도 무급 휴가인 점을 생각하면 외벌이 가정에서 선택할 수 없었다. 즉, 합리적인 옵션이 아니라 딱 그것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시대는 조금씩 확실히 변하고 있다. 2020년 2월 28일에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금년 부터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할 수 있고, 휴직 급여도 최초 3개월은 통상임금의 80%, 이후 기간은 50%를 받을 수 있도록 법제화되었다. 2001년 11월 육아휴직 제도 도입 때, 남자 신청자는 딱 2명인 것을 생각하면 근 20년 만에 이 정도로 발전했다. 여전히 충분하지는 않치만 말이다.



5.

이 에세이를 쓰면서 걱정한 한 가지가 있다. 내 경험에 기반한 에세이가 혹여 성대결 또는 성혐오 프레임에 갇혀서 논란이 될까 하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양쪽을 편가를 생각이 없다. 나는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 그리고 누나의 동생으로서 내가 느낀 감정과 공감을 이야기 하는 것 뿐이다. 그게 전부이다.


- 끝 -


※ Cover Picture: Portrait of Miss Cassatt, holding the cards (Mary Cassat / 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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