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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pmage Apr 11. 2016

제주 여행, 한 손에 '여행의 기술'을 들고

마지막 이야기

고작 10분. 지미봉 정상에서 너른 주차장 공터로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 수 십분 동안 거친 숨을 헐떡이며 지미봉에 오른 수고스러움에 비하면 10분은 고작인 셈이다. 주차장 오른편에 시멘트 포장길이 나 있다. 제법 단단하게 다져진 듯 하지만 자세히 보니 군데군데 금이 가고 음푹 패인 곳이 있다. 언뜻 내보인 관심을 급히 거둬들인다. 주차장 맞은편에는 어색한 위치 선정과 주변과는 어울리기 어려운 생뚱맞은 단색으로 휘감긴 2층 민박 건물이 나의 눈길을 끈다. 그 옆으로 굴곡진 흙길이 그나마 어색함을 달래 준다. 흙길 끝에 다다르면 횡으로 곧게 뻗어진 1차선 도로를 만난다. 여기서 서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반가운 종달리 마을이 나온다. 반갑기만 할까? 친근하기까지 하다. 반갑고 친근함 감정은 반드시 누군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거나 특별한 사건/대상을 공유한다고 느껴지는 감정은 아니다. 우리와 전혀 일면식 없는 상대라고 할지라도 한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우연한 마주침을 반복한다면, 상대는 더 이상 낯설기만 한 존재는 아니게 다가온다. 바쁜 출근 시간 때에 버스정류소에서 매일 마주치는 이성(異姓)이나 여행지에서 동선이 자주 겹쳐 맞닥뜨리는 낯선사람에게도 반가움과 친근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종달리는 내게 있어 그런 감정의 대상이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주에 올 때마다 종달리 마을 순희네 밥상에서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는, 바로 맞은편에 한갓지게 서 있는 큰 나무 밑에 큰 숨을 돌리곤 했다. 아침에 먹은 조식이 모자라기는 했나 보다. 순희네 할머니가 차려주신 집밥 한상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힘이 난다. 그리고는 성산행 701번 버스를 타러 종달리초등학교 건너편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성산일출봉으로 가려는 게 아니다. 용눈이 오름으로 가는 710번 버스로 갈아타러 가는 것이다. 기왕지사 지미봉에서 헐떡인 거 다시 헐떡거린다고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투적인 일상에서 전혀 새롭지 않은 불안과 결핍을 삶이라는 그래프 위에 그리며 살아간다. 저마다 각자의 방법으로 나름 안정적인 패턴을 그리며 나아간다. 하지만 때로는 그 선이 거칠고 굵어질 뿐만 아니라 그래프 밖을 뚫고 나가버리거나 혹은 끝없는 저점으로 가라앉으려고 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당연히 의식적으로 이러한 감정의 역치를 안정전위 수준으로 되돌리려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오랫동안 흥분상태로 남아있을 때도 적잖다. 이러한 위태로운 상황이 반복되면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우리를 모르는 낯선 곳에서 단 하루라도 있기를 소망한다. 목적 없는 배회라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이런 우리에게 있어 소망을 이루는 해결책 중에 하나는 여행을 가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여행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일상의 지루함으로 돌아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는 안정된 미래를 보상받고자 현실의 결핍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우물 안의 개구리 생각을 포기 못하거나, 여행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여행을 호사 행위 중 하나라고 치부하거나,  단순히 혼자 갈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서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행을 가야 한다. 왜냐하면 여행은 우리로 하여금 삶 자체를 단순히 관망하게 두지 않고 삶 속을 관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짐하게 된다. 이는 삶을 고양시키는 것으로 심리적인 풍요를 위해서도 충분히 필요한 행위인 것이다.


『‘삶의 고양한다’는 표현은 원래 니체가 사용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1873년 가을에 탐험가나 학자처럼 사실을 수집하는 일과 내적이고 심리적인 풍요를 목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을 이용하는 일을 구별했다. ……(중략)…… 그는 진정한 과제는 ‘삶’을고양하기 위해 사실들일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괴테의 문장을 인용했다. “나는 나의 활동에 보탬이 되거나 직접적으로 활력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가르치기만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 저) 156쪽 -


여행 중에 ‘삶을 위하여’ 지식을 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니체는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중략)…… 우리의 사회와 정체성이 과거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과정에서 연속성과 소속감을 확인하게 되는 여행이다. 이런 여행을 하는 사람은 “덧없고 개별적인 존재를 넘어선 시야를 가지게 되며, 자신이 자신의 집, 자신의 종족, 자신의 도시의 정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오래된 건물들을 보며 “자신이 완전히 우연적이고 자의적인 존재가 아니라, 과거로부터의 상속자이자 꽃이자 열매로서 성장해왔으며, 따라서 자신의 존재는 용서받을 수 있고 또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행복”을 느끼게 된다.』-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 저) 157쪽 -


『러스킨의 생각에 따르면, 데생이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었다.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준다는 것이다. 눈 앞에 놓인 것을 우리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슨하게 관찰하는데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하여 그 구성 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좀 더 확고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 저) 300쪽 -



용눈이 오름 근처 버스정류소(차남 동산)에서 내린다. 제주의 초가을 바람이 제법 거세다. 날이 차다. 버스 안이 더워 배낭에 구겨 넣었던 바람막이 재킷을 꺼내어 주섬주섬 입는다. 지퍼를 턱밑까지 바짝 올리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연회색의 미운(엷은 구름)이 조만간 매지구름으로 될성싶다. 옷깃을 다시금 곧추 세우고 손자봉 삼거리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도로 양 옆에는 제법 키 큰 갈대들이 바람에 휘청거리며 쓰적거린다. 서걱서걱 부딪히는 억새풀 소리를 빼면 사방은 고요하다. 그런데 1차선 도로 옆에 좁을 길을 걷자니 뒤통수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렌트 차량이 쌩쌩 달리기가 부지기수다. 차가 올 때마다 도로 밖을 완전히 벗어나 서있기를 수차례 했더니 괜스레 부아가 난다. 게다가 신발도 성가시게 군다. 신발 밑창 뒤축이 찢기거나 떨어져 나가버린 것이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별도리가 없다. 그저 걷는 수밖에.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얼마 걷지 않았는데 용눈이 오름이 눈에 또렷하게 들어온 것이다. 얼굴에 미소가 절로 돋는다.




여행지에서 가볼만한 명소를 찾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그저, 다른 누군가가 했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면 된다. 바꿔 말하면, 여행안내책자를 읽어보거나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몇 가지 단어를 조합해서 검색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치안이 불안하여 신변을 조심해야 하는 여행지에서는 대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제주에서라면 굳이 이 방법을 선택하고 싶지 않다. 이 방법은 제주 여행을 하는 모든 순간에 반드시 누려야 하는 과정의 재미를 송두리째 강탈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용눈이 오름 입구 정반대 편에서 서 있다. 그러니까 나는 용눈이 오름 입구에서 중간산동로를 따라 오름 외곽을 반 바퀴 정도 돌아서 가면 제주시(구좌읍)와 서귀포시(성산읍)의 도로 경계표시판 기둥 옆에 서 있는 것이다. 기둥 옆으로 꽤 너른 비포장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가면 용눈이 오름 1부 능성에 모여 있는 산담(제주 무덤)으로 가는 쪽계단으로 이어진다. 쪽계단을 넘어 산담을 사이를 통과하면 용눈이 오름 정상으로 가는 작디작은 호젓한 길이 나 있다. 능선을 가로지르는 가파른 이 길을 오르면서 주체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 때문에 가쁜 숨을 더 가쁘게 내뱉으며 정상을 향한다.


  - 무모한 여행에 대한 두려움

  - 확실하지는 않지만 뭔가 이루었다는 뿌듯함

  -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장소를 발견한 듯한 흥분

  - 여행의 재미를 강탈당하지 않았다는 안도감


『안내 책자가 어떤 유적지를 찬양한다는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위 있는 평가에 부응할 만한 태도를 보이라고 압력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안내책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곳에서는 기쁨이나 흥미가 보장되지 않을 것 같았다. ……(중략)…… 그러나 훔볼트는 아무런 자의식 없이 자신의 관심을 끄는 것을 따라갈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설정한 위계를 따르거나 의도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의 범주들을 만들 수 있었다.』-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 저) 158 ~ 159쪽 -


우리가 두 번다시 가보지 못할 수도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우리는 여러 가지를 계속해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여러 가지는 지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외에 서로 연관성이 없다. 그 연관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사람 안에는 모여 있기 힘든 넓은 범위의 자질들이 요구된다. 우리는 어느 거리에서는 고딕 건축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다음 거리에서는 고고학에 매료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마드리드를 방문하는 사람은 18세기 왕궁 팔라시오 레알(로코코 양식)에 관심을 가진 다음, 몇 분 뒤에는 하얀 회칠을 한 전시관 센트로데아르테 레이나 소피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행은 피상적인 지리적 논리에 따라 우리의 호기심을 왜곡한다. 이것은 대학 강좌에서 주제가 아닌 크기에 따라 책을 권하는 것만큼이나 피상적이다.』 -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 저) 172~173쪽 -



오름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오름 넘어 드넓게 펼쳐지는 제주 풍광의 머리가 점점 드러난다. 그리고 저 아래 억새 밭에서부터 오름의 사면을 따라 밀고 올라오는 골바람이 이내 얼굴을 덮친다. 정상에 오른 관광객 몇몇은 감탄사를 곁들인 긴 탄성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정상에 겨우 하나뿐인 벤치에 앉아서 축배를 들 듯 물을 마신다. 어느 관광객이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사진을 찍어주니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일행과 함께 서둘러 내려간다. 그녀와 반대로 나는 그저 말없이 벤치에 한동안 머무르면서 억새풀이 바람에 일렁이는 소리를 듣고, 초가을 제주의 산바람이 가져다주는 풀 내음을 맡고, 두 눈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풍광을 고개를 천천히 돌리면서 오름의 일부가 되려 한다. 이렇게 하면 도시로 돌아가서 직면해야 할 경쟁과 고난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얻을지 모른다. 단순히 오름에서 찍은 사진 몇 장만으로는 도시에서의 나를 잠시라도 해방시킬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나도 물리적인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 워즈워스의 시간의 점을 빌려 쓰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에 평생 지속될만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어가려고 말이다.


『자연과의 접촉이 아무리 유익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연 속에서 보낸 사흘의 심리적 영향력이 몇 시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워즈워스는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았다. …….(중략)……“이 수많은 풍경들이 내 마음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지금 이 순간, 내 평생 단 하루도 이 이미지들로부터 행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큰 기쁨이 밀려온다.” ……(중략)…… 자연 속의 어떤 장면들은 우리와 함께 평생 지속되며, 그 장면이 우리의 의식을 찾아올 때마다 현재의 어려움과 반대되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 속의 이러한 경험을 “시간의 점”이라고 불렀다.』-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 저) 300쪽 -



용눈이 오름 자체의 아름다움과 오름이 선사하는 풍경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버스를 놓쳤다. 결국 약 한 시간을 더 기다려 710-1번 버스를 탔다. 다시 성산에서 701번을 갈아타고 평대 초교 사거리에 도착하니 낮 기운이 쇠하려는 듯 해가 지면서 불그스름한 노을이 아주 낮게 깔린다. 갑자기 나의 깊은 기저 속에 잠재되어 쇠잔해 있던 뭉클한 감정이 복받친다. 오름처럼 특별한 장소가 아닌건만 뜻밖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마주한다. 정말 오늘 저녁은 누군가와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며 보내고 싶다. 제주 여행의 마지막 날, 마지막 저녁이니까.


『우리는 눈이 차갑다거나 설탕이 달다고 느낄 때처럼 어떤 장소가 아름답다는 것도 즉시, 또 언뜻 보기에는 자연발생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가 느낀 매력이 바뀌거나 커질 것이라는 상상은 해보기 힘들다.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은 어떤 장소 자체에 내재한 특질들에 의해 또는 우리 심리의 내부 회로에 의해 결정이 나는 것 같다. 따라서 어떤 아이스크림이 특히 맛있다고 느끼는 것을 어쩔 수 없듯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장소에 대한 느낌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 저) 251쪽 -


Fin.


※ 포스팅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딸아이가 저 때문에 감기에 호되게 걸리는 통에 생각보다 더 지연되었습니다. 당분간은 여행 에세이는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 그 밖의 이야기는 빨리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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