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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Mar 18. 2021

Shall we run and read?

달리기로 기분 좋은 오늘 독서로 멋진 내일


일어나자마자 켠 날씨 앱은 미세먼지 레드카드를 쓰윽 내밀었다. 날마다 찾아오는 미세먼지에 달리고픈 마음은 펑크 난 풍선처럼 쭈그러졌다. 매일 달리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다섯 번은 달려야 사는 남자는 무거운 다리를 끌고 베란다 뒤로 보이는 불암산을 바라보았다. 의외로 청명한 시야에 어느새 타이즈에 티셔츠에 후드에 모자에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달리기에 필요한 온갖 장비를 걸쳤다. 앱이나 눈, 둘 중에 하나는 오류가 분명했지만, 이미 나가기로 한 이상 무엇이 문제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달리기에 가장 중요한 러닝화는 미끈하고 새끈한 놈으로 골랐다.


달리며 만나는 방긋방긋 풍경은 출근하며 치이는 우중충한 현실과는 달랐다. 마치 풍성한 여름과 삭막한 겨울처럼. 달리며 느끼는 펄떡이는 심장은 살아있어 감사한 마음을 살리기에 충분하다. 지난주에 없던 꽃들에 봄처녀 설레듯 두근거렸다. 잠시 멈춰 봄이 주는 향기에 온몸을 밀어 넣었다. 추운 겨울에 코로나가 더해져 마음이 얼어붙어서일까? 차가운 공기와 땅을 뚫고 올라온 봄은 꿈속에서나 한 번씩 만나던 첫사랑을 본 듯 가슴을 뛰게 했다.


달리기는 새벽에 하는 가장 마지막 루틴이다. 새벽 달리기를 10km 채우면 아침을 백 점으로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백 점 달리기를 하려면 집에서 출발해 다시 집에 오기까지 1시간쯤 걸리는데, 일찍 일어나는 건 기본이고 새벽에 하는 다른 모든 일과를 계획대로 끝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늘 그렇게 하면 사람이라기보다는 로봇에 가까우니, 희로애락을 다양하게 느끼는 나는 사람답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백 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달리기에 익숙해지면 백 점짜리 하루를 시작하기가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이나 영어 시험에서 50점 맞기보다 쉽다. 10km 만점 달리기를 기준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면 누구든 서울대는 기본이고 하버드대나 예일대를 선택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생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일은 절대 없지만, 달리기는 오늘을 기분 좋게 만드는 무엇인 건 확실하다.


달리기가 오늘을 기분 좋게 하는 방법이라면 독서는 내일을 멋지게 만드는 트레이닝이다. 달리기를 먼저 하고 독서를 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독서를 하고 달리기를 한다. 책을 읽으며 가슴에 남은 문장이나 느낌은 달리면서 정리되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까닭이다. 어제부터 읽는 책은 프리츠 게징의 <마음을 흔드는 글쓰기>다. 이 책은 어떻게 소설을 쓰는지 알려준다.


달리는 사람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 소설가>에서 "사람이면 누구나 한 권의 소설을 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는 우리네 인생에 설탕 두 스푼 소금 한 스푼만 넣으면 소설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로 해도 소설이 된다. 설탕이 많으면 달달한 소설 소금이 많으면 짜디짠 소설이 되는데, 그건 작가의 선택이다.


글을 쓰다 보면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죽순처럼 일어나는데, 얼마나 잘 써야 만족할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다. 어쩌면 바람과 실력이 새끼줄처럼 한마음이 되어 하늘 끝까지 오를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노벨 문학상은 따놓은 당상일 것이다. 하지만, 꾸준히 갈고닦아야 실력이 쌓이는 나란 사람이 그렇게 하려면 최소 삼백 살 정도까지는 살아야 할 것이다. 삼백 살이 되면 다리에 힘이 빠져 달리기도 못하고 눈도 흐리멍텅해져서 독서도 못할 테니 자연스럽게 노벨상은 다른 사람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첫 작품은 자전적 소설일 확률이 높다고 프리츠 게징은 말하는데, 이 또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인생을 조금만 비틀거나 축소하거나 확대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나와 지인의 인생을 비벼버리면 꽤 그럴싸한 인물과 이야기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책은 나의 마음에 길을 냈고 나는 또 달리기를 하며 새로운 길을 낼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내일을 알 수 없지만, 훗날 머리가 희끗해졌을 때 미간을 넓히거나 좁히며 얼굴을 모니터에 들이댄 채 열심히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때는 말하는 대로 글이 되는 기술도 분명히 일상일 테니 작은 모니터가 아닌 대형 모니터에 대고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AI가 작가의 모든 영역을 앗아가면 그냥 달리기만 할 생각이다. AI가 날고 긴다 해도 내 달리기를 대신하지는 못할 테니까.


지금 읽는 책의 주제가 소설 쓰기라 소설가의 길을 열었지만, 달리기 책을 읽으면 달리기를 잘 하는 내일을 연다. 오늘 내가 읽는 책의 주제가 내일을 만드는 건 당연하니까. 우리에게 부족한 건 오직 그렇게 된다는 강렬한 믿음뿐이다. 작년 <해빙>을 읽기 전까지 나는 <시크릿>이나 <꿈꾸는 다락방>이 준 메시지 "간절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를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너무 배고프고 가난한 생각이다. 해빙을 읽는 순간 간절히 바라야 할 이유는 길바닥에 버려진 일원을 주울 만큼도 없었다. 그냥 당연히 될 거라고 믿고 오늘의 루틴을 이어가면 된다. 배부른 생각을 하자는 말이다. 나는 달리기와 독서에 한정해 이야기하지만, 내일을 열어가는 모든 것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행운은 나의 노력에 대해 하늘이 준 선물"이라던가 "성공은 노력 곱하기 행운"이라던가, 누군가는 한 번씩 이야기하는 명언에는 내일을 여는 열쇠로 오늘 하는 나의 무엇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그건 꼭 노력이라는 거창하거나 힘겨운 단어가 아니어도 된다. 꾸준히 하는 무엇이면 가능하다. 유튜버는 재미있는 영상 찍기와 편집이 내일의 백만 유튜버로, 작가는 오늘 하는 글쓰기가 내일의 백만 베스트셀러 작가를 만들 테니까 말이다.


그대에게 한 번 물어봅니다. 오늘의 무엇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사심을 담아 제안해봅니다. Shall we run and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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