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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May 18. 2021

스쿠터 타고 제주 한 바퀴

완전한 안전이 있을까?

우도로 들어가는 성산항 여객터미널에서 멈췄다. 아들은 내가 운전하는 스쿠터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자전거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아들이 말했다. "아빠 이거 타려면 자전거 배워야 하지?"  

스쿠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동한 것일까? 아들에게 말했다."어 자전거부터 먼저 배워야 해"

스쿠터 여행이 자전거를 배우는 동기가 되길 기대했다. 그래야 다음에는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성산항 여객터미널로 들어가는 내 얼굴에는 나비처럼 나풀대는 미소가 내려앉았다.


아들이 더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배우길 바랐다. 아들과 하고 싶은 수많은 것들 중에서 자전거 타기와 자전거 여행은 우선순위 중에서도 최상단에 자리하고 있어서다. 내 마음과는 달리 아들은 여전히 자전거를 배울 마음이 없다. 내가 자전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아들은 말한다. "아빠, 아빠는 항상 말하잖아. 사람은 다르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아들의 그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아들과 둘만의 제주여행을 계획하며 일찌감치 스쿠터로 제주도 일주를 하기로 했다. '무언가를 했다'라는 사실을 중요하고 의미 있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제주도 한 바퀴 일주 여행을 꼭 하고 싶었다. 아들과 제일 하고 싶은 일주 여행은 자전거 여행이었지만, 아들이 자전거를 못 타니 꿩 대신 닭으로 스쿠터를 선택했다. 아들이 혹시 나를 꼭 잡지 않으면 어떨까 하는 걱정이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벌써 4학년이 된 아들이 그 정도도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 자체가 어리석다는 판단을 했다. 세상에 완벽한 안전은 없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스쿠터 여행이 나의 걱정은 피했지만, 아내의 걱정은 피하지 못했다. 여행이 다가왔을 때 아내에게 말했다. "스쿠터를 타고 다니려고"

아내는 즉각 반대했다. "굳이 스쿠터로?"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아들은 불안한 모양이었다. 부모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길을 갈 때 아이들은 마음이 편해지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며칠 뒤 아들이 물었다. "아빠, 우리 스쿠터로 다니는 거야? 엄마한테 이야기했어?"

아이의 걱정을 없애야 했다. 다시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날씨가 안 좋으면 차를 빌리고 괜찮으면 스쿠터로 다닐 거야. 낮에 천천히 달리면 문제없어. 걱정 안 해도 돼."


아내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은 엄마의 속마음까지는 읽지 못하고 얼굴을 폈다. 아내의 얼굴도 밝아지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내는 계속 반대해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비행기가 결항되어 김포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 7시 비행기라 5시 30분에 아들을 깨웠다. 여행을 앞둔 아들은 두말없이 일어났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출발 준비를 마치고 호텔을 나섰다. 횡단보도 앞에 택시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는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 택시를 탈 리가 없었다. 다행히 택시가 한 대 오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아들이 물었다. "아빠, 아까 그 택시 왜 안 탔어?"

"아, 아빠는 담배를 싫어하잖아. 우리가 돈을 내고 타는데 기분 좋게 타야지 기분 나쁘게 탈 이유가 없잖아. 그걸 소비자의 권리라고 해"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담배를 싫어하니 아들도 자연스럽게 담배를 싫어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닮아간다.


비행기를 탈 때는 언제나 둥둥둥 설렌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비행기로 이동하는 중 하늘을 보았다. 하루 만에 날씨가 180도 달라졌다. 비를 뿌리던 하늘은 회색 옷을 벗고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비행기는 솜사탕 구름 위 푸른 하늘을 날아 한 시간 만에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어머나'

제주 하늘은 서울보다 더 깨끗했다. 하늘은 '스쿠터 여행은 맑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것을 하더라도 일단은 먹어야 한다.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길에 뉴욕 햄버거 매장이 있었다. 가게는 아들의 레이다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들과 햄버거를 하나씩 먹었다. 아침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햄버거 하나로도 배가 든든했다. 공항 밖으로 나가니 야자수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택시 승강장까지 걸어가며 제주제주한 풍경을 즐겼다. '어서 오십쇼'라며 대기 중인 택시를 타고 스쿠터 대여소로 이동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우리의 마음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아이였다.


스쿠터 대여소에 도착하자 미리 예약한 스쿠터 '벤리'가 우리를 딱 쳐다보고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날아갈 것처럼 작았고 예쁘지도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받다가 떨어뜨린 아이가 됐다. 그걸로 제주 한 바퀴를 돌고 싶지는 않았다. 대여소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추천했지만, 내 눈에는 전혀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즉석에서 좀 더 큰 스쿠터 'CPX'로 바꿨다. 돈은 두 배가 됐지만 안전을 생각하면 더 나은 선택이라 여겼다. 4박 5일간 스쿠터를 빌리며 구입 가격의 10%를 지불했다. 매장 입장에서는 나 같은 고객을 10번만 만나면 본전을 뽑는 셈이었다. 내가 호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 같은 소비자가 있기 때문에 그 가격이 되는 것이다. 그건 냉정한 시장의 법칙이었다.


밝은 표정의 여직원은 더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무표정하고 불친절한 계약서를 내밀었다. 풀 커버 보험료를 내도 어떤 상황에선 그들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화를 내거나 따져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감정만 상할 뿐이다. 그 내용을 읽으며 다짐했다. '더욱 조심해야겠군'


스쿠터로 여행할 때는 스쿠터 운전 경험도 중요하다. 다행히 나는 학창 시절부터 스쿠터를 탄 스쿠터의 베테랑이었다. 베테랑이란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봤다는 말이다. 구르고 뒤집혀 도랑에 처박히거나 바닥에 나뒹굴거나. 나는 어떤 상황에서 사고가 나는지 잘 아는 사람이다. 초보가 오히려 사고를 안 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운전 미숙으로 문제가 될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다.

'안전 수칙을 지키고, 대형 트럭 근처에는 가지도 말고, 아들에게 출발한다고 꼭 말하고, 나를 잡고 있는지 확인하고, 헬멧은 꼭 쓰고, 시속 50km 이하로만 달리고, 낮에만 운전하고, 신호등은 잘 지키고'

스쿠터 운전 시 조심해야 할 사항을 하나씩 머릿속에 떠올렸다.


자전거를 배워야 이걸 탄다는데...

스쿠터 시동을 걸었다. 작지만 경쾌한 소리는 중요한 시상식을 앞뒀을 때 울리는  북소리 같았다.

뒤에 탄 아들이 소리쳤다. "아빠 가즈아"

나도 흥겹게 대답했다. "아빠 허리 꼭 잡았지? 출발"

우리는 제주 해안 도로를 따라 첫 번째 목적지 삼양해수욕장을 향했다. 제주에서 유명하다는 해수욕장은 모조리 찍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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