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 빠진 사이 어느새 전국 방방곡곡을 달리는 러너가 됐다. 달리기 사이트에 가입해서 뉴스레터를 받기도 하고 직접 정보를 찾기도 하는 열혈 러너였다. 주위 사람들은 마치 내 몸에서 달리기 냄새가 나는 것처럼 러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달리기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러너들은 달리기 예찬론을 펼친다. 달리기가 건강에 좋으니 소중한 사람들을 달리기에 입문시키는 노력이 당연한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어느 날 지인이 물었다. “달리기를 좋아하고 열심히 달리면서 왜 다른 사람에게 달리기를 권하지 않나요?"
질문을 받고서야 나는 왜 다른 사람에게 달리기를 권하지 않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달리기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계속 달리기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상대방이 달리기를 싫어하게 되고 자칫 관계도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편견일 수도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시간만 나면 교회에 관해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었다. 교회에 대해 말하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교회가 싫어졌고 어느 순간 그 친구도 멀리하게 됐다. 종교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문제가 된다.
조금씩 생각을 바꿨다. 좋은 것을 나만 하는 건 그다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니까.
가까운 사람부터 달리기를 권하기로 했다. 학창 시절 이후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다는 아내가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가장 가까운 부부로 살지만 달리기에 관한 한 나는 금성 남자 아내는 화성 여자다. 어떻게 해야 거부감이 들지 않을지 답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어느 건강식품의 광고 문구가 생각났다. ‘참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몸무게를 빼겠다는 명확한 동기가 있었던 나와 달리 아내는 달릴 이유가 없었다. 건강에 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라톤 대회 같은 특별한 경험을 찾는 사람도 아니다. 다행히 걷기는 마다하지 않았고 틈만 나면 여행을 생각하는 여행 바라기였다.
어느 날 마라톤 사이트에서 <힐링&러닝 콘서트>라는 가족여행 콘셉트의 달리기 대회를 알게 됐다. 대회 참가권에는 덕산온천 호텔 숙박권도 딸려 있었다. 온천여행에 달리기는 꼽사리인 느낌이었다.
몇 년 전 부드러운 개입이 더 나은 선택을 만든다는 주제의 베스트셀러 책 <넛지>를 읽었다. 파리 모양 스티커를 소변기에 붙여놓는 것만으로도 밖으로 튀어 나가는 소변량을 획기적으로 줄였다는 내용을 보며 웃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힐링&러닝 콘서트>를 보는 순간 어쩌면 여행이 달리기 넛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초도 망설일지 않고 아내에게 연락했고 아내도 흔쾌히 가자고 했다. 일 분 뒤 아내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5km 걷는 데 얼마나 걸려?"
여전히 달릴 마음이 없는 아내의 말에 웃음이 났다. “1시간 정도 걸릴 거야."
한 달이 휘리릭 지나 여행 날이 찾아왔다.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4월 중순 봄기운이 발끝까지 내린 날, 아내와 아이들의 들뜬 표정을 보니 휘파람이 절로 났고 자동차 엔진조차 노래를 불렀다.
힘차게 출발한 자동차는 절반도 못 가 서해안고속도로에 갇히고 말았다. 여행의 기대는 교통체증 가득한 아스팔트에 녹아내렸다. 아이들은 온몸을 비틀어댔고 나는 투덜이 스머프가 됐다. 유일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던 아내는 휴게소를 보자마자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언제 온몸 비틀기를 했냐는 듯이 뛰어다녔다. 아이들에게 휴게소는 넓은 놀이터였다. 나는 스머프에서 웃는 아빠가 됐다. 녹아내린 설렘도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한참을 뛰어놀던 아이들은 인공위성처럼 우리 곁으로 왔다.
이른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이 장난치며 웃는 모습을 보니 내가 언제 투덜거리기는 했나 싶었다.
희한하게 휴게소를 나오면서부터 교통체증이 사라졌다. 이런 극적인 상황을 만나면 슈퍼 긍정인이 되는 경향이 있다. 교통체증이 없었다면 어디선가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말 같지도 않은 상황을 떠올린다. 그런 생각을 했더니 실망스럽던 서해안고속도로의 첫인상이 괜찮아졌다. 교통체증은 어느 순간 막힌 코가 뚫린 것처럼 상쾌해졌다.
첫날 일정은 가족 트레킹이었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달리기 대회를 앞둔 선수들이 몸을 푸는 듯했다. 대회 안내소에서 담당자가 코스를 설명했다 "트레킹을 좀 더 재밌게 하도록 퀴즈 미션을 준비했어요. 올라가다 보면 힌트가 있는데 한번 맞춰보세요."
친절한 담당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아이들과 산으로 향했다.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짝을 이뤄 올라가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길도 잘 안내되어 있었다. 앞뒤에서 아이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봄날의 산은 꽃으로 화답했다. 친구나 연인끼리 온 사람들은 꽃이 예쁜지 내가 예쁜지 경쟁했다.
퀴즈 미션의 첫 번째 힌트가 적힌 플래카드가 보였다. <가족>
쉽지 않았다. 잠깐 정답을 생각하는 사이 달리던 아들이 슬라이딩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의 침묵과 정지, 이어지는 울음과 고통의 외침은 메아리가 됐다. 아들의 눈빛을 보니 엄살이었고 마음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오지도 않은 어린이집 여자 친구를 소환했다. "서준아! 저기 봐, 수정이가 있어 "
울음을 뚝 그친 아들은 눈을 반짝였다. "어디 어디?"
"저기 앞에 많이 내려갔나 보다.”
아들은 나를 앞질러 달렸다. 아무리 달려도 수정이를 찾을 수는 없었다. 재미가 뚝 떨어진 아들은 "안아줘."라는 말을 무한반복 되풀이하는 스피커가 됐다. 배경음악은 ‘찡찡’이었다. 아들을 번쩍 안아 들고 걸었다. 아들은 '밥이 싫어요'라는 제목의 웅변 달인이다. 무게가 느껴질 리 없었다.
두 번째 단서가 나왔다. <다섯 글자>
아내와 딸은 수시로 걸음을 멈췄다. 꽃도 보고 솔방울도 봤다. "나비야~"라는 속삭임이 들다가 "벌이야!"라고 외치며 뛰기도 했다. 단란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가운데 세 번째 힌트 플래카드가 보였다. <가정이 화목하면>
정답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가화만사성>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외웠다.
트레킹은 끝났다. 코스의 끝에서 만난 자원봉사 학생이 답을 물었고 아이들은 힘차게 외쳤다. <가화만사성>
팔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아이들은 싱글벙글했다. 어린 시절 운동회를 마치고 순위 도장을 받던 내 모습이 보였다.
퀴즈 미션의 정답인 가화만사성은 슬기로운 달리기 생활의 정답이기도 하다. 아내와 싸우기라도 하는 날엔 그토록 좋아하는 달리기도 할 맛이 뚝 떨어진다. 회사에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밥맛이 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첫 구절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모든 조건이 맞아야 하고 하나라도 어긋나면 그 이유로 불행하다는 뜻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소소한 달리기조차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도 함께 일깨워준다. 달릴 이유를 만드는 것만큼 달릴 수 없는 이유를 없애는 것 또한 중요하다.
대회 시작 시각은 오전 10시다. 숙소는 대회장과 가까웠다. 설렁설렁 걸어 대회장에 도착하니 주차장 바로 옆 호텔에서 누군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대회에 참가한 달리기 클럽 회원이었고 그들과 합류했다. 클럽 회원이 물었다. “케냐인들 봤어?”
세계 마라톤계를 주름잡는 케냐 선수들을 만나는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됐다. 대회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무대 위 여성 댄스팀의 흥겨운 춤사위도 따라 하며 대회 분위기에 적응했다. 달리기보다 에어로빅을 더 좋아하는 아내도 열심히 몸을 풀고 있었다. 식전 이벤트가 끝나고 사회자가 내빈 소개를 했다. 서울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케냐의 에루페 선수와 한국에서 제2의 킵초게를 꿈꾸는 케냐 선수들이었다.
여전히 뛸 마음이 없는 아내에게 말했다. “걷기와 뛰기를 번갈아 가며 하면 돼. 숨차면 걷고 다시 달릴 만하면 뛰면 금방 끝날 거야.”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면 대답했다. “뛰려나 모르지만, 일단 알겠어.”
출발 총성이 울리고 선두에 선 케냐 선수들이 말처럼 뛰어나갔다. 차원이 다른 그들을 넋 놓고 바라보며 천천히 달렸다. 나는 아내보다 의욕이 더 큰 딸과 같이 달리고 아내와 아들은 바로 뒤에서 걷기와 달리기의 중간쯤 되는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다. 딸은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우리가 5km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10km에 참가했던 케냐 선수들이 우리를 추월하고 있었다. 그들의 힘찬 모습에 또 한 번 감탄했다.
반환점을 돌고 맞은편에서 따라오는 아내와 아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절대 뛰지 않을 것 같은 아내가 아들과 중간중간 뛰고 있었다. 넛지가 제대로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모두 뛰고 있으니 본인도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천천히 따라와. 서영이랑 먼저 들어갈게.”
기대 이상으로 잘 달리는 딸의 속도에 맞췄다. 조금 힘들어하지만 꾸준히 달리는 딸이 기특했다. 아빠와 딸이 함께 뛰는 모습을 본 많은 참가자가 박수로 우리를 격려했다. 결승선이 보였을 때 딸은 속도를 높였다. “서영아, 저기 앞이 결승선이야. 조금만 더 힘내자!”
완주한 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칭찬을 쏟아부었다. 뿌듯한 모습이 피어오르는 딸의 모습이 더없이 좋았다. 뒤이어 아내와 아들도 결승선에 들어왔다. 아내의 어깨를 두드리며 완주를 축하하고 아들을 번쩍 안아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아내와 아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번졌다. 온 가족 모두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사진을 찍었다. 여행이 달리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에루페가 보였다. 슬그머니 다가가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Picture?”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들과 악수를 하는 자상함도 보였다. 그는 한국 귀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에루페가 한국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오늘 찍은 사진이 꽤 의미 있을 거라는 유쾌한 상상을 했다. “Good luck to you”
우리는 10km에 참가한 러닝 클럽 회원들을 기다렸다. 부부가 나란히 들어오는 회원, 친구끼리 들어오는 회원, 어제가 사귄 지 첫날이 된 커플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들어왔다.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함께 달리지는 못하지만, 함께 대회를 마칠 수는 있다.
교통체증을 피해 저녁 늦게 집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윤봉길 의사의 위패를 모신 충의사에 들렀다. 윤봉길 의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그는 12세에 식민지 교육이 싫어 자퇴하고 19세에 농민운동을 하고 22세에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했다. 25세에 훙커우공원에서 의거하고 그해 총살형으로 순국했다.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다 간 그는 잊어서는 안 될 독립운동가였다.
달리기 대회를 막 끝내서였을까?
러너로서 그에게 감사해야 할 이유가 떠올랐다. 달리는 것이 부끄럽거나 불안하지 않고 즐겁고 뿌듯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희생 덕분이다. 나라의 자유를 위해 살다 간 그분들 덕에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얻었다.
그는 왜 그런 희생적인 삶을 선택했는지,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내가 자유로운 나라에서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꽃 같은 아내와 강아지 같은 두 아이를 둔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아이들은 차에 타자마자 꿈나라로 갔다. 아내는 달리기 여행이 좋았다고 했다. “진짜 달리기 한 번 해볼까?”
신이 난 나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달리기 예찬론을 펼쳤다. 나의 바람에 활활 타오를 줄 알았지만, 부담을 느낀 아내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너무 기대하지는 마.”
그러면서도 카톡 프로필 사진을 슬그머니 대회 완주 사진으로 바꾸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달리기 여행을 권한 것이 신의 한 수로 판명되는 순간이었다. 여행은 확실히 달리기 넛지였다. 흐뭇하게 웃는 아내를 보며 기분이 좋았다. 이번을 계기로 아내가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산 달리기 여행을 다녀온 아내는 주말마다 달렸다. 쭉 이어지길 바랐으나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뜸해지더니 어느 순간 달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아내는 일 년에 한두 번씩 달리기 대회에 참가하며 달리기의 끈을 놓지는 않고 있다.
아내가 꾸준히 달리지는 않지만 의외의 소득이 생겼다. 러너에 대한 아내의 이해도가 높아졌고 러너인 나를 지지해주었다. 러닝화와 러닝복, 선글라스와 모자 같은 러닝 용품을 사는데 관대해진 건 물론이고 가끔 러닝 용품을 선물하기도 한다. 새벽같이 뜀박질을 하거나 몇 시간씩 달리는 모습에 대해 더는 뭐라 하지 않는다. 아내의 지지를 받는 러너로서 더 자유롭고 편하게 달리기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달리는 아내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