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원고를 쓰는 동안 2020 서울 국제마라톤 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보스턴 마라톤 참가기록을 따기 위해 겨우내 뜨겁게 불탔다.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선 연령대별 기록이 필요하다. ‘한 번 서브 3는 영원한 서브 3’ 말도 있지만, 그건 그냥 하는 말일뿐이다. 과거의 서브 3 기록은 유효기간이 지난 토익점수처럼 쓸모없다.
풀코스 3시간 15분은 열심히 준비해야 달성할 수 있다. 이왕 열심히 해야 한다면 인생 최고 기록이 낫지 않을까? 최고 기록을 위해선 동기부여와 효율적 준비가 필수다. 작년 10월부터 예열을 시작해 11월부터 매달 300km를 넘나드는 달리기를 했다. 실력이 비슷한 친구들과 단톡방을 운영했다. 빨리 달리고 잘 먹고 잘 휴식하는 정보를 공유했다. 주말에는 함께 달리며 서로를 격려했다. 긍정적 기운과 조언으로 혼자서 연습할 때보다 더 잘 달릴 수 있게 됐다. 보스턴 마라톤 기록 달성은 기정 사실화됐고 역대 최고의 기록도 점차 가시화됐다.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되면 좋으련만,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서울 국제마라톤 대회는 불길한 기운과 함께 찾아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으며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들이 취소되었다. 서울 국제마라톤도 그 운명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 책의 퇴고가 한창인 지금도 대면 대회는 열리지 않고 있고 내로라하는 세계 정상급 대회도 모조리 취소됐다. 내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다.
마라톤 대회가 취소되고 나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보스턴 마라톤 참가가 소망이긴 하지만, 달리는 이유가 그것 하나뿐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매년 연말 한 해를 돌아보면 진하게 남는 달리기 추억이 두세 개는 된다. 최선을 다한 마라톤 대회이거나 온 가족이 함께 참가한 대회, 그것도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 한 달리기 여행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최소한 지리산 화대 종주를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여름에 막 접어드는 6월부터 주말마다 서울 둘레길 트레일 러닝을 시작했다. 어느 날, 지난겨울 함께 최선을 다해 달린 친구가 말했다. "지리산 화대 종주 어때?"
“화대 종주가 뭐지?”
“화엄사(전남 구례)에서 시작해 대원사(경남 산청)까지 48KM를 종주하는 거야.”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42.195km 이상 달려본 적 없지만, 피렌체에서 만난 다비드가 준 용기로 풀코스 이상 달릴 각오가 돼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된 설렘은 커졌다.
화대 종주가 100km 울트라 마라톤에 비교된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종주하기로 결정했을지 여전히 의문이다.
디데이를 3주 앞두고 겁을 상실한 용사 일곱 명이 결정됐다.
화대 종주를 하는 날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오라는 잠은 오지 않고 ‘왜 이렇게 빨리 그리고 길게 달리려고 하는지’에 관한 심오한 의문이 찾아왔다. 성취감이 얼핏 떠올랐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중요한 무엇이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밤늦도록 뒤척이며 생각했지만, 성취감 외에는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서울에서 지리산까지 가는 여정을 생각하니 아침부터 설렜다. 달려보지 않은 거리지만, 48km를 천천히 달리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화대 종주 경험이 있는 리더의 조언에 따라 짐은 최소화했다. 먹을 건 각자 갖고 오기로 해서 내가 먹을 만큼만 준비했다. 먹을 것 외에는 완주 후에 갈아입을 옷과 바람막이, 헤드랜턴과 우의를 챙겼다. 트레일 러닝은 언제든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어 로드 러닝에 비해 준비물이 많았다.
지리산 화엄사까지는 관광버스를 이용했다. 출발하자마자 잠을 청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옆자리에 있던 형이 깨웠다. "막시야! 일어나. 뭐 좀 먹자."
각자 먹을 것만 준비하라는 건 '너는 몸만 와, 내가 다 챙길게'와 같은 말이었다. 나만 빼고 모두가 여유 있게 음식을 챙겼고 몇 분은 와장창 싸 왔다.
종주 경험이 있는 형이 우리를 격려했다. “배가 든든해야 잘 달릴 수 있어. 모두 잘 완주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힘내자.”
툭 던진 한마디가 큰 힘이 되어 돌아왔지만,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도 함께 찾아왔다.
다시 버스에 탑승하자마자 잠들었다. 소란에 눈을 뜨니 벌써 버스 정차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달리고픈 마음이 용수철처럼 솟구쳤다. 주차장에서 화엄사까지 이어지는 넓은 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렸다. 경쾌한 계곡 물소리는 우리를 반기는 인사였다. 산길로 접어들자 어둠이 달리기를 가로막았다. 헤드랜턴 덕에 산을 오르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달리기엔 위험했다.
리더가 헉헉대며 말했다. “올라갈 때 7km와 내려올 때 7km가 가장 힘들어.”
속보로 움직였다. 호흡은 가팔랐지만, 마음은 여유 있었다. 계곡 물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웃음소리도 간간이 터졌다. 그럴수록 리더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코재까지는 쉼 없이 올라가야 나중에 여유가 생기고 완주한 후에는 저녁 식사를 여유 있게 할 수 있어. 참고로 코재는 코가 땅에 닿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야”
대원사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의 출발 시간은 저녁 여섯 시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늦어도 네 시까지 대원사에 도착해서 막걸리 한잔하며 완주의 기쁨을 누리자”
코재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허리를 폈다. 어디 앉아서 제대로 쉬지는 못했다. 간단히 인증 사진을 찍고 일행이 준비한 오이를 먹으며 목을 축였다. 10분쯤 쉬고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리에겐 로마군의 행군 같은 늠름함이 있었다.
코재에서 1km 정도를 더 걷자 평지가 나타났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넓은 평지를 만난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달렸다. 거기서부터 1km, 신나게 달린 건 그곳이 전부였다. 코스가 좀 험한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지 달릴 수 없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화대 종주는 시작부터 상상 이상이었지만,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안일하고 자만했다.
속도를 늦추자 사람이 보였다. 노고단을 지나 임걸령을 향하고 있을 때 트레일 러닝 옷을 한껏 멋스럽게 차려입은 이십 대 초중반 청년들 넷이 우리를 지나쳤다. 그들도 화대 종주를 한다고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저 청년 중 누구라도 사위가 되면 좋겠다.”
모두가 웃었다. 패기 넘치고 건강한 청년들이 멋진 건 누가 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앞질러 간 그들을 다시 만난 건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에 걸쳐있는 봉우리 삼도봉에서다. 처음과 달리 지쳐 보였다. 생각보다 달리기 경력이 짧은 그들은 패기 하나로 도전하고 있었다.
우리가 먼저 일어섰다. “부상 없이 잘 달리고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때 또 이야기 나눕시다.”
그 이후로 청년들을 만나지 못해 안타까웠다. 앞으로 산을 훨훨 날아다니고 멋진 인생을 펼쳐갈 것이라는 데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우리는 그 청년들과 노년 사이 어딘가에 있다. 청년들만큼 화려하거나 멋지지 않지만, 모두 화대 종주를 완주했다. 지난 시간 우리가 쌓은 풍부한 경험 덕분이다. 경험은 단번에 쌓이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지금 막 달리기를 시작한 청년들도 우리의 길을 따를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빨리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어느 날 누구보다 더 잘 달리는 러너가 될 것이다.
육체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며 어디가 강하고 약한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괴나리봇짐 같은 작은 배낭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와 허리를 짓눌렀다.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 바위와 자갈길은 의도치 않는 동작으로 허리를 놀라게 했다. 어느 순간 통증이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허리 주변 근력을 보완하라는 몸의 소리였다.
다른 사람들은 무릎 통증을 호소했다. 평소 무릎이 아프다고 한 적이 없는 건각들도 화대 종주에는 꼬리를 내렸다. 다행히 나는 무릎이 아프지는 않았다. 지난겨울부터 꾸준히 했던 스쿼트와 런지, 일상 달리기와 서울 둘레길 트레일 러닝이 예방주사가 됐다.
지리산에 오기 하루 전까지만 해도 장마가 이어졌다. 장마 기간 중 지리산에서 달릴 수 있었던 건 자연이 허락한 덕분이다. 장마로 산에 오르지 못했다면 언제 지리산을 찾을지 기약할 수 없었다. 대신 흐린 날씨로 감탄사를 자아내는 풍경은 만나지 못했고 빛이 생명인 사진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중학생 때 이후 30년 만에 만난 지리산이 나를 이리 홀대하나 싶었을까?
단연코 아니다. 오를 수 있게 허락한 자연과 지리산이 고마울 뿐이다. 30년 만에 찾았는데 속내를 다 보여주면 오히려 이상하다. 일출과 멋진 풍경을 만나지 못했지만, 자연도 사람처럼 자주 만나야 친해지고 속내도 보여준다는 세상의 법칙을 깨달았다.
일행 중 한 명이 말했다. “코로나 이후 미국에서 우울증 환자가 급증했어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우울해질 수밖에요.”
공감되면서도 슬펐다. 사람은 누군가와 소통하며 유대감을 느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코로나 이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온라인으로 소통에 적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에 기대를 건다.
세석 대피소에서 천왕봉까지 달렸다. 천왕봉 바위에 앉아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렸다. 어린 아들에게 천왕봉을 보여주고 싶어 졌다. 뱀사골에서 천왕봉까지 1박 2일 일정이면 좋을 것 같았다.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뱀사골에서 천왕봉 아래 장터목 대피소까지 오르고 저녁에는 아들과 고기를 구워 먹으며 별을 셀 것이다. 장터목 대피소에선 모로 누워 세상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다음 날 새벽에는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왕봉에서 오랜 시간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을까? 사람은 대단하지만, 우주로 시각을 돌리면 정말 하찮은 존재다. 그런 이야기를 아들에게 하면 알아들을까?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는 알게 되지 않을까? 일출을 충분히 누린 뒤 다시 장터목 대피소에서 아빠 레시피로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하고 나는 커피 아들은 코코아를 마시면 좋겠다. 어제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이른 아침 천왕봉에 오르는 사람들에겐 반가움이 묻어나는 격려의 인사를 나눌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인사와 격려를 받았듯 나도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것이 사람의 이치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이 작은 소망도 코로나가 끝나야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꼭 그날이 오기를 바랐다.
일행이 천왕봉 비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곧바로 출발했다. 대원사에 도착해 저녁 식사라도 하려면 조금이라도 서두르는 것이 낫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하산길은 계속해서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것이 상식이다. 지리산은 상식을 거부했다. 천왕봉에서 치밭목 대피소까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대로 이어졌다. 치밭목 대피소까지 오르막 같은 내리막이 이어졌다면 치밭목 대피소에서 새재 삼거리까지는 미끄러운 바위와 큰 돌덩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화대 종주는 시종일관 난공불락이었다. 지쳐 쓰러질 즈음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게 아량을 베풀었다.
마지막 달리기가 시작됐다. 대원사가 가까워질수록 성취감이 조금씩 살아났고 발걸음도 조금씩 가벼워졌다. 새벽 두 시부터 시작된 화대 종주는 열다섯 시간 만인 오후 다섯 시에 끝났다. 계획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했지만, 주린 배를 달래고 기쁨의 건배를 나누기에는 충분했다. 비빔밥 한 그릇은 진작에 사라졌다. 두부김치에 막걸리를 한잔하는 동안 힘겨운 표정은 조금씩 사라지고 뿌듯한 웃음과 자신감이 모두의 얼굴에 베었다.
지리산을 다녀오고 난 어느 햇볕이 쨍한 날이었다. 시간이 흘러 힘겨웠던 기억은 잊히고 함께 달린 사람들과 서로 힘이 됐던 순간만 가슴에 남았다. 역시 시간은 고통을 지우고 행복을 짙게 하는 마법사다. 풀리지 않던 답도 내놓았다. 화대 종주를 하기 전에는 왜 그렇게 오래 그리고 빨리 달리려고 하는지, 왜 그렇게 나를 한계 속으로 밀어 넣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남들은 알 수 없지만, 지리산을 다녀온 전과 후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고통을 인내하며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나아졌다. 내 가족은 물론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됐다. 삶을 대하는 자신감이 커졌으며 인생은 좀 더 나은 길로 이어질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니까.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디며 세상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세상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모두가 그런 대단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내딛는 길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의 발걸음을 남긴다면 그것만으로 우리는 세상에 흔적 하나 남기는 것이다.
어떤 길이라도 묵묵히 달려가는 우리 러너는 모두 우주에 흔적 하나를 남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앞으로도 늘 달리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도 그러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화를 끝으로 달리기 여행 에세이 <디어 러너>를 마칩니다. 프롤로그까지 총 30개의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