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나다운 달리기

한 번쯤은 최선을 다해 달리기/서울

by 막시

오랜만에 가족들과 올림픽 공원에 갔다. 처음 왔을 때 아내와 아이들은 공연을 보고 나는 달리기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달리기에 빠진 철부지 아빠였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올림픽공원에 <디즈니 온 아이스> 공연을 한다는데, 보러 갈래?”

공연이 아닌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올림픽공원만큼 달리기 좋은 곳이 없다”

학창 시절 당구를 치지 않았던 나는 천장이 당구대로 보인다던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공연이란 말에 달리기가 떠오른 순간, 내가 딱 그 상태가 됐다. 이십여 년간 풀지 못한 의문이 눈 녹 듯 사라졌다.

얼마 뒤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올림픽 공원에 갔다. 공연을 보러 가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재미있게 잘 보고 와."

차디찬 겨울바람을 로마 병사처럼 당당히 달렸다.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게 분명했지만, 스스로는 아무도 해내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해내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추위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순간 뿌듯한 마음이 온몸을 채웠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원 없이 달렸다. 옷 위로 솟아오르는 김은 온몸을 가득 채운 기운이 몸을 뚫고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달리기에 빠져있으면서도 나를 닮은 달리기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렸다. 마치 좋아하는 음식을 모른 채 골고루 먹으라는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시작해 기록을 위해 달렸고, 유대감이 좋아 달리다가 취미가 됐다. 때로는 여러 가지 요소가 뒤섞인 달리기를 하기도 했다. 다양한 달리기를 누리는 가운데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 하나의 달리기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마치 나의 적성이나 특기를 모르는 아이처럼.

JTBC 마라톤 슬로건 '달리자 나답게'를 보고 나서야 나를 닮은 달리기에 관해 생각했다.

과거에 빠진 나를 아내가 빤히 쳐다봤다. "주차했으면 내리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가을이 정점을 향하는 10월 중순,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두 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주차장 왼쪽에는 미술관이 오른쪽에는 잔디밭이 펼쳐졌다. 배드민턴 라켓과 축구공을 챙겨 사람들이 있는 잔디밭으로 갔다.

맥주를 마시며 흥겨운 대화를 나누는 청춘 남녀가 눈에 띄었다. 공원에서 술을 마시며 고성방가를 하면 비난받아야 하지만 맥주 한 캔 정도 마시는 모습은 괜찮지 않을까?

다양한 조각 미술품이 있는 공원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웃고 즐기는 모습에 흐뭇해졌다. 한쪽에선 연인들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완벽한 공원이었다.

외국에서 이 정도 날씨와 햇살이면 분명히 반라의 태닝 족들이 있을 텐데 동방예의지국에는 한 명도 없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태닝을 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타인의 자유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예의다.

목마르다는 아들에게 엄마와 배드민턴 하며 기다리라고 하고 편의점을 찾아 나섰다. 많은 사람이 산책하고 있었고 중간중간 나처럼 달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주위에는 제법 많은 조각이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쯤 생기는 미술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찰나 공원 안내소가 보였다. 올림픽공원이 세계 5대 조각 공원이라는 사실에 공원이 더 멋스러워졌다.

정작 찾아야 할 편의점은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찾기를 포기하고 가까운 카페에 갔다. 카페마저도 나를 외면했다. 아들이 먹을 음료수도 마땅치 않았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친절하게 말했다. “마실 물은 저쪽에 있어요.”

얼굴에 낀 먹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른 건 몰라도 한국의 물 인심은 세계 최고다.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유럽은 물조차 유료다.


분명히 배드민턴을 하라고 했건만, 아내와 아들은 힘든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아내가 축구를 할 때마다 궁금하다. 본인이 어른이 되어 축구를 할지 상상이나 했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세상 모든 엄마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아빠들이 고무 줄 놀이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나를 발견한 아내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외쳤다. “선수 교체”

얼마나 열심히 아들과 공을 쫓아다녔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여보, 뭘 그리 열심히 하고 그래? 설렁설렁하지?”

“대충 하면 서준이가 재미없다고 해, 아이고 힘들어”

엄마가 주저앉자 반대쪽에 있던 아들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물을 마시고는 말했다. “축구 그만할까?”

에너자이저 아들의 상태를 보니 아내가 쓰러지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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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광복절에 친구들과 달리기를 하러 이곳에 왔다. 올림픽공원 수영장 앞에서 출발해 발길이 향하는 대로 달렸다. 몸이 채 풀리지도 않았을 때 올림픽공원의 정문인 평화의 광장에 도착했다.

평화의 광장에는 비둘기 날개 모양을 본뜬 <평화의 문>이 있다. 웅장한 크기의 평화의 문에는 오륜 마크가 떡하니 박혀있고 주위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가 펄럭인다. 관광객이나 러너들이 인증 사진을 찍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곳을 반환점으로 방향을 틀어 발길이 이끄는 대로 달렸다.

뉴욕을 달린 친구는 센트럴파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다고 했고 런던을 달린 나는 리센츠 파크보다 더 멋지다고 했다. 올림픽파크는 러너들의 성지다.

올림픽 공원은 뮌헨올림픽 공원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문득 뮌헨올림픽 공원에서도 달리고 싶었다. 경험은 또 다른 경험으로 이어진다고 믿기에 언젠가는 뮌헨올림픽 공원을 달릴 나를 상상했다.


10여 년 전 올림픽 공원에서 야외 결혼식을 한 선배가 있다. 댄스 동호회에서 만난 그 부부는 춤을 추면서 입장했다고 한다. 지금 그렇게 해도 멋질 텐데 그런 결혼식이 거의 없던 그때는 어땠을까? 정말 어느 가요의 노랫말처럼 ‘말해 뭐해’ 아닐까?

요즘처럼 개성이 주목받는 시대에는 누구나 하는 대량생산 방식의 결혼식은 별로다. 그렇다고 누구나 하는 방식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클래식은 영원하다.

한 끗 차이는 화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연에도 적용된다. 지금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결혼식에 참석하지만, 그때는 결혼식을 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같은 팀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올림픽공원에서 선배가 생각날 이유도 없다.

선배가 마니아급 여행가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보다 연상인 그녀는 남동생에게 하는 것처럼 여행의 비결을 알려주었다. 유럽여행을 떠나는 나에게 존재 자체도 몰랐던 전기 라면 포트를 빌려주었고 파리에서 공부할 때 자주 이용했다는 일본 라면집을 알려주었다.

선배는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Bon voyage(여행 잘 다녀오라)’라고 쓰인 봉투를 주었다. 우리 가족이 두 끼 정도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파리에는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고 영화 <비포 선 셋>에서 남녀 주인공이 재회한 장소로 유명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있다. 그곳에서 에코백을 본 순간 선배가 떠올랐다. 선물 고민이 훨훨 날아갔다. 두 발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엽서도 썼다. 그녀가 준 호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다정하고 소탈한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선물이었다. 그녀의 취향을 몰랐다면 프랑스 유학 경력만 생각하고 향수나 와인을 샀을 것이다.

유럽여행 동안 전기 라면 포트는 한국의 맛이 그리울 때마다 구세주가 됐다. 파리의 라면집은 맛을 넘어 감동을 주었다. 온 가족이 엄지를 치켜세웠고 지금도 생각나는 식당이 됐다.


전국체전이 열리는 잠실 종합운동장에 갔다. 처남이 대구광역시 장애인 탁구 코치였다. 종합운동장은 두산과 엘지의 홈구장이라 야구팬이 가장 많이 찾는다. 그다음에는 음악팬이 찾는다. 올림픽 주경기장과 실내체육관이 공연장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나도 가끔 야구를 보거나 공연을 보기 위해 온다. 야구든 노래든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응원한다.


종합운동장에서 국민에게 존경받는 손기정 선수의 동상을 우연히 발견했다. 열 번 이상 종합운동장을 방문하면서도 처음이었다. 그의 곁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동상은 '올림픽 스타 스트리트'로 이어진다. 역대 우리나라 올림픽 영웅들을 기록한 비석이 대회 순으로 세워져 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남승룡 선수의 이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국민 100명 중 99명은 그를 모르지만, 달리기를 너무나 좋아하는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예전 어느 글에서 그의 일화를 보았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를 부러워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금메달보다 히틀러가 준 화분이 더 부러웠다. 그걸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으니까."

그냥 먹먹했다.

광복 후 1947년, 그는 당시 기준으로는 제법 늦은 서른여섯의 나이로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했다. 두 가지 목적이었다고 한다. 하나는 그의 오랜 소원이었던 태극기를 달고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완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인 서윤복 선수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서윤복 선수는 우승하고 남승룡 선수는 완주하며 두 개의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 선수로는 늘 손기정 선수에게 밀렸지만, 지도자로는 누구보다 한국 육상 발전에 기여했다.

모두가 2등을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는 남승룡 선수를 기억하길 바랐다. 금메달리스트가 되지는 못했지만,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의 삶을 돌아보며 항상 최선을 다해 달릴 필요는 없지만 가끔은 최선을 다해 달리고 싶어 졌다.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88 올림픽은 어느 올림픽보다 강렬하다. 그때 달리기 종목의 최고 스타는 칼 루이스였다. 칼 루이스는 직전 올림픽에서 4관왕을 차지했던, 오늘날의 우사인 볼트와 같은 선수다. 많은 사람이 칼 루이스의 우승을 점쳤고 나도 어린 나이였지만 칼 루이스가 우승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고 경쟁자였던 벤 존슨이 마의 벽이라 불리던 9.8을 깨고 9.79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3일 뒤에 전 세계인을 충격에 빠뜨린 대반전이 일어났다. 약물 검사에서 벤 존슨의 약물 복용이 드러났고 금메달은 칼 루이스에게 돌아갔다. 선수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정정당당한 사람이 승리해서 다행이었다.

스포츠 경기에서 수시로 터지는 약물 파동은 극한 경쟁이 불러온 폐해다. 다행히 마스터스 마라톤은 그렇게 심한 경쟁은 없다. 대부분의 러너는 순위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간혹 지나치게 순위와 기록에 집착하는 선수가 있긴 하다. 때로는 부정한 방법으로 기록을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러너라 불릴 자격이 없다. 러너다운 달리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달려내는 것이다. 기록은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종합운동장은 우리나라 메이저 마라톤의 상징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열리는 양대 메이저 마라톤의 결승선은 종합운동장 안에 마련된다. 2011년부터 한해에 한 번은 꼭 잠실 종합운동장에 마련된 결승선을 통과했다. 대체로 최선을 다해 달렸고 가끔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했다. 별 의미 없이 그냥 달릴 때도 있었다.

최선을 다해 달릴 때는 늘 종합운동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울컥했다. 감격스러운 기록에 울컥하는 것이 아니라 대회를 준비한 지난 과정과 묵직하고 막 경련이 일어나려는 것을 참아내며 최선을 다해 달리는 내 모습이 장해 울컥한다. 주위에서 응원하는 사람들도 큰 몫을 한다. 응원의 힘은 굉장해서 더 최선을 다하게 되는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더 울컥하게 된다.

마라톤 경험이 별로 없었던 시절에는 풀코스를 달리면 무조건 울컥하는 줄 알았다. 그건 아니었다. 달리기 열정이 조금 떨어진 어느 날, 별 의미 없는 완주를 했더니 하나도 울컥하지 않았다. 풀코스 달리기가 뭐 이래? 왜 이렇게 감흥이 없지?

감흥이 없어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딱 1% 정도 덜 힘들었다. 그 이후 다시 최선을 다해 달린 어느 날, 울컥하는 나를 느꼈다. 결승선을 통과해 걸어 나오며 '나란 사람은 최선을 다할 때 행복한 러너구나, 나다운 달리기는 최선을 다하는 달리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최소한 달리기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할 때 뜨거워지고 감동했다.

이제 풀코스 대회만은 최선을 다하는 달리기를 고집한다. 나다운 달리기니까.

종합운동장을 빠져나오며 내년 봄 서울 국제마라톤에서도 나다운 달리기 최선을 다하는 달리기를 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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