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사람을 닮은 달리기

희생 아닌 함께 하기도 /강원도

by 막시

러너는 여행할 때도 달리고 싶다. 오랜 시간 달리다 보면 달리기가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여행을 달리기 친구와 함께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전혀 달리지 않는 사람이나 달리기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여행할 때도 있다. 같은 러너와 여행할 때도 서로의 실력은 다르다. 간혹 이런 생각이 든다. 그들과 함께 여행할 땐 어떻게 달려야 할까?

속초로 떠난 여덟 명 중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그러한 이유로 이른 아침 나 홀로 달리러 나갔다. 천천히 걸으며 몸을 풀고 오백 미터쯤 떨어진 외옹치항 둘레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외옹치항 둘레길의 별칭은 ‘바다향기로’다. 1970년 폐쇄됐다가 2018년 4월에 개방됐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더 멋스러웠다. 나무 데크로 단장돼 탁탁탁탁 소리 내며 달리는 재미가 있었다.


해안 경계초소가 나타났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 시절을 떠올릴 법했다. 신병교육대를 떠나 자대에 배치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경기도 일대에 쏟아진 폭우로 심각한 수해를 입었다. 부대원들은 수해복구를 하느라 훈련보다 삽질이 먼저였다. 하루 일정이 삽질로 시작해 삽질로 끝났다.

시골 출신인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삽질을 시작하여 입대할 때까지 삽질 경력만 10년 이상인 베테랑 삽잘러였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삽질 실력으로 즉시 A급 병사로 분류됐다.

어깨에 뽕 들어간 기간은 길지 않았다. 수해복구가 끝난 뒤 총질을 시작하면서 평범한 병사로 전락했다. 총질은 누구나 처음이라 대체로 재능에 의해 판가름 난다. 나의 재능은 누구보다 평범했다.

공병에 갔으면 영원히 A급 병사였을까?

앗, 너무 오래 군대 생각에 발목 잡혔다. 몸에 날파리가 묻은 것처럼 군대 생각을 털어냈다.


외옹치항 둘레길은 끝나고 속초 해수욕장 해변 길이 시작됐다. 지난여름의 가족여행이 떠올랐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달 전으로 간 나는 아이들과 피자 보트를 타고 있었다. 어른들을 아이로 만들 만큼 재미있었다. 정신없이 놀다 미처 다가온 초강력 파도를 피하지 못했다. 파도는 나를 패대기쳤다. 허리가 거꾸로 폴더가 될 뻔했다. 한동안 허리가 뻐근했다.

뭔가 허전했다. 선글라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부러진 플라스틱 하나만 물 위에 떠 있었고 나머지는 흔적도 없었다. 사라진 선글라스는 몇 달 전 바르셀로나에서 샀다. 아이들과 행복했던 바르셀로나 여행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바르셀로나 추억 덕분에 상한 기분은 조금에 희석됐다.

허리가 아닌 선글라스가 부러져 천만다행이었다. 허리를 다쳤다면 달리기는커녕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이 됐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돌아와 멀쩡한 허리를 만지며 안도했다.

세계 주요 도시까지 거리가 표시된 화살표 기둥 아래 ‘SOKCHO’라는 팻말이 보였다. 근래 많은 지자체가 여행 명소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지자체 명을 새긴 팻말을 설치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자신의 SNS에 여행을 인증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현상이다.

팻말을 반환점으로 숙소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 오른쪽에는 소나무 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더운 나라에 가면 야자수가 있는데 우리나라 해변에는 주로 소나무가 있다. 우리는 소나무가 익숙해서 특별하지 않지만 더운 나라에 사는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굉장히 이국적인 해변으로 느낄 것이다.


내가 아는 최고의 솔숲 해변은 강릉에 있다. 강문해변에서 송정해변을 지나 안목해변에 이르는 3km 해송 길은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모래사장, 솔향 가득한 자연의 길이 조화롭게 펼쳐진 곳이다.

8월의 어느 날, 그곳을 친구들과 함께 달렸다. 한여름이었지만 우뚝 솟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바닷바람은 소나무 숲을 지나며 피톤치드가 되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정화했다. 경포호수를 한 바퀴 돌아 강문해변을 찍고 송정해변을 지나 안목해변에 이르니 강릉의 명물 카페거리가 나타났다. 강문해변 끄트머리에 있는 그리스 산토리니 풍의 카페를 보면서 그리스 산토리니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았다.

커피 맛은 잘 모르지만, 달리기 할 때 커피 생각은 늘 간절하다. 몇 년 전 서울 국제마라톤 결승전 1.5km를 앞두고 내 우측에 있던 스타벅스를 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커피 유혹에 빠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없던 힘도 솟아날 것 같았다. 1초라도 빨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다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달렸고 물품보관소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카페로 달려갔다. 얼음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막 바다향기로를 빠져나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식당으로 바로 오세요"

달리지 않는 사람들과 여행할 때 달리기를 하고 왔다고 하면 대체로 영혼 없는 말을 한다. "대단하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영혼 없는 감탄 대신 진짜 달리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달리기를 전혀 하지 않는 또 다른 사람들과 고성에 있는 어느 리조트에 머물 때였다. '울산에서 금강산으로 가다가 눌러앉았다'라는 말도 안 되는 전설 속의 울산바위가 있는 곳이다. 리조트에서 울산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진 설악산을 보니 가까이 가고 싶었다. 달리고 싶은 생각이 슬금슬금 올라와 지도 어플을 실행했다. 근처에 저수지가 있었다. 전국의 저수지는 대체로 훌륭한 둘레길로 꾸며져 있다. 멋진 러닝 코스가 될 거라는 기대는 도착하자마자 조각났다.

길은 없고 저수지만 덜렁.


살면서 한 번도 달려본 적 없을 것 같은 룸메이트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있었다. 덕선(혜리)이가 엄마한테 운동화를 선물 받는 장면이었다. 덕선이는 나도 잘 모르는 타이거 운동화를 받고 엄마에게 행복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1988년, 덕선이가 고3일 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즈음 나는 역전마라톤(구간 마라톤) 군 대표 선수로 선발됐다. 나를 지도하던 육상부 선생님은 우리 앞집 할머니 집에서 하숙했는데, 어느 날 나에게 러닝화를 하나 사 주셨다. 지금은 사라진 코오롱스포츠의 '액티브'로 기억한다. 나도 덕선이만큼 좋았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당시 코오롱스포츠는 마라톤에 많은 투자를 했다. 액티브, 프로스펙스, 르까프 같은 국내 브랜드도 꽤 잘 나갔는데, 요즘에는 국내 브랜드는 전멸이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러닝화 시장을 선도하고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덕선이가 타이거 운동화를 좋아하는 장면은 전멸된 국내 러닝화 브랜드 현실과 겹쳐져 더 아쉬웠다.

감상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 찍고 설악산으로 가시죠”

속초가 사랑받는 이유는 바다와 산을 한 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가 낯선 지인들과 설악산으로 향했다. 3시간이면 충분한 소공원에서 토왕성폭포 전망대까지 오르는 코스를 골랐다. 단풍이 끝난 시기, 그것도 월요일이라 그랬을까? 남한 최고의 명산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사람이 드물었다.

뻥 뚫린 길을 만나니 달리고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찾아왔다. 일행이 러너였다면 당연히 달렸을 것이다.

춘천마라톤을 달릴 때였다. 특별한 목표가 없어 세월아 네월아 달렸다. 35km를 막 지났을 때 뒤에서 누군가 큰 소리를 질렀다. 마라톤의 벽을 지나는 시점이라 남의 말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몇 번 더 듣고 나서야 뒤돌아봤다.

휠체어를 밀며 누군가 달리고 있었다. 아차 싶어 서둘러 길을 내주었다. 휠체어를 미는 사람은 달리기를 통해 컴패션 활동을 하는 가수 션이었고 소리를 치는 사람은 션과 함께 하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풀코스 마라톤은 혼자 달리기에도 벅차다. 누군가를 휠체어에 태우고 달리는 션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그제야 나는 혼자 달리지 못하는 누군가와 함께 달리는 것이 얼마나 따뜻한 달리기인지 알게 됐다.

가수 션과 함께 달리는 봉사자들은 길을 내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가끔 러너들이 길을 내지 않을 때는 나도 큰소리로 힘을 보탰다. “비켜주세요. 휠체어가 지나가요."

예전에도 시각 장애인과 함께 달리는 러너들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눈으로만 보고 마음으로 보지는 못했다. 대회 때는 늘 나의 달리기에 집중하는 편이기에 그들을 볼 여유조차 없었다. 세월아 네월아 달린 그날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보였다. 그날 이후 누군가를 위한 달리기를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설악산에선 달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함께 가는 일행에게는 등산도 힘겨운 운동이기 때문이었다. 속도를 늦추기는 쉽지만, 속도를 내는 건 어렵다. 여러 사람이 동행할 때는 빠른 사람이 느린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상식이다.

육담폭포를 지나 비룡폭포를 오르는 길에 출렁다리를 만났다. 용감한 어린아이는 스릴을 느끼고 내숭 떠는 여인은 무서운척하며 애교를 부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출렁다리에서 로맨스를 느꼈을 것 같은 20대 중반 커플을 비룡폭포에서 만났다. 미남미녀였다. 나는 연애 시절 왜 저들처럼 커플 여행을 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연애할 때는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으니 굳이 멀리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비룡폭포에서 토왕성폭포까지의 거리는 400m밖에 안 되지만, 계단이 900개나 되는 만만치 않은 코스다. 꾸준히 달리는 나는 헉헉대며 올랐고 운동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지인은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일행 한 명이 거의 고꾸라질 즈음 벤치가 구세주로 나타났다. 우리보다 먼저 토왕성폭포로 향했던 커플도 쉬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물을 마셨다. 함께 간 후배가 물이 없어 보이는 커플에게 물을 건네자 주위의 온도가 몇 도는 올라간 듯 따뜻해졌다. 커플은 후배에게 고맙다고 말했고 모두의 얼굴엔 미소가 춤췄다.

외국인 커플을 만났다. 여자가 먼저 내려오다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질문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내가 먼저 어디서 왔냐며 말을 걸자 질문과 대답이 폭포수가 되어 돌아왔다. 네덜란드에서 온 커플은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에게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받으니 신기했다.

설악산에서 한국인보다 외국인을 더 많이 만났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평일이라 그랬겠지만, 설악산이 제법 세계적인 명산이란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토왕성폭포 전망대에 올랐다. 아, 어찌 된 일인가? 기대했던 웅장한 폭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리저리 한참을 찾다가 쪼르르 흐르는 아주 약한 물줄기 하나를 발견했다. 폭포는 그것밖에 없었다. 폭포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민망했다. 저게 뭐야? 내가 왜 부끄럽지?

폭포를 제외한 풍경은 최고였다. 깎아내린 거대한 절벽, 그사이에 솟아난 소나무, 푸른 속초 바다, 청명한 하늘이 환상적으로 어울렸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떠올랐다.

옆에 있던 후배는 풍경을 동영상으로 담으며 말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나만 보긴 너무 아깝잖아요. 찍어서 아내에게 보내주려고요.”

웃음이 살포시 났다.

사람이 앉아야 할 벤치에서 다람쥐가 과자를 먹고 있었다. 방금 내려간 네덜란드 커플이 주고 간듯했다. 다람쥐는 우리를 투명 인간 취급했다. 손을 다람쥐 곁으로 살금살금 내밀었다. 다람쥐는 내 손을 슬쩍 건드리더니 다시 과자를 먹었다.

다람쥐 친구들이 어떻게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몇 년 전 말레이시아 여행에서 만난 원숭이가 생각났다. "예전에 말레이시아 여행 갔을 때 원숭이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더라."

“원숭이가 호텔로 들어와 방을 난장판으로 만든 적도 있어요.” 후배의 말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토왕성폭포 전망대까지 다녀오는 내내 달리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달리기 좋은 공간을 만나면 달리고 싶어 지는 러너의 마음을 거슬렀지만, 달리기보다 상황에 맞는 속도가 더 어울릴 때가 있다.

살아가는 동안 설악산을 달릴 기회는 언제든 만들 수 있다.

소공원에 도착해서 권금성을 바라보니 케이블카가 내려오고 있었다. 여행은 또 다른 여행으로 나를 데려갔다. 몇 년 전 처가 식구들과 함께 케이블카를 탔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 장모님은 다리가 아파 산에 오를 수 없었지만, 속초까지 왔으니 설악산은 보고 싶다고 하셨다. 유일한 방법이 케이블카였다. 하마터면 오르지 못할 뻔한 설악산을 케이블카 덕에 오를 수 있었고, 온 가족은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행복한 한때를 누렸다.


케이블카를 설치할 때는 환경단체의 반대 목소리가 커진다. 환경을 훼손한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은 틀림이 없다. 산에 오르고 싶어도 오르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무조건 반대가 능사는 아니다.

그들은 얼마나 산에 오르고 싶을까?

할 수 없는 것을 향한 열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금지된 사랑도 그렇지 않던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보다 할 수 없는 사람을 배려할 때 세상의 온도는 사람의 온도가 될 것이다.

사람을 닮은 달리기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답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속도에 맞추는 달리기였다. 페이스메이커로 달리기, 달리기 친구들과 함께 여행 달리기, 연습 파트너로 달리기.

생각해보니 많은 러너가 사람을 닮은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꼭 가수 션처럼 달리지 않더라도 러너는 마음이 따뜻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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