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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시 Dec 24. 2020

샐러드가 데려온 가정의 평화

"꼭 그렇게 해야 해?"

세상의 모든 불만을 품은 아내의 메시지를 보고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발단은 이렇다. 어느 날 조금 늦은 출근을 하게 됐다. 아침식사 준비에 여념 없는 아내에게 "운동하러 다녀올게"라는 한 마디를 툭 던지고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한 시간 뒤 나를 기다린 건 "운동 잘했어?"라는 아내의 다정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시베리아 얼음을 잔뜩 머금은 바람이었다. 아내의 얼굴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던 아내는 찬 바람을 일으키고 집을 나갔다.  


아침식사 준비는 늘 아내의 몫이었다. 그 시간에 나는 독서와 글쓰기, 달리기를 했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아내가 불만이 없는 줄 알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코로나가 아내의 상황을 바꾼 지 한참 지난 상태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자 아내는 지금까지 하던 아침에  더해 점심까지 준비했다. 아이들의 두 끼 식사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아내는 자신의 출근 준비를 했다. 아내는 더 바쁘게 움직였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떤 사건이든 일어나기 전에는 징조가 있게 마련이다. 음식 쓰레기 버리기는 나의 몫이다. 새벽 달리기를 나갈 때 음식 쓰레기를 버리는데 간혹 잊을 때가 있었다. 내가 보기엔 별일 아닌데 아내는 예리한 칼 날을 말로 휘둘렀다.  "쓰레기 버리는데 관심이 없으니까 그냥 두는 거잖아!"

억울하다고, 그냥 잊은 거라고 하소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내의 마음은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 같았다.


"꼭 그렇게 해야 해?"

아내가 카톡으로 보낸 이 한마디가 나를 각성케 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자기계발이란 포장지에 숨은 나는 아내의 시간을 갉아먹으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생각과 행동을 바꿨다. 우선 아침 시간을 나 혼자가 아닌 가족에게 할애하기로 했다. 당연히 해야 할 내 몫이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둔 사람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내 가치관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남자와 같은 DNA를 가졌다. 무엇이든 분명하게 지시를 해주어야 잘 한다. 아내는 세상 모든 여자들이 가진 DNA를 가졌다. 알아서 해주기를 바랐다. 아내의 마음이 누그러진 어느 날 아내는 아침 준비를 함께해 주기를요청했다. 이즈음 우리는 아침식사로 샐러드를 먹었다. 결혼 이후 쭉 이어오던 밥을 간편하면서도 건강한 식단으로 바꿨다. 이것도 코로나가 가져다준 변화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의 두 끼 식사 준비를 위해서 최대한 시간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샐러드를 준비한 지는 두 달이 지났다. 우리 집은 다시 평화로워졌다. 아내는 내가 만든 샐러드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샐러드를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0분이 안 걸린다. 2인분의 샐러드 재료는 이렇다. 토마토 반개, 양상추 조금, 파프리카 반개, 아보카도 한 개, 올리브 한 숟가락, 노른자 뺀 구운 계란 2개 또는 닭 가슴살이다. 올리브유와 소스는 맛과 비주얼을 보탠다. 아내는 이것만으로도 많다고 하지만 새벽 달리기를 마친 나는 시리얼을 더 먹기도 한다. 그래야 배고프지 않고 반나절을 보낸다.


아내보다 일찍 일어나는 내가 얼른 아침 준비를 마치면 아내가 아이들 두 끼 아침을 준비한다. 숙련된 노하우를 가진 아내의 두 끼 식사 준비 시간은 놀랍도록 빠르다. 10년 이상 된 경력도 있지만 당일 배송 시스템을 이용해 가공식품을 이용하고 샌드위치 같은 간편식품을 준비하는 영향도 있다.

꼭 밥이 능사가 아니다. 탄수화물에 쏠린 밥보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균형 잡힌다면 엄마표 간편식품도 충분히 좋은 한 끼 식단이 된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도 입에 넣어야 뼈와 살이 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영양소가 고루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앞으로 아이들이 더 자랄 동안 아내와 내가 고민해야 할 몫이다.


아내가 아이들 아침 준비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달리기를 하거나 독서를 한다. 예전에는 하루에 독서 달리기 글쓰기 3종 세트를 다 했다. 그런 강박관념에 살았는데 마음을 놓았다. 삶의 속도를 줄인 셈이다. 그 이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매일 글쓰기를 하지 않아도 내 삶이 나빠지지 않는다. 글쓰기 실력이 조금 천천히 늘겠지만, 속도보다 골디락스(천천히 조금씩 나아지는 것)를 추구하기로 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다. 글쓰기 실력을 고속으로 높이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하고 아빠답게 남편답게 사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내가 글쓰기 실력을 일취월장시켜야 할 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참 다행이다.


가화만사성은 정말 지혜로운 말이다. 가정이 평화로워야 무엇이든 잘 된다. 샐러드가 데려온 가정의 평화가 참 좋다. 이어가야 할 것이다. 무엇이든 가만히 되는 건 없다. 크고 작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말이다. 하루 20분이 가져다준 평화치고는 너무나 크다. 몸 건강에 좋은 샐러드가 마음 건강에도 영향을 끼칠 줄 두 달 전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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