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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정 Oct 18. 2022

일상일기 (16)진정한 명상


일주일에 한번 청태산 자연휴양림을 간다 

남편은 계곡물을 길러 가고 

나는 명상을 하러 간다

남편은 정수기도 아니고 상수도도 아니고 지하수도 아닌 

청태산 계곡물을 식용수로 먹겠단다. 

그래 하고 싶은 거 다해라.. 

나더러 길어오라는 것도 아닌데 말려 무엇하랴

이 참에 나는 휴양림에서 명상이나 하련다..


첫째주 …

남편은 계곡을 탐색했다 

가재나 물고기는 있는지, 

물길은 어디로 흐르는지..

썩은 나뭇가지는 치우고, 버려진 쓰레기는 담았다. 

남편이 그러고 있는 사이, 

나는 명상하기 좋은 자리를 물색했다. 

이끼도 없고 습기도 없는 평평한 바위를 찾아야한다. 

평평하면 발 담글 물이 멀고, 

물이 좋으면 앉기가 거북했다

많이 양보해서 나쁘지 않은 자리로 타협했다  

청태산 정기와 계곡물의 기운을 받아 

부랴 부랴 회복하고 싶었다

자연의 품에서 신선처럼 깊은 명상에 

빠져보리라 기대에 부풀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명상이 잘 되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집중이 잘 안되었다. 

남편은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산림욕 관리인마냥 등산로를 알려주고

관광객들은 하하호호 시끄럽다 

숲에 왔으면 자연을 느껴야지 

왜 저렇게 떠들고 난리야

짜증이 올라왔다 ..

명상, 오늘은 실패…


둘째주.…

남편은 점점 물통의 갯수가 늘어난다.

식용수로만이 아니라 밥도 하고 국도 끓이겠단다.

숲에서 주차장까지 세번을 왕복하며 물을 긷겠단다.

덕분에 나의 명상 시간은 더 여유롭다 

내가 점찍어 놓은 내 명상자리는 굳건히

거기 그대로 있었다..

나는 익숙하게 거기에 앉았다

허리는 펴고 목과 어깨의 긴장은 풀고 

꼬리뼈는 바닥쪽을 향하고  

상체는 곧게 펴고 …

호흡에 집중….

내 안에 호흡이 차분하고 고르다

오늘 명상 성공.. 

역시 자연의 힘이란…


셋째주..

이제 남편에게 계곡물 긷는 일은 

집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것만큼 자연스럽다 

남편이 숲을 돌보는 동안

나는 눈을 감고 명상을 하다가 

문득  알아차렸다 


이 좋은 숲에 와서 

내 호흡에 집중하느라

이 숲과 호흡하지 못했다는 것을..

내 안에 갇혀서 

이 밖의 평화를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드디어 나는 눈을 뜨고 

나무를 보고 물을 만진다. 

숲을 느끼고 새소리를 듣는다

남편이 돌을 옮기고 나무를 정리하는 것을 돕는다 

남편은 내가 눈 감고 있는 동안 

숲과 함께 명상하고 있었구나


넷째주..

오늘은 명상 한답시고 

눈 감고 내 호흡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가기 전부터 마음 먹었다 

내 호흡에 집중하는 것 대신에 숲의 호흡에 귀기울이여야지 

내 명상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발 닿고 손 닿는 어디에든 마음을 담아야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은 어떤 마음일까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당차게 자라고 있는 

솟대는 어떤 기분일까

바위 사이로 허리 굽혀 간신히 자라고 있는 

이 나무는 무슨 심정일까

그들의 마음을 느껴본다


진정한 명상은 

내 안의 느낌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없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과 

공감하는 것이다.


나 드디어 청태산 자연휴양림에서 

명상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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