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시멘트를 발라 놓은 것처럼 딱딱하고 쓰라리다.
빨간 약을 바르듯이 허겁지겁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사후생]을 펼쳐 들었다
죽음 연구가이자 심리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5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1단계 맨 처음에는 충격을 받아
현실을 부정하고 실감을 못하다가
2단계 비로소 분노한다
3단계 현실에서 상처를 제일 덜 받는 범위에서
타협안을 찾고
4단계 이 상황이 오게 된 원인에 대해
자책하거나 우울해한다
5단계 종국에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우리는 지금 어느 단계인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이 이론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지침을 주고자 하신 걸까?
지금 우리는 환자가 아니다. 보호자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분노만 해서도 안되고
우리 아이들이 아니니 다행이라 여기며
훌훌 털 수도 없으며
이런 상황을 만든데 일조한 어른으로서
자책하고 우울해하는 것도 사치다.
죽음은 운명이려니 여기며
각자 조심하자는 체념도 안된다...
보살펴주는 역할을 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수용하는 단계에 이를 수 있도록
각 단계를 알아차리고 받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피해자와 목격자의 분노를 들어주고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두눈 부릅뜨고 확인해야 한다
다시 재발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피해자들이 자책하거나 우울해하지 않도록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이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종국에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겠지만
그것이 체념이 아니라
수용과 승화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도처에 허무가 널려있어도
중심 잡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