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무상함만 남은 절터 황룡사지
분황사
분황사와 황림사지는 계획에 없던 곳인데 경주 엑스포로 이동하면서 이정표가 있길래 잠시 들른 곳이다. 두 곳이 바로 옆에 붙어있으니 함께 묶어서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분황사는 역사 교과서에서 많이 보았는데 직접 방문해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분황사 하면 모전 석탑이 가장 유명하고, 마치 사방으로 동물 형상을 한 석상들이 모전 석탑을 지키고 있는 듯한 웅장함이 느껴진다.
분황사 맞은편의 막국수 집이 유명하다고 했는데 일정이 바빠 위치만 파악하고 갔다.
분황사
경북 경주시 분황로 94-11
634년 (선덕여왕 3년)에 창건되었다. 국보 제30호로 지정된 모전석탑을 비롯하여, 화쟁국사비석대, 석정, 석조, 초석, 석등, 대석과 사경 이외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어 보존되고 있다. 절의 좌전에 있었던 천수대비 벽화는 매우 영험이 있어서 눈먼 여자아이가 노래를 지어 빌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전한다.
분황사 모전석탑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이다.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탑은 널찍한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모습이다. 선덕여왕 3년 분황사의 창건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표현된 금강역사 조각은 당시 7세기 신라 조각 양식을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된 이후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리 당시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등의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경주시
황룡사지
분황사 바로 옆에 위치한 황룡사지는 절터만 남아있었으나 흔적만 남아 있는 곳들을 걷기만 해도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을 것이라 짐작이 될 만큼 넓다. 지금은 그곳에 가을에 코스모스와 여러 가지 꽃들이 차지하고 있다.
황룡사 9층 석탑을 왜 석탑이 아닌 목탑으로 만들었을까?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랬으면 아직 잘 보존되지 않았을까? 분황사와 황룡사지가 선덕여왕 때 지어졌다면 분명히 석탑으로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마도 지금은 남아있지 않아서 더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 같다.
황룡사지
경북 경주시 구황동 772
황룡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사찰로서, 경주에서 가장 컸던 사찰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황룡사는 9층 목탑과 장률 삼존불상과 더불어 신라 삼보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 고종 25년에 몽골 제국의 침입에 의해 소실되었다. 현재 그 터인 황룡사지가 사적 제6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