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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백록담

by 정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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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백록담


화산의 심장에

잠든 물 한 점

하늘을 품고

바람은 오래된 기도를 올린다

나도 소망 가득 담아 발걸음을 옮긴다




매년 한 번,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10시간 넘는 긴 여정 속에, 온전히 나만을 마주하며 걷는다.


처음 한라산을 찾았을 땐, 내 건강이 무사한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숨이 가쁜지, 다리는 괜찮은지, 나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2020년부터 제주에 가면 늘 한라산을 예약한다.

하지만 그 계획은 매번 산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곤 했다.

구름이 짙게 내려앉거나, 비가 억수같이 퍼부어 오르지 못한 날도 많았다.


이번에도 그리 맑은 날씨는 아니었다.

비를 맞으며 내려오는 길은 쌀쌀했고,

손끝이 얼 듯 아렸지만 나는 끝내 완주했다.

그리고 정상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나를 잃지 않기를 바라며.


산을 내려왔을 때, 스마트폰엔 4만 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10시간, 4만 걸음, 그리고 나.

조금은 지쳤지만, 그럼에도 해냈다는 마음이

내게 다시 묻는다.

“괜찮아, 잘했어. 뭐든 할 수있어."

그렇게 또 한 해, 나를 확인하는 의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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