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배흘림기둥 그림자.
그림자는 우주다. 지구에도 달에도 검은 그늘이 있다. 지리산과 남산에도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는 긴 그림자가 있다. 한여름 배롱나무꽃 학의 목을 닮은 가는 꽃술도 분홍색 꽃잎 위에 여린 제모습을 검게 그리듯, 만물이 그림자가 없이는 제 모습을 완성할 수 없다. 그러기에 감히 그림자와 우주를 같은 반열에 놓았다.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을 보고 싶어, 어느 늦은 봄날 영주 부석사를 찾았다. 이른 새벽 고즈넉한 산사(山寺)의 오솔길을 산책하는 느낌은 각별했다. 공기가 신선하여 가슴도 청량하지만, 무엇보다 머리가 맑아 기분도 좋아졌다. 절에서 가까운 숙소에 여장을 풀고서, 일찍부터 서둘러 무량수전 앞에 섰다.
아침 햇살의 부드러움이 무량수전 기둥의 볼록한 배를 어루만지며 신비로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여섯 개의 붉은 기둥에 비치는 양(陽)과 음(陰)은 수수하여 더욱 아름다웠다. 기와지붕의 수려한 곡선과 석등의 고졸함이 자아내는 흑과 백의 대비는 마치 석양 붉게 빛나는 불국사 다보탑의 음영(陰影)과 견줄 만했다.
조사당으로 오르는 길에 천년을 살아온 삼층석탑, 멀리 펼쳐지는 산그리메 물결을 바라고 서 있다. 탑을 등지고 앉아, 아침 햇살이 만들어 내는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있었다. 조용한 산 속이라 지금 당장 이 봄이 다 가버린다 해도 깨달을 수 없을 것 같은 고요가 가득하다.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깊은 산이지만, 가는 듯 가지 않는 듯 배흘림기둥에 지어졌던 그림자는 시나브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구가 자전하고 있으나 느낄 수 없듯이 그림자도 움직이고 있을 터인데 두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봄이 무르익는 산중의 아침은 신선하고 평화롭다. 키 큰 소나무 사이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작은 관목들의 초록 이파리도 반짝인다. 꼬막손 고사리 여린 잎마다 보석을 박아 놓은 듯 이슬이 영롱하다. 부드러운 바람에 꽃들이 고름을 풀고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뻐꾸기와 휘파람새가 아침 숲을 노래한다. 봄이 절정이다. 아름다워 행복하고, 행복하여 더욱 아름답다.
쏟아져 내리는 햇살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빛나는 햇살만큼 그늘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나뭇잎의 반짝임도, 영롱한 이슬의 빛남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을 것 아닌가? 꽃은 붉으나 그림자는 무채색인 검정이다. 자기를 낮추며 드러내지 않는 겸양한 색이다. 세상 모든 빛깔을 보듬어 내는 도량이 큰 검정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겸손한 그림자 있어 더욱 아름답다. 그림자는 숲이요 자연이며 우주다.
색채는 감성에 호소하는 이미지이며, 무채색은 이성에 호소하는 사실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그런 연유로 전쟁의 참화를 전달하는 사진이 흑백사진이 많다. 피카소의 그림 중에 전쟁을 고발한 ‘게르니카’도 그래서 무채색이다.
모든 사물에는 그림자가 있으나 색깔이 없기에 가볍게 지나거나 아예 보지 못한다. 양지만 보지 말고 음지도 보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림자도 오래 보고 자세히 보면 꽃이 된다.
부석사 범종 소리 그림자 되어, 십 리 밖 속세까지 울려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