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이, 마치 한 편의 독백처럼]
한때 나는 길을 잃었다. 아니, 길이라 믿었던 것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회색빛 안개뿐. 발끝 아래가 진창인지, 허공인지조차 분간되지 않던 날들.
하지만 웃긴 일이야.
그 황량한 틈에서, 나는 뜻밖에도 노래를 들었지.
그것은 멀리서 들려온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내 안에서, 숨죽이며 기다려온 듯한 목소리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걷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들꽃에게 길을 묻고,
비에 젖은 나무껍질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며,
때로는 돌부리에 발끝을 부딪혀 넘어지기도 하면서.
나는 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내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내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도 안다.
누군가는 그것을 회복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무릎 꿇지 않는 존엄이라 부르겠지.
하지만 나는 그저
바람의 언어를 배운 것뿐이다.
꽃잎 하나가 젖는 소리에 고개를 드는 법을,
누군가의 침묵 속에서 오래 머무는 법을.
삶은 때로 목을 조른다.
그러나 삶은, 그 목을 놓아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걸어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이 이끄는 곳으로.
오늘의 발걸음이 내일의 문장이 되기를.
나의 노래가 언젠가 누군가의 바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