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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할수있기에 아무것도 할수없는 이유

by 박경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는 무한한 가능성에 갇혀 있다.
그는 어느 하나에 정해지지 않기에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다.

모든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은 곧 어떤 길로도 향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발이 닿는 어느 곳이든 길이라면, 그가 갈 곳이 정말로 있을 수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묻는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
그들은 그가 가야 할 방향을, 가질 목표를, 걸어야 할 길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묻지 말아야 할 질문이다.

그는 이미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는 나비의 날개처럼 흔들리며, 세상의 모든 색을 담아내는 물감을 쥐고 있다.
그러나 붓을 들어 어느 한 색을 칠하기에는 그 색 외의 모든 것이 버려져야 한다.
그는 모든 색을 그릴 수 있기에 결국 무채색의 캔버스만을 응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택하지 않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택 역시 하나의 길이다.
자신을 묶지 않으려 할수록 그는 더 깊은 함정에 빠져든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건, 때로는 비극이기도 하다.
할 수 없는 자는 애초부터 희망이 없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길이 열려 있는 자는 고독하다.
어느 길로 가든 나머지 길을 포기해야 하고, 포기한 것들은 영영 그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끝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그는 자신을 잃어버린다.
불확실의 바다 속에서 표류하며, 발붙일 땅 하나 찾을 수 없다.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허황된 가능성에 속아 넘어간 채,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단 한 번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가능성이란, 결국 선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는
그 모든 것 속에서 단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는 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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