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감싼 한 줄, 김밥

"손끝에서 피어난 익숙한 맛"

by torico


나는 김밥을 무척 좋아한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평소에 자주 해 먹는다.


어렸을 때 김밥은 소풍날에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엄마는 소풍이나 나들이가 있을 때면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싸주셨는데, 요즘처럼 시판 키트로 간단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직접 조린 유부에 볶음밥을 넣어 정성껏 만든 유부초밥이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손이 많이 가 보였는데, 엄마가 유부에 밥을 채워 쟁반에 두는 족족 집어 먹던 그 맛은 늘 꿀맛이었다. 김밥은 또 얼마나 두툼했는지, 재료를 김이 터질 만큼 가득 넣어 한 줄만 먹어도 사 먹는 김밥 두 줄은 거뜬히 대신할 정도였다.


나는 유부초밥을 더 좋아했고, 오빠는 김밥을 더 좋아했기에 소풍날이 겹치면 엄마는 늘 두 가지 도시락을 준비하셨다. 생각해 보면 꽤 번거로운 일이었을 텐데, 새벽부터 일어나 묵묵히 두 가지를 다 챙기던 엄마의 손길이 아직도 선하다.


커가면서는 김밥천국 같은 분식집에서 김밥을 자주 사 먹었다. 그런데 요즘 김밥집에서 파는 김밥은 이상하게 입에 잘 맞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김밥은 입에 넣으면 밥알과 채소가 부드럽게 어우러져 착 달라붙는 맛이었는데, 요즘 시판 김밥은 그렇지 않다. 특히 당근이나 오이 같은 채소를 볶지 않고 생으로 넣는 경우가 많은데, 입 안에서 다른 재료들과 따로 노는 듯한 까슬까슬한 식감이 아쉽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집에서 김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만드는 김밥의 핵심은 당근과 계란이다. 사실 다른 재료들은 없어도 크게 상관없지만, 당근과 계란만큼은 꼭 들어가야 한다. 나는 원래 당근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김밥을 만들면서 볶은 당근이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당근은 부드러워질 때까지 충분히 볶아 단맛을 살리고, 계란은 얇게 부쳐 채 썰어 폭신하게 듬뿍 넣는다. 참기름과 소금, 식초 몇 방울로 밑간 한 밥은 최소한으로만 얇게 펴 김 위에 올린다.


김밥은 바로 먹어도 맛있지만, 몇 시간 두었다가 먹으면 재료의 맛이 고루 어우러져 더 깊은 맛이 된다. 그렇게 완성된 한 줄을 먹다 보면, 어린 날의 도시락과 엄마의 정성이 문득 떠오른다.


IMG_1418.heic 현미밥을 넣어 건강까지 챙긴 나만의 김밥




재료

김밥용 김

밥 (참기름, 맛소금, 식초 몇 방울 넣어 밑간)

당근, 계란 (필수)

단무지, 맛살, 우엉 (Optional)


만드는 법

밥은 참기름, 맛소금, 식초 몇 방울 넣어 밑간 한다.

계란은 얇게 지단 부쳐서 채 썰어 준다.

당근은 채 썰어 부드러워질 때까지 충분히 볶아준다.

김 위에 밥을 접착제처럼 얇게 핀 뒤 재료를 넣고 잘 말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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