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속에서 찾은 단순한 위로, 잠봉뵈르

"밥맛 잃은 날, 버터와 햄으로 채운 한 끼"

by torico


이제 곧 직장인들의 오아시스 같은 10일간의 황금 명절 연휴가 다가온다. 사실 나는 결혼 10주년에 남편과 일등석을 타고 하와이에 가려고 마일리지를 모아 왔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여러 상황이 겹치면서 미뤄져 왔다. 그렇게 쌓아두었던 마일리지로 이번 연휴에는 뉴욕행 항공권을 티켓팅했다.


예전 같으면 해외여행을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마냥 설레고 즐거웠을 텐데, 요즘은 육아와 회사 일에 치이다 보니 여행조차 또 다른 과제처럼 느껴진다. 여유롭게 여행 계획도 세우고, 맛집도 찾아보고 하며 들뜬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데, 정작 나는 ‘가서 어떻게 하지? 밥은 어디서 먹지? 교통은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은 걱정부터 앞선다. 아마 J에다가 걱정 많은 나 같은 사람들은 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게다가 최근엔 더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여행을 2주 앞두고 ESTA를 신청했는데, 아이와 내 것은 몇 시간 만에 승인되었지만 남편의 것은 여전히 보류 상태다. 출발은 이번 주 일요일인데, 정작 본인은 태평하게 “오늘이나 내일쯤 나오겠지” 하며 여유만만하다. 반대로 나는 이미 지난주부터 ‘만약 끝내 승인이 안 나오면 어쩌지?’ 하며 최악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이런 걱정을 사서 하는 기질은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온 내 성격이다. 뭔가에 늘 대비해야 마음이 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불안이 배가된다. 그래서 요 며칠은 ‘애초에 왜 여행을 가려고 했을까. 그냥 집에서 쉴 걸…’ 하는 후회까지 들곤 한다. 걱정에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챙겨 먹을 의욕이 없다.


그런데 배는 또 눈치 없이 고프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버터와 햄, 먹다 남은 빵 한 조각이 눈에 띄었다. 그냥 대충 끼워 넣은 잠봉뵈르. 특별할 것 없는 조합인데, 한입 베어 물자 묘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바삭한 빵 사이로 스며든 고소한 버터와 짭조름한 햄이 단순하면서도 묵직하게 속을 채워주었다.


거창한 위로나 대단한 해답은 아니었다. 다만 불안으로 텅 빈 속을 단단히 눌러주며, ‘지금은 이 한 끼로도 괜찮다’는 작은 위안을 전해주었다. 여행을 향한 걱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빵 한 조각이 무겁던 마음을 덜어주고 있었다.



IMG_1445.heic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억을 감싼 한 줄, 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