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한 조각, 버터"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학교 앞에 줄지어 있던 분식집들이 생각난다. 떡볶이, 튀김, 순대는 기본이고, 가게마다 시그니처 메뉴가 하나씩 있어 골라 먹는 재미가 있었다. 집에 가면 저녁을 먹을 텐데도 이상하게 늘 허기가 져서, 친구들과 꼭 무언가를 사 먹고 갔던 기억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모퉁이에 있던 아주 작은 가게를 자주 떠올린다. 분식집이라기보다는 백반집에 가까운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친구들과 김치찌개를 자주 먹었다. 사실 김치찌개는 학생들이 굳이 돈 주고 사 먹을 음식은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메뉴였으니까. 그런데 그 집 김치찌개는 달랐다. 고소한 버터 향이 났기 때문이다.
김치찌개에 버터라니, 처음엔 의아했지만 먹어보면 알 수 있다. 김치볶음밥에 버터와 치즈가 잘 어울리는 것처럼, 김치찌개와 버터도 놀랍도록 잘 맞는다. 깊고 진한 맛 속에 은근히 배어드는 버터의 풍미가, 평범한 김치찌개를 특별하게 바꿔준다.
지금도 나는 김치찌개를 끓일 때 마지막에 버터 한 조각을 넣는다. 잘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 앞다리살이나 목살을 푹 끓이다가, 두부와 파를 넣고 마지막에 버터를 넣어 한소끔 만 더. 그러면 기름지지 않으면서도 고소한,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가 완성된다. 여기에 달걀프라이 하나만 곁들이면 정말 든든한 한 끼가 된다.
여럿이 김치찌개 하나를 시켜 나눠 먹으면 계속 리필해 주시고, 달걀프라이까지 내주던 따뜻했던 주인아주머니.
20년도 훌쩍 지난 일이지만, 그 시절의 기억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다. 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적은 돈을 내고도 배부를 때까지 챙겨주던 어른들이 있었고, 그저 아이이기에 존중받고 배려받던 순간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우리를 키워낸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다음 세대를 향해 그런 시선을 잘 건네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의 아이들은 아이답게 넘어지고 실수할 여유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너무 일찍 어른의 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김치찌개 속 버터 한 조각처럼, 우리 사회에도 그런 따뜻함이 조금 더 스며들었으면 한다. 누군가의 실수를 덮어주고,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고, 기다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이 아닐까.
재료
잘 익은 김치
돼지고기 앞다리살이나 목살 (삼겹살은 기름이 많아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설탕 1 티스푼
맛술 1 스푼
두부 반 모
대파 1대
버터 1조각
만드는 법
뚝배기나 무쇠냄비에 김치, 돼지고기, 설탕, 맛술을 함께 넣는다.
물을 붓고 약 20분간 푹 끓인다.
두부와 파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마지막에 버터 한 조각을 넣어 향을 더한 뒤, 바로 불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