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by 간질간질

싸다구씨는 따뜻하게 데워진 햇반을 전자레인지에서 꺼내 들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싸다구씨의 동거물인 '아무도 보지 않지만 켜져 있는 TV'. 다이나믹 코리아 답게 대선이 끝났지만 뉴스와 패널들이 쉴 새 없이 정치와 관련된 얘기를 쏟아내고 있다.


햇반의 비닐 껍질을 다 벗겨내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끝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한 싸다구씨. 분리수거를 할 때 햇반이 담긴 플라스틱은 재활용으로 내면 되지만 붙어 있는 비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이다. 게다가 햇반 용기는 사실상 분리수거를 한들 재활용이 어렵다는 기사들을 읽고 나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똥 뭍은 개와 겨 뭍은 개의 차이는 분명하고, 오십 보 백보의 차이는 명쾌하지만 깨끗하게 닦인 쓰레기와 그냥 쓰레기의 차이라. 기묘하다.


햇반이 식어 굳어지기 전에 또 다른 간편식 김치를 꺼낸다. 국과 탕과 주식을 겸하는 만능 메뉴. 라면. 검소하게 살기로 다짐했기에 계란은 이틀에 한번씩. 오늘은 계란을 먹지 않는 날이다.


면발을 먼저 먹을지, 라면 국물을 먼저 맛볼지 고민하는데 종편에서 새로운 소식을 전한다. 대통령 당선자께서 측근들을 거느리고 식사를 하러 가신단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전 검찰총장 때도 별 탈 없이 검찰청 내부에서 점심 식사하러 간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 기억이 난다.


왜 하고 많은 일 중에서 남 밥 먹는 걸 그렇게 챙기는지 이해는 간다. 밥이 중요하고 밥을 굶는 건 괴로운 일이 맞다. 한국전쟁을 겪은 싸다구씨의 부모님은 항상 밥 먹을 때 밥알을 남기거나 흘리면 안된다는 밥상머리 교육을 밥알의 숫자만큼이나 했다. 전쟁 통에 밥 먹는 것보다 더 치열한 일이 있을까. 싸다구씨도 항상 일하다가 부딪히는 사람들과 화해하는 말은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였다.


햇반 한 수저를 먹고 라면 국물을 넣어 오물거리니 행복하다. 계란 국물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검소한 삶을 위해 하루쯤 참을 수 있다. 프랑스 축구팀의 상징은 수탉이다. 프랑스에서 수탉을 뜻하는 말의 어원이 갈리아인을 뜻하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들은 것 같다. 갈리아는 옛 프랑스 지명이자 로마의 케사르에게 정복당했지만 유럽의 중심 땅을 차지한 그들의 자존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 왕가의 상징인 백합 대신 수탉을 사용했다고 한다.

싸다구씨는 프랑스의 갈리아 닭 이야기보다 앙리4세라는 일명 선량왕의 닭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종교전쟁을 겪고 피폐해진 프랑스의 왕이 된 앙리4세는 '적어도 내 백성은 일요일엔 닭고기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더 인간적이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강인한 갈리아 수탉보다 일주일에 하루는 백성들을 위한 고기가 되는 닭. 그리고 닭의 알. 달걀을 먹고 싶다 보니 싸다구씨의 뇌세포 온갖 이야기를 끄집어 달걀과 연결시키나 보다.


그래서! 대통령 당선자가 뭘 먹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지만 물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에서도 살인 용의자에게 형사는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묻는 것처럼 우리니라에서 밥은 가장 얇은 수준의 예의를 담은 인간적인 인삿말이니까. 근데 TV에서 뉴스에서까지 알려줄 만한 이야긴 아니다. 밥 안 먹고 일했다면 모를까 밥 먹고 다니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사람이 살아 있다는 말과 다를바 없는 말이다. '대통령 당선자 측근들과 같이 살아 있어!'와 뭐가 다를까? '대통령 당선자 멈추지 않고 계속 호흡 중'. 해가 동쪽에서 뜨는 일을 매번 뉴스에서 말해주지 않듯, 대통령 당선자가 밥을 먹는 건 알려주지 않아도 아는 얘기다. 게다가 측근들과 먹겠지 분쟁 중인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나 북한의 김정은과 밥 먹는 것도 아니지 않나.


싸다구씨는 결국 못 참고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 라면 국물에 풀었다. 일주일에 하루 닭고기를 먹는 17세기의 사람들도 있는데 21세기를 사는 싸다구씨가 계란을 못 먹는 건 인류 퇴보의 증거가 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퇴물이 된 싸다구씨는 사회의 퇴물이 되고 싶진 않았다. 계란 하나가 17세기 사람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한 나이 든 동양인의 자존감을 채운다. 그리고, 라면이 더 맛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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