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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M] 지식인과 오타쿠

뉴스레터 뉴닉

by 간질간질

뉴스레터

스팸. 열지도 않고 지우는 메일들이다. 아니 존재조차 모른다. 누구도 뉴스레터가 새로운 미디어를 상징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보통 새로운 일을 벌이기에 환경이 우리나라보다 나은 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뉴스레터가 새로운 시장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 뉴스레터가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현재 돌풍을 일으킨 뉴닉이라는 뉴스레터가 있다. 얼마 전 6만을 넘어서 10만에 가까운 구독자를 확보했다. 매스미디어-특히, 신문-에서는 줄줄이 구독자가 사라지고 있는데 뉴닉은 새롭게 늘어나고 있다. 신문은 유료 구독이지만 뉴닉은 '무료'라고 주장한다면 '애잔한'표정으로 '신문이 이겼다'라고 해줄 수밖에 없다. 뉴닉이 최근 펀딩으로 수억 원을 받은 것은 비밀도 아니다.


뉴닉이 인기를 끈 이유

'뉴스레터'라고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누군가 '성공'하면 껍데기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게 더 쉽고 더 그럴듯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뉴스레터'때문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뉴스레터'라는 형식-껍데기-때문이라면 현재도 '스팸 메일함'으로 바로 직행하는 수백만 통의 뉴스레터는 무엇을 잘 못했다는 말인가?


도구가 아닌 내용

성공의 키는 도구가 아니다. 도구가 훌륭하면 더 좋겠지만, 도구가 내용을 앞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구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얼리어답터'라고 부른다. 새로움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을 빼면 실제로 '내용'이 좋아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용이 좋으면' 도구가 후져도 상관없다가 맞다. 최고의 경우는 내용도 좋고, 도구도 어울리는 순간이다.


지식인 세대의 영향력 축소

어려서부터 신문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는 이제 40대를 넘어서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도 신문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신문을 읽지 않은 이유가 분명하다. 재미가 없으니까. 재미없는 이유 중 하나는 '어렵기'때문이다. '어려운' 이유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평소 신문을 읽지 않는 사람도 열심히 읽을 때가 있었다. 연예스포츠지가 전성기를 이룰 때 지하철에 누가 스포츠 신문을 놓고 가면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신문을 돌려 읽었다.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어야 한다고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야한 사진이 나오는 신문을 남자아이들은 얼굴이 벌게져 탐독을 했다.


종이라는 물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여전히 포털에서 뉴스를 읽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중요한 세 개의 덩어리와 '연예', '스포츠'는 당당하게 동급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재미있는 것'을 읽는다는 뜻이다. 더 이상 '어려운 지식인'인척 할 필요가 없는 세대는 신문을 끊고, 무료로 제공되는 포털의 기사와 무료로 제공되는 영상을 보게 된다.


젊은 세대는 바보?

활자에 목매인 사람들이 매우 진지하게 풀이하는 내용이다. 지금의 젊은 독자들은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으며, 매우 짧고 재미만 좇는다는 믿음이다. '활자가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을 깊게 한다'는 식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뉴닉'이 이 믿음에 적어도 금 가게 만들었다. 뉴닉에는 '연예'나 '스포츠' 이야기가 없다. - 빠져나갈 구멍을 위해서는 '거의'라고 해야겠다. 그런데도 구독자는 10만에 가깝다. 이 뉴스레터는 20대의 젊은 CEO가 만든다. 그리고 구독자도 20~30대가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뉴닉은 짧다. 하지만 짧은 것과 '깊이가 얕은 것'은 비례하지 않는다.


깊이의 문제가 아니라 '난이도'의 문제

뉴닉이 성공한 이유는 '쉽게'설명해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략하게 설명해 줬기 때문이기도 하다. 쉽고, 간략하게라는 단어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회사에서 보고서를 쓸 때나 남들에게 PT를 할 때 늘 나오는 단어다. 뉴스에도 똑같이 적용했다. 그뿐이다. 자신이 말을 걸고 있는 상대가 알아듣기 쉽고, 편하게 말을 했다는 것뿐이다. 대단한 게 아니다.


지금 세대는 억지 지식인을 흉내 내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타쿠'면 충분하다. 내가 좋아하는 내용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려움을 이겨내며 깊게 깊게 들어가고 나머지는 '쉽게' 전달해 주길 바란다. 오타쿠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 말고는 '쉬운 것'이 최고다.


말하는 능력은 대단한 SKILL이다.

아무리 많은 책에서 '리더십'이니 '협상 기술'이니 읽어도 실행하지 못하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뉴닉의 뉴스를 풀어내는 기술은 매우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뉴닉만큼 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실력 없이 말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 '나도 그리겠다'라고 한다. 멸종을 앞둔 세대는 '나도 하겠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는데 그런 세대는 '못한다'. 쉬워 보이지만 '힘 빼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익숙한 단어와 구절과 표현이 머리에 둥둥 떠다니고, '적어도 이 정도는'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힘을 뺄 수 있을까? 틀에 갇혀 있는 것이 그 세대의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 그 세대가 원하는 모양으로 최적화시켜서 현재까지 생존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은 엄연히-완전히-다르다. 사람들은 '뭐가 좋은지' 안다. '만드는 실력'과 상관없이 안다. 비슷하게 사람들은 '뭐가 맛있는지' 안다. 그 음식을 만들지 못해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맛있는' 뉴스에 열광하는 것이다.


매스미디어는 오타쿠 미디어와 쉬운 미디어로 덩어리가 나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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