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외면하는 매스미디어
사람들이 가진-확신은 있으나 근거가 희박했던- 믿음 중 하나가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한들 무한의 수에 가까운 바둑에서는 사람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서양의 체스에서 세계챔피언이 인공지능에 무너질 때도 동양의 바둑은 못 이길 거라 믿었다. 이세돌은 인공지능을 이긴-그것도 한 차례- 인간으로 남았다. 앞으로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인공지능이 바둑에서 사람을 못 이길 거란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수학적 한계'가 분명한 '수싸움'게임에서의 희망은 버렸지만, '창작'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는 여전히 인공지능보다 인간이 나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창작활동 중 하나가 글쓰기다. 글쓰기에 특화된 집단이 기자다. 기자의 창작물-소설이라는 뜻이 아니라 만들어냈다는 의미-을 기사라 부른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기사도 쓴다. 하필이면 다른 창작집단인 예술가들의 영역보다 '기사'영역에 먼저 발을 디딘 AI가 야속할지 모르겠지만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막내 기자들에게 주어지는 일 중에 하나가 '틀'이 갖춰진 기사를 생산해 내는 일이다. 지면도 '단신'부터 시작한다. '단신'은 틀이 잡힌 기사다. 디지털에서 더 심각한 문제인 어뷰징. 이런 기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기자'라는 타이틀을 기사 말미에 붙일지 몰라도 잘 나가는 매체의 기자들이 같은 족속이라 인정할리는 없다. 아무튼.
어뷰징 기사는 틀이 있어 단어를 교체해 끼워 넣기 하면 만들어진다. 약간의 검색을 하는 수고는 할지 몰라도 공개된 SNS나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구한 스토리에 단어 바꿔치기하는 단순노동에 가깝다.
어뷰징은 아니지만, 정형화된 기사들도 비슷하다. 주식시장의 주가 변화, 날씨 정보 등은 전형적인 단어 바꿔치기 기사다.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조립물에 가깝다. 이 기사들만 한정해서 보면 기사를 생산하는 것도 미디어업이라기보다는 제조업이다.
제조업에서는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조업에 가까운-일부 분야의- 미디어업에 AI 도입을 검토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끝까지 '창작'이라 주장하며 막내들에게 대량 복사(제조)를 시키는 행위는 그만두는 것이 낫다. 작은 벤처기업의 것이라도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적어도 조립물에 가까운 기사에는 AI 기술을 도입해야 효율적이다.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에게 맡기는 것이 정 거슬리면 해당 AI에게도 이름 하나 지어주면 되지 않을까? 그 이름을 기사 아래에 붙여주는 것은 물론이다. 적어도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모를 테니까...
포털과 미디어가 싸웠던 중요한 쟁점이다. 기사를 공급받은 포털이 어찌 감히 제 멋대로 기사의 중요도를 판단해서 기사를 배열할 권리를 가졌냐고 한참 논쟁을 했다. 결과는 '돈'으로 나버렸다. 돈 주고 사 온 기사를 최대한 중립적으로 배열하겠다는 포털에게 '돈' 없어 기사를 넘기면서까지 영향력을 지키려 애썼던 미디어의 목소리는 힘이 빠졌다. 포털을 떠난 미디어는 없었다. 극소수는 쫓겨나기도 했고, 나갔다 들어오긴 했다. 미디어는 아무튼 계속 지적질했다.
포털의 기사 배열은 이제 인공지능이 담당한다.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편집'에 사람의 관여도가 '거의'없다고 주장한다. 옆사람과 나의 기사 배열을 보며 줌으로 증빙이 된다. 각자 다르게 배열되니까.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뉴스 페이지의 기사 순서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보면, 적어도 '사람이 하는 일은 아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화면을 각각 다르게 배열할 인적자원을 투입하지 못한다. 이렇게 또 매스미디어가 꼭 붙잡고 있던 '전가의 보도' 하나가 힘을 잃는다. 매스미디어의 '어젠다 세팅'능력에 금이 갔다는 얘기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매스미디어의 강력한 무기가 와해됐다. 여전히 미디어의 세계-전통적인 유통채널 ; 종이와 TV'에서는 유효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는 디지털에서는 사라졌다.
대형 미디어의 경쟁상대는 같은 급의 미디어였을 텐데, 이제는 개개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싸워야 한다. 아직까지 국내 포털에서는 미디어로 구별된 취급을 받는다. '뉴스'라는 땅에 들어가려면 '제휴평가 위'라는 기준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유튜브에서는 다르다. 적어도 노출과 관련해서는 약간의 가중치를 받을지 몰라도 거의 수평적인 상황에서 개싸움을 해야 한다. 이름 있다고, 전통 있다고 사람들이 양보하거나 한 수 접어주는 것은 없다. '계급장'떼고 라는 말이 어울리는 딱 그 시장이다. 유튜브의 그 노출은 당연히 '알고리즘'이란 프로그램이 한다. 유튜브의 알고리즘 역시 AI라고 봐야 한다.
인간의 능력에 기대어 성장한 '매스미디어' 세대의 많은 핵심역량을 이미 '기술'이 잠식하고 있다. 중요하다는 가치 판단 영역도, 기사를 생산-현재까지는 일부 영역에 한정되지만-하는 능력도,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전문가의 감'보다는 '이용자들이 행적'이 기록된 'Data'로 판단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AI는 그 Data를 한 껏 끌어모은 Big Data로 일을 한다.
여전히 매스미디어에서는 '기자'라는 '생산 전문가'의 의사결정권이 더 강력하다. '기술전문가'나 '데이터 전문가'는 '생산 전문가(기자)'를 위한 부수적 역할로 한정 짓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몇 년 전에 미디어 업계 모두가 읽고 공부했던 뉴욕타임스의 보고서에서도 같은 문제가 등장한다.
미디어도 기술기반의 산업이 되어야 한다고 세상이 떠드는데 매스미디어는 지독히도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을 따른다.
AI는 포털에서 활용하고 있고,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NC소프트에서 AI App을 내놓고 실험 중이다. 서비스는 Paige. 이 앱에서는 AI가 하는 기사 요약이 제공되고, 퀴즈를 AI가 생성해서 내어 놓는다. 왜 게임회사에서 AI 콘텐츠 앱을 내놓았는지는 NC에 물어봐야겠지만 매스미디어가 '사람'에 집중하는 동안 '기술'은 다른 곳에서 집중하고 있다. 결과는 뻔하다. 기술이란 것이 처음에는 우습고 보잘것없지만 일정 수준이 넘어가는 순간 효율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효율을 발휘하는 순간에는 이미 앞서 있어 따라잡기 버겁다.
매스미디어는 바보라서 또는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에 투자할 돈이 정말 없다. 그동안 '해지 방어'-적합하지는 않으나 잘 어울리는 단어-에 돈을 많이 써왔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 세대는 이렇게 또 스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