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소비자의 진화 단계
매스미디어 세대에게 기자와 이용자의 관계는 '전달자'와 '수용자'로 위치가 확고했다. 수용자는 전달하는 내용을 '믿고 따르거나' 싫으면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전형적인 비대칭의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기사를 만드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는 거의 유일한 창구는 '출입처'라는 소수에게 허락된 장소뿐이었다. 그리고, '전달'은 매스미디어의 '융단 폭격' 방식의 일방적인 채널-종이와 TV-이 유일했다. 그나마, 수용자들의 의견은 '독자투고'나 '독자 의견'이라는 자그마한 구석을 차지할 수 있었을 뿐이다.
'구시렁'말고는 할 수 없었던 미디어 수용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앞서 말한 '기술이 가져온 환경변화' 때문이다. 술집에서 '구시렁' 거리는 것이 거의 유일했던 때는 여론의 대표는 '택시기사'였고, 서울역에 있던 사람이다. 나머지 대다수는 엄청난 숫자가 있으나 말하지 못하는 개미떼와 같았다. 그나마 아는 기자라도 있다면 힘줄 수 있는 세대였다. 수동적인 정보 수용자들은 환경의 변화를 활용해 벅스 라이프의 삶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커뮤니티는 '여론'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PC통신 시절은 너무 고루하니 인터넷 커뮤니티로 넘어가야겠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매스미디어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난도질'후에 '여론 취합'까지 이루어졌다. 적당한 '사건'이 발생하면 얌전했던 소비자들이 헐크로 변해서 괴력을 발휘했다. 이때부터 매스미디어는 '택시기사'와 '서울역 앞 시민'말고도 '여론'을 수집하는 채널로 커뮤니티를 엿보기 시작했다.
화가 나면 변신하던 매스미디어 수용자들은 이제 자기가 필요할 때 변신하는 슈퍼맨으로 한 번 더 업그레이드한다. SNS라고 불리는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매스미디어에게 슈퍼맨들은 짭짤한 취재원의 역할도 했다. 더 정확히는 '출입처'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슈퍼맨들의 SNS를 살펴보다 '기사 재료'를 발견하면 득달같이 기사를 써냈다. 모든 매스미디어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이들 그랬다.
슈퍼맨은 정체를 숨기는 수줍은 초인이다. 아이언맨은 다르다. '내가 스타크이자 아이언맨'임을 전혀 거리낌 없이 밝혔다. 유튜버로 대표되는 인플루언서들의 등장이다. 그리고 이들은 '출입처'의 역할을 떠나 '미디어'의 역할까지 하게 된다. 매스미디어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그냥 '유명인' 정도인 줄 알았는데, 이들은 기존 '매스미디어'의 밥그릇을 야금야금 가져가고 있다. 더 이상 수용자가 아니라 생산자를 겸한다.
이제는 밥그릇을 가져가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매스미디어'의 밥그릇을 깨려는 행동까지 감행한다. 특정 매체를 비난하는 것에서 더 정밀하게 '기자'들을 타깃으로 삼는다. 아직 기자 개인에게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끼치는 것 같지는 않다. 일부 젊은-그래서, 덜 단단한 멘털을 가진-기자들 중에 내상을 입고 스트레스 지수가 늘어난 사람들은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기자들의 이름과 얼굴과 기사를 모아 캡처와 메신저로 콘텐츠를 재 생산하며 즐기고 있다. 특정 기자와 매체의 랭킹-안 좋은-을 매기고 DB화-'박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하는 사이트도 만들어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자'들이 '유명인'이 되고 있다.
아직 미디어나 기자들에게 '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은 유명 정치인이나 힘 있는 사람들뿐이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이 계속되고 변호사들의 밥그릇이 비어 가면 언젠가 '기자'를 정조준하는 법적 대응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르겠다.
매스미디어의 기자들 내부에서는 신분 분할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매스미디어 피라미드의 위에 있는 선배들은 여태까지의 권력을 누리면서 여전히 기존 방식대로 살아가면 된다. 정년퇴직하기 전까지 버티면 된다. 굳이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대응방식이다.
하지만, 피라미드의 아래에 위치한 젊은 기자들은 기존 시스템의 몰락을 보면서 자기의 살길을 찾아야 된다. 그들에게 선택은 세 가지 정도 있어 보인다. 하나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기존 체제에 편입하는 방법이다. '기레기'라는 소리 들으면 어떤가? 인터넷을 안 보면 되는 거지.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선배들보다 더욱 근본 주의화-정통 매스미디어의 습성을 추구하는-된다. 두 번째 방법은 미련 없이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방법이다. 젊은 기자들의 이직은 별로 알려지지도 않는다. 피라미드의 정점 바로 아래에 위치한 핵심층의 이탈도 늘어나고 있다. 세 번째 방법은 '모르겠고'로 그냥 버티는 방식이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매스미디어의 입장에서는 '도움 안 되는' 기자들의 선택이다.
매스미디어는 '안락사'할 수도 없고 괴롭게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중이다. 아직 몰락하지 않은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을 포기하기도 어렵고, 새로운 미디어에 투자하기도 어렵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할 수 있는 기자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