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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M] 로마 몰락

매스미디어 이후의 세계

by 간질간질

로마

거대한 제국은 작은 영지 중심으로 쪼개지며 중세시대가 열린다. 로마 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덩어리'가 되는 프랑크 왕국도 있었으나 실질적인 운영 방식은 영지 단위였다. '매스미디어'란 로마제국의 시대가 저물고 '단위 미디어'라는 중세시대로 전환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게르만족의 이동

로마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게르만족의 이동이라고 한다. 게르만족이 자기 땅을 떠나서 로마로 들어가게 된 원인은 훈족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 제국'의 몰락도 비슷하다. '인플루언서'라는 게르만족의 이동이 있었다. 밀려든 인플루언서는 황제가 정점이 되어 다스리던 제국을 무너뜨리고 영지 중심 시대로 바꾸어버린다. 훈족의 압박처럼 인플루언서가 밀려 들어온(=생겨난) 원동력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이다.


동로마제국

로마제국이 몰락했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동로마 제국은 그보다 더 오래 수명을 유지했다. '매스미디어'도 제국의 영화를 되찾지는 못하겠지만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건 얼마나 유능한 '황제'와 '시스템'을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천년을 지켜낸 콘스탄티노플처럼 매스미디어는 자신의 영역을 잘 골라 지켜야 한다. 모든 땅을 지배하려 해선 안된다. 특정지역의 절대자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아마도, 정치 영역이 유력해 보인다. 아무리 인플루언서라 해도 정치권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정부 부서 및 고위관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매우 바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뜻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매스미디어의 주력군-정, 경, 사-의 장점을 살리기에도 적합하다.


영주

인플루언서들은 이미 '영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느슨한 동맹체로서의 국가인 MCN에 참여하고 있다. MCN업체는 인플루언서들의 상징적인 '왕'이다. 절대권력을 쥐고 있지는 못하지만 '너 왕 맞아. 왜냐하면, 난 너의 소속이니까'라고 하는 선언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힘없는 왕이 힘센 영주의 눈치를 보듯 힘이 센 영주(=인플루언서)는 왕도 함부로 못하고 때론 왕에게 반기를 들기도 한다. 거대한 매스미디어 제국의 영토를 따박따박 나눠 가지고 있다.


시민

농노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미디어 수용자 층은 '시민'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팬덤 문화의 '조공'이란 단어가 남아 있을 뿐이다. 거주지의 자유를 누리는 시민처럼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영주는 더 많은 백성이 남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시민은 원하면 인플루언서로 변신할 수도 있고, 농노에 가까우리만큼 '영주님'에게 목을 맬 수도 있다. 시민을 무시하는 영주는 살아남기 어렵다.


기사

황제와 직업군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던 로마 군단. 그중에서도 친위대. 마음에 들지 않는 황제를 갈아치울 정도의 권력을 누렸지만 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다. 친위대는 황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매스미디어라는 제국의 몰락은 친위대 역할을 하던 매스미디어 기자 집단의 위기이기도 하다.


단위 미디어로 재편되는 곳에서 기자들은 기사와 같은 형태로 발전할 것 같다. 기사가 계약관계로 영주와 맺어지는 것처럼 기자 역시 미디어와 '계약'관계로 변할 것 같다. 기사보다는 현대의 '프로선수'와 더 비슷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기자가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증명하면서 회사와 계약관계를 맺는 형태. '기수'중심의 서열 관계도 점점 희박해질 것이라 보인다. 두터운 팬층을 데리고 있는 기자라면 더 높은 연봉을 요구하고 받게 될 것이다.


기자가 계약관계가 되면 더 이상 '순환보직'이란 말도 필요하지 않게 된다.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자기 포지션-취재 영역-에 전문성을 높이려 하지 계속해서 바꿀 이유는 없다. 포지션이 비면 다른 기자를 데려와 그 자리를 메꾸면 된다. 더 이상 싫다는 기자를 붙잡고 실랑이할 필요가 없다.


몽골제국

가장 큰 복병은 몽골제국만큼이나 강력한 유튜브다. 게르만족을 이동시켰던 훈족의 역할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했다면, 유튜브는 알려진 세상의 대부분을 집어삼켰던 몽골제국과 비슷하다. 유튜브가 어떤 정책을 어떻게 휘두르냐에 따라 작은 영주들은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가 등장하는 영상에는 광고를 붙이지 않겠다고 하면 갑자기 '아이'관련 유튜버는 소득을 잃게 된다. '노란 딱지'로 불리는 '수익 제거'는 무슨 기준으로 발급되는지 모른다. 유튜브님만이 안다. 네이버나 카카오라면 국감에 불러서 호통치고, 찾아가고, 여러 가지 관계로 압박을 하겠지만 유튜브는 급이 다르다. 감히 대들 수 있는 미디어는 없다. 앞으로 몽골제국의 말발굽이 어느 쪽을 향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단지 '내쪽으로 오지 않기를'바라는 수밖에 없다.


매스미디어의 세대는 끝나가고 단위 미디어의 세대가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절대강자 몽골제국은 편입하던지 맞서던지 하라고 윽박지르는 중이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는 맞서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매스미디어는 맞설 힘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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