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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M] 단단한 덩어리

JTBC의 성장과 정체

by 간질간질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JTBC는 종편이다. 과거 TBC는 지상파였지만 전두환 신군부에게 뺐긴 후 수십년이 흘러 종편으로 부활했다. 고만고만한 수준에 머물다 손석희라는 걸출한 인물이 메인 뉴스 앵커 자리에 다시 자리를 잡으며 비상을 꿈꿨다. 그리고 마침내 시청률 왕좌-정확히 말해 시청률 1등을 한적은 없다. TV뉴스 시청률의 1등은 항상 KBS-에 올랐다. 더 이상 종편급이 아니라 지상파에서도 인정하는 매체가 됐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10년 넘는 권력이 없다고 하지만 JTBC의 1등은 그래서 씁쓸하다. 열흘은 넘었지만 10년의 절반도 되지 않는 시간에 시청률이 다시 '종편'수준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MBC는 지상파라고 해도 TV조선은 종편인데, TV조선에게도 시청률이 뒤지는 상황이 가끔 나타난다.


JTBC의 잘못

JTBC가 잘 못한 게 있을까? 아니 그보다는 JTBC가 뭘 잘했길래 시청률 1등이 되었는지부터 보는 게 맞겠다. 앵커도 그대로이고 브랜드도 그대로이고, 기자들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순위가 올랐고 내려앉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여기서 '저널리즘'을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저널리즘'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저널리즘'이란 치트키에 가까운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모든 것이 뒤섞여 버리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에서 '저널리즘'은 어떤 재료를 써도 비슷한 맛을 만드는 조미료와 비슷하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저널리즘'은 빼야 한다. 그럼 어떤 것을 잘했을까?


특종

특종이 JTBC를 올려놓았을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최순실 태블릿 PC를 단독 보도하고 이슈를 크게 키워서 결국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인 대통령 탄핵까지 갔으니까.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헌재에서 막혔으나 촛불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헌재를 통과해서 새로운 대통령 선출까지 갔다. 말이 샜다.


그래서, '특종'일까? 특종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럼 가장 많은 특종을 하는 '디스패치'는 왜 JTBC반열에 오르지 못했을까? 설마, 여기서도 사농공상처럼 수준을 나누려는 '연예매체'라는 속성 때문이라고 분석할까? 그래선 안된다. 그러면 '저널리즘'을 배척했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다. '특종'은 파괴력을 키운 것은 맞을지 몰라도 그게 전부가 아니다.


MBC와 TV조선은?

MBC와 TV조선의 시청률이 최근 오르고 있다. 물론, 김어준의 뉴스 공장도 엄청나게 오르고 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뉴스공장은 특종이 좀 있다. 그런데, MBC와 TV조선의 특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나? 기억나는 것? 최순실 태블릿 PC만큼 기억나는 것은 없다. TV조선의 '미스 트롯'이라면 모를까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니, '특종'이 시청률을 끌어올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듣고 싶은 이야기'

매우 간단하다. 저널리즘을 몰라도 사람들이 궁금해서 갈구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라는 느낌의 해소다. '내 생각에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고. 누가 알려주면 좋겠는데...'라는 지점을 알려준 것. 이 것뿐이다. 최순실로 촉발된 사건 역시 모든 미디어가 '대통령 문제없어'라고 떠들 때 '뭔가 이상한데'라는 궁금증을 해소해 준 것이다. 태블릿 PC라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와 함께. JTBC는 바로 이 지점에 가장 충실했다. 그때 정점에 올랐다.


MBC와 TV조선이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조국 사태로 촉발된 지금 상황에서 '검찰이 뭔가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집단이 있다. 언론사라고 인정받지 못하는-기존 매스미디어는 아직도 언론인이나 언론으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뉴스공장'이 줄기차게 주장해도 '뭔가 찜찜'하다. 이때 MBC가 '지상파'라는 좋은 허우대를 가지고 '검찰 문제 있는 거 아냐?'라는 주장을 강하게 하기 시작했다. '검찰이 뭔가 이상해'라고 생각하는 지지자들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현재 정부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 시원스레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광화문에 나가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렸다. '애국 시민의 절절한 마음'을 '제대로' 시원하고, 일관되게 이야기해주는 채널은 TV조선뿐이다. 가자!


JTBC의 잘못

JTBC를 좋아하는 집단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보도국의 기자들은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기사를 사람들이 듣고 싶은대로 만들라는 말이냐며 속에서 부터 울컥할 것이다. 하지만, '저널리즘'을 앞세우는 순간 '국민이 나보다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풀어야 한다. 앞뒤 사정을 잘 모르는 국민들에게 '저널리즘'의 심장을 가진 미디어가 맞춰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더 중립적이고 더 객관적인 내용을 풀어냈다. JTBC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JTBC 실망'이라는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다. 간단히 말하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미디어'를 떠나간 단순한 사건이다.


잘잘못의 문제?

여기서 '잘잘못의 문제'를 먼저 풀고자 덤비는 것은 지금 세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건 전형적인 '매스 미디어'의 세대가 접근하는 방식이다. 국민이 기자들보다 못났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국민이 기자보다 더 잘 알 수 있으니 듣기 원하는 이야기만 하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매스 미디어의 '느슨한 이용자 덩어리'가 더 '선명한(=단단한) 이용자 덩어리'로 나뉘었다는 것이 바른 해석이다.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다. 적어도 현재는 그렇다. 단지 '믿음'에 근거해 '진실이라 생각되는 것'을 보도하는 것이다. 어느 편에 설지 매스미디어는 선택한 것이고, 소비자 역시 어떤 미디어를 들을지 선택한 것이다. 서로 불만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한 곳은 아프다. 미디어 역시 돈과 관련된 업종이니 더 아픈 쪽은 미디어다. 소비자 역시 아프긴 하다. 원하는 내용을 듣지 못하는 정신적 대미지라 얼마나 아픈지 수치화하기 어려워 덜 아파 보일 뿐이다.


단단한 덩어리

이것이 새로운 세대의 미디어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더 잘 설명해 주는 미디어. 내가 알고 싶은 이야기를 더 깊게 풀어내는 미디어. 그런 미디어에 더 단단히 뭉치는 것이 현재 미디어 소비세대다. JTBC의 잘못은 단단함을 위한 한 걸음을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잘못'이라고 말할 문제는 아니고 '선택'의 문제이지만 결과적으로 JTBC에겐 아픈 상황이다.


MBC와 TV조선은 단단해지도록 보도의 초점을 더 좁혔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드라마의 잡지사 편집장의 내뱉은 대사처럼 '엣지'를 세운 거다. '엣지'를 세우는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따지는 것은 '저널리즘'이라는 Bible에서 볼 때 돼지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안되는지 따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매스미디어는 '저널리즘' 측면에서 어느 곳에도 서기 어렵다. 그 빈자리를 '저널리즘'에서 자유로운 미디어들이 챙겨가고 있다. 뭐가 맞을까? 지금 세대에서는 후자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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