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야기지만 한국인도 많이 아는 삼국지연의. 그중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의 장소 '장판파'. 그 배경의 전설 중 조조의 백만 대군 속에서 유비의 아들을 구한 조운이 아닌, 장판파의 다리에서 홀로 백만 대군을 막아낸 장비의 이야기다. 소설이고 중국인 특유의 과장을 감안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한 명이 1백만 명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 한들 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마는 인상적인 장면은 맞다!
기성 미디어 VS 뉴스공장
매스미디어 세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이자 장면이다. 아니 현재 진행 중인 일이다. KBS 대 유시민의 이야기처럼 누가 맞네 틀리네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그건 더 정치적이고 정파적인 사람들이 충분히, 알아서, 멋대로 해석하고 있으니 나까지 끼어들 필요가 없다. 이번에도 역시 할 얘기는 '어떻게?'에 가깝다.
이야기 구도를 편히 잡기 위해, 조조의 백만 대군은 - 숫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기성 언론사의 역할이다. 기성 언론사에서는 '조국 사태'-여전히 이 말의 정치적인 해석은 하고 싶지 않다-에 백만 개가 넘는 기사-아니라고 지적질할 거면 비유를 위한 소설적 장치라고 말하련다. 아무튼 '엄청나게 많은 기사'는 맞으니까-를 쏟아냈다. 족히 백만 대군스럽다. 김어준의 뉴스공장만 외로이 백만 대군에 반대되는 기사를 토해냈다. 생긴 것 마저 비슷한 김어준이 자연스럽게 장비의 역할이다. 또 다른 이유로 '홀로'맞서는 형세로 볼 때 어울리기 때문이다.
힘 VS 힘
지금의 싸움이 팽팽한지 아닌지 각자의 판단과 생각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뉴스공장이 라디오 청취율 1위를 했다는 기사는 장비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상승한'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TV와 라디오 청취율이 떨어지는 요즘에! 게다가 그 바닥 1등이라잖나!
백만 개의 기사 대 하루 약 2시간도 안 되는 라디오 방송의 대결. 장비도 혼자 싸웠다고 했지만 분명 부하들과 같이 있었을 테니 방송에 등장한 사람들이 여러 명이라도 김어준을 장판파의 장비로 비유하는 것이 아주 억지스럽진 않다. 매스미디어 전체를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이 맞짱 떴다는 의미다. 어떻게?
백만 VS 1
허상이다. copy & paste라는 말로 설명 가능하다. copy&paste라는 말을 모른다면 이미 종말 세대에 가까운 것이다. 물량으로 승부하는 과거의 매스미디어 세대가 끝나간다는 말이다. 매스미디어는 사실 '(수량적인) 매스 기사 수'가 아니라 '(영향받는) 매스 이용자'에 전적으로 연관 있는 힘이다. 백만 개의 기사가 쏟아졌지만 copy & paste로 생산해 낸 허수아비 숫자와 같다. '받아쓰기' 기사, 그래서 다른 기사들과 다를게 하나 없는 내용들을 계속해서 복사해 낸 수준이다. 반면 김어준의 기사-방송-는 내용이 다른 것과 명확히 구분된다. 조조의 백만 대군이 장판파를 뚫지 못한 것은 장비에 필적하는 장수가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만이 중요하지 않다. 결국 '얼마나 다른 내용'의 기사를 만들었는가의 차이다. 기존의 매스미디어가 그렇게 자랑하던 '특종'과 비슷하다.
내 기준 VS 니 기준
기존 기자들은 이른바 '언론고시'를 치른다. 준비하고 맞춰서 훈련받는다. 한정된 수단으로 전달되던 기존의 매스미디어에서는 필요했다. 최고의 효율을 위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기사를 전달해야 했다. 그 '기준'을 맞추기 위해 기존 매스미디어는 끊임없이 훈련시키고 정형화했다. 그러다 보니 '논조'라든지 '편집 기준'이라든지, '중립성'이라든지, 수많은 전문가 집단인 기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기준을 세웠다. 그래야 효율적이었고 그 시대에 딱 들어맞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대신, 독자들은 기성복에 몸을 맞추듯 스스로 기준에 부합하는 '소비'능력을 갖춰야 했다. '한자'와 '세로 쓰기'가 '한글'과 '가로 쓰기'로 바뀌는 것은 매스미디어의 효율적인 변신이었다. 자연스럽게 기자는 '기수'로 정리가 되고, '저널리즘'이라는 Bible로 맞춰나갔다. 자연스레 기자들은 '차별화'되고, 차별화에 영향력이 더해지면서 '특권화'됐다. 소비자들도 '신문은 읽을 줄 알아야'식으로 스스로를 '특권화' 했다. 그렇게 똑같이 해왔다. 이번에는 여러 미디어가 동맹처럼 똑같이 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기존의 틀을 깼다. '기자'가 아닌 사람이 신성한- 그래서 Bible이라 내가 부르는-'뉴스'를 진행하는 불경한 짓을 한다. 거짓 선지자로 돌을 맞아야 할 텐데 사람들이 좋아한다. 라디오라는 한정된 수단-그래서, 편성시간은 목숨같이 지키던-이었는데 기존의 틀을 깨 놓고-남의 프로에 난입하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요즘 청취자의 기준에 맞춰서 설명한다. 너무 많이 끼어든다고 욕을 먹지만 계속해서 내 기준에 맞추라고 타이르기보단 니-소비자들- 기준에 맞춘다. 멸종 세대의 '특권'에 끼지 못하던-사실은 끼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몰렸다. 왜? 내 기준에 맞춰 주는 미디어-기존 미디어가 인정하든 말든-에 열광하는 건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한 일이다.
전통 채널 VS 채널 총합
매스미디어는 늘 '최적'을 위해 계속해서 기준을 높여왔다. 신문은 활자고 이미지다. 정체된 텍스트다. '펜의 힘'이 신문의 힘이다. 인터넷으로 변해도 똑같다. 지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Bible에 빠진 미디어들의 한계다. 방송이라고 다를까? 9시-어느새 8시가 메인처럼 되었지만-뉴스의 포맷과 편성은 감히 '비전문가'가 왈가왈부할 요소가 아니다. 'TV 뉴스'는 그들의 철옹성이다. 인터넷이 중요한들 'TV가 최우선'이다. 영향력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족보'에 목매며 제사를 지키는 뼈대 있는 집안의 종가처럼 편집국과 보도국은 고립됐다. 그들의 선배들이 이룩한 전통과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온갖 고난을 겪어서 만들어 낸 시스템. 옛날의 소비자와 달리 알아듣지 못하는 요즘 소비자들의 수준을 의심한다.
뉴스공장은 라디오인데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라디오인데 보여준다. 귀로 들어야 하는 라디오가 왜 영상을 보여주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 바로 '멸종위기'라는 증거다. 라디오 채널인데 라디오로 듣지 않아도 된다. 라디오인데 팟캐스트로 듣는다. 라디오 없이 wifi와 스마트폰으로 듣는다. 무슨 말일까? 종이와 TV 수상기가 메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디어의 힘의 원천을 진정 알고 있는 것이다. '매스 이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 기존 미디어가 기존 채널과 기존 방식의 강화를 위해 몸부림칠 때, 더 많은 이용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뉴스공장은 기존 방식을 깨뜨렸다.
장판파의 승부처
실제 숫자가 핵심이다. 기사수만 봤을 때 백만 대 1의 승부였을지 모르지만, 추종자(=이용자)의 수를 봤을 땐 비등-적어도 대거리할 만한 숫자-했을 것이다. 추종자를 누가 더 많이 가졌냐는 요소. 더 많은 추종자를 갖기 위한 멸종 세대인 매스미디어와 멸종 세대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전혀 아닌 라디오의 싸움. 그 중심엔 기존 매스미디어의 세대가 넘기 힘든 벽을 우회한 기자 아닌 언론인-'잡놈'이라 불러도 상관없는-이 있다. 그리고 도도히 맞짱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