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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세대 종말

by 간질간질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어른일수록 쉽게 내뱉는 말이다.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될수록 쉽사리 말하고 같은 세대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수긍한다. 우리나라의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어른들에게는 유효한 말이고 별 다른 거부감 없이 공감한다. 이런 어른들의 세상과 집단을 한 묶음으로 만들면 '세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세대보다 넓고 적절한 표현이 있으면 좋으련만 아둔한 머리라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세대 종말

'세대차이'라고 부르려니 너무 가볍다. '세대 차이'는 견해가 달라 서로 이상하게 생각하는 정도의 갈등이라면 '세대 종말'은 세대 안에서는 아무런 질문이나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삶의 방식을 공유하던 세대가 사라지는 것에 가까운 의미다. 멸종 위기에 처한 세대에게 '밥심'이란 단어에는 골수가 저리는 절절함이 담겨 있겠지만, 이제 사회의 중심이 되어가는, 배고픔 모르고 자란 세대에게는 단순히 '배고파 힘을 못 쓰는 상태'를 뜻하는 관용어구일 뿐이다.


멸종 시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지만 멸종은 순식간에 진행된다. 고생대를 지배했던 공룡의 전성시대를 겪던 먹잇감들에게는 평생이 다하도록 끝나지는 않는 영원이었지만, 현재 인간들에게 공룡의 시대는 영화 '쥐라기 공원'의 상영시간만큼의 짧은 기간일 뿐이다. 시대보다 짧은 세대의 종말은 '어느새' 완성된다. 그 시기를 겪을 때는 알 수 없지만 뒤돌아 보면 순식간에 변해 버린 것을 알게 된다.


칼질의 미학

어떻게 케이크를 잘라야 먹기 좋을지 모르는 것처럼 애매한 구분 때문에 미뤄왔던 글을 시작해 봐야겠다. 여러 가지의 층이 겹겹이 쌓여 있는 케이크를 잘 잘라내야 먹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것처럼 종말을 앞둔 세대의 모양을 솜씨 좋게 나눠야 할 텐데 묵은 손목과 무딘 머리가 따라줄지 모르겠다.


조국

지금 우리는 여러 세대의 종말을 보고 있다. 첫 이야기는 '매스미디어 세대'의 종말이다. 당연히 여겼던 신문과 TV로 대표되던 뉴스 소비의 당연한 방법이었던 매스미디어. 당연했던 뉴스 소비 채널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과 이유.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들. 매스미디어 말고 다른 세대의 종말도 있다. '한국형 기독교 세대'의 종말, '기수로 구분되던 세대'의 종말, '산업형 직장인 세대의 종말'. 가장 흥미로운 사건은 2019년 하반기에 터진 '조국 사태'다. 이 일은 여러 가지 세대의 종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

지금은 혼란스러운 상황이겠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상당한 사회적 '에너지'가 이 사건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결과'에 따른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는 '황당'한 결과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정의는 승리한다'는 결과일 수도 있다. 보다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결과'가 아닌 결과가 나오기까지 사용된 사회적 에너지의 집중이 이끌어 낼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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