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oM] 히어로와 빌런

유튜버의 힘

by 간질간질

지상파와 유튜버

지금 우리는 매스미디어 세대의 종말을 보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은 약자와 강자가 맞붙는 상황을 묘사하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히어로와 빌런들의 싸움이란 표현이 더 낫다. 다윗은 알려지지 않은 시골 촌뜨기 젊은이였지만 골리앗은 그 동네 유명인이었을 터다. 유명인과 무명인의 싸움이었다. 지상파와 유튜버의 싸움은 그래서 히어로와 빌런의 싸움에 가깝다. 지상파는 유명해서 모두가 알고 있고, 못지않게 유튜버도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히어로물의 주인공은 배트맨이지만, 조커처럼 주인공 못지않게 유명한 빌런도 있다. 히어로와 빌런이 맞싸움을 하는 상황. 지상파와 유튜버가 맞붙은 지금의 모습이다.


한 걸음 떨어져서

'조국 사태'라는 표현이 불편하지만, '사태'란 단어는 적절하다. 그만큼 사회가 뒤흔들리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조국이 맞네 틀리네라는 뻔한 논쟁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한 발자국 떨어져 봐야 한다. 손석희 앵커가 유행시킨 '한 걸음 더 들어가겠습니다'보다 관망을 위해선 한 걸음 떨어져야 한다. 자세히 보려는 것이 아니라 넓게 보기 위함이다.


KBS와 유시민

KBS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못지않게 유시민도 꽤나 알려진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어로와 빌런의 싸움이지 다윗과 골리앗이 될 수 없다. KBS가 빌런인지, 유시민이 빌런인지는 관심 없다. 하지만, 구분과 비유의 적절함을 끌어내기 위해 유시민을 히어로로 놔야 한다. 왜냐하면 보통 히어로는 소수이고 빌런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가 불편하면 바꿔도 된다. 슈퍼 악당과 싸우는 어벤저스로 해도 된다. 하고 싶은 얘기는 누가 착한 놈인지 구분하는 것이 아니니까.


KBS는 지상파의 상징이자 큰 형이며, 우리나라 TV 뉴스 시청률 1등을 유지하는 절대 강자 매스미디어다. 유시민은 유명한 저자이자 전직 장관이고, 지금은 유튜버를 자칭하고 있다. 노무현 재단 이사장인 것은 배트맨인 브루스 웨인이 사실은 백만장자라는 설정과 비슷한 것이라 치련다. 어쨌든 수백 명이 한 명과 싸운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KBS 뉴스를 만드는 보도국엔 수백 명의 기자가 있다. 유시민은 혼자다. 도와주는 스탭이 있다고 따지면 배트맨에게도 알프래드라는 집사가 있었으니 그냥 넘어가자. 다수대 소수의 싸움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대등한 싸움

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수백 명의 기자들이 어떻게 유튜버-거듭 말하지만 백만장자라는 설정과 비슷하다고 해도- 1명과 맞대응을 할 수 있을까? '세대 종말'의 한 장면, 아니 세대 종말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Bible

지상파라는 엄청난 권력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을 알아야 한다. 이 사건의 진실? 그런 건 매스미디어가 받드는 '저널리즘'의 관점에서나 궁금할 내용이다. '저널리즘'은 자신의 시간이 지나가 버린 매스미디어의 마지막 Bible일지 모른다. 마치, 구한말의 선비가 목숨을 내어 놓으면서까지 지키려던 '유교'처럼 말이다. '진실 게임'으로 보면 더 혼란스럽다. 그냥 순수하게 '힘'으로 해석하면 풀린다. 그리고, 지금 세대를 지배하고 있는 '돈'으로 봐도 풀린다.


힘 대 힘

매스미디어의 힘은 '매스'에 있다. 내용을 만들고,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 내용을 받아들이는 도구를 조합해서 결국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매스-대규모의 사람-에 도달시키는 힘. 영향력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매스'다. '매스'에 도달시키기 위해 갖췄던 매스미디어의 넘볼 수 없던 능력을 1인 유튜버가 대등하게 갖게 됐다. 엇비슷한 힘을 훨씬 더 저렴하게 말이다.


카메라 VS 핸드폰

대표적으로 ENG 카메라가 있어야 방송 영상을 만든다. 방송뉴스에 항상 등장하는 '거대한 카메라 돌리는 장면'은 지상파의 힘을 과시하는 상징이다. 방송화면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HD급, 그리곤 4K로 넘어갔다. 매스미디어는 생생한 화질을 잡기 위해 수많은 장비를 갈아치우며 아무도 못 따라올 '벽'을 세웠다.

그런데, 유튜버는 핸드폰으로 가볍게 그 벽을 우회한다. '화질의 잡티'를 잡아내는 매스미디어 소속 전문가의 눈썰미는 졸지에 '오버 스펙'이 되어버렸다.


편집장비 VS 편집 툴

고가의 특수 장비와 고가의 편집 툴과 고가의 전문가를 갈아 넣어서 만들어내는 편집. 무료보다야 낫지만 성능 좀 괜찮은 노트북에서도 돌아가는 편집 툴로 만들어도 사람들이 본단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본다'는 사실이지, 전문가의 눈높이가 아니다.


전파 송출 VS 인터넷

중계차의 위용은 최신예 전투기에 맞먹는다. 하지만, 최근 중동의 유전을 폭파한 건 전투기보다 훨씬 저렴한 드론이었다. 아무나 사용 못하는 전파 송출 장비와 인프라 대신 인터넷망이면 된다. 유튜버에게 드론이 주어졌다.


Cable VS Wifi

지상파 말고 여러 개의 채널을 보려면 케이블 깔아야 했다. 아니면 위성안테나를 달아야 했다. 요즘은 IPTV로도 된다. IP TV 역시 인터넷. 게다가 무선인 Wifi로 돌아다니면서 TV가 아닌 것으로도 볼 수 있다.


TV VS 스마트폰

OLED TV로 보면 좋다. 하지만, '반드시'는 아니다. 중요한 점이다. 요즘 '리모컨 전쟁'이란 단어는 없어졌다. 아이와 부모, 부부간의 '리모컨 전쟁'은 종말을 맞이하는 세대에서나 있는 일이다. 모두가 자기만의 영상 수신기를 가지고 있다. 스마트폰은 전화기가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이 된다. 카메라, MP3 플레이어, 내비게이션 그리고 손 안의 TV.


채널 VS 유튜브

채널은 중요하다. 종편들은 살아남기 위해 좋은 번호를 놓고 싸웠다. 대부분의 종편은 20번 보다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종편보다 기득권을 가진 지상파는 10번 내외의 번호를 여전히 차지하고 있다. 목숨을 걸 정도로 치열한 채널전쟁이 유튜브에는 없다. 채널 대신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알아서 채널 역할을 대체하며 리스트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 이용자는 직접 '구독'이란 행위로 자기만의 편성 채널을 만들어 버린다.


인터넷과 유튜브, 스마트폰

돌고 돌아 다 아는 얘기로 결론이 맺어진다. 지상파는 엄청난 비용과 자원을 쏟아부어 매스에 도달하는데, 유튜버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유튜브로 매스에 도달한다. 오히려, 유튜버가 우위에 있는 부분도 있다. 바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 '충성 독자'. 지상파는 부러워도 갖지 못하는 더 단단한 '매스'(집단)다. 지상파도 충성 독자가 있다. 하지만, 지상파의 충성 독자는 누군지 알 수 없다. 유튜버는 누군지 개인을 특정할 수는 없어도 충분히 구분해서 알 수 있는 구독자를 갖고 있다.


가마솥밥과 햇반

사람들은 밥을 먹는다. 누군가는 눈물 흘려가며 볏짚과 나뭇가지로 불을 지펴 만든 거대한 무쇠 가마솥밥을 먹으며 배부르다고 할 때, 누군가는 햇반을 먹고 배 부르다고 한다. 어느 쪽의 밥맛이 좋은지 물어보면 '가마솥 밥'이 더 맛있다고 하겠지만, 어느 것을 더 자주 먹을 것이냐고 물으면 햇반일 것이다. 무쇠 가마솥밥과 햇반의 대결이 매스미디어 지상파와 유튜버의 대결이다. 승리의 요건이 무엇인지에 따라 누가 승자가 될지는 각자 판단한 일이다. 고생스럽게 무쇠 솥밥을 짓는 사람들이야 '밥맛'이라고 주장할 테고, 햇반을 판매하는 사람들이야 '소비량'을 따질 것이다. 매스미디어는 여전히 '고품질'이란 것을 따질 것이고, 유튜버는 '조회수'를 이야기할 것이다. 매스미디어 세대의 승자와 유튜버를 주로 소비하는 세대 모두에게 누가 이길지 따져 볼 필요도 없다. 서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oM

그냥 있어 보이려고 붙인 제목이다. 여러 가지의 종말(End) 중에 매스미디어(M) 세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keyword
이전 01화[프롤로그] 세대 종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