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양들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대상이 떠올랐다

by 간질간질

이반이 나타나자 소란스러운 상황이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이반의 덩치와 어둠에서 더 번뜩이는 커다란 눈은 모든 양들의 시선을 모으고 조용히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소란스럽던 양들 중 누구도 이반에게 감히 묻지 못할 만큼 양들은 두려움에 침묵했다. 늑대가 양을 잡아먹지 않을 것을 알지만, 본능은 양의 심장에 살고 싶으면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침묵의 시간이 흘러간다.


"늑대들은 이 죽음에 관련이 없다. 그리고, 개들의 답변은 늑대가 아닌 개들에게 들어야 하지 않겠나?"

이반의 답변이다. 수많은 질문들이 이어질 수 있겠지만 양들은 누구도 질문하지 못했다. 힘없는 개인들이 모인 군중의 힘이 벽에 부딪히면 그대로 소멸되지 않는다. 응집된 힘은 약한 고리를 향해 쏠린다. 적당한 대상이자 약한 곳을 찾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비겁한 양들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대상이 떠 올랐다. 누구도 얘기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모든 양들의 시선은 뒤쪽의 보리스에게 향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직은 염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때 공중에서 누군가 물었다.

"개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슈잉이다. 슈잉이 불꽃을 당기자 모든 양들의 두려움으로 응축된 질문이 터졌다.

"어서 이야기를 해라!", "자신들의 위치가 빼앗긴 것 때문에 일으킨 치졸한 복수 아닌가?", "왜 말을 하지 못해?"

상식적인 질문에서 감정적인 질문으로 그리곤 근거 없는 확신에 찬 호도로 여론은 흘러갔다. 그리고 남들이 다 들리게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일부 양들무리에서는

'멍청한 개들', '밥만 축내는 것들', '이리와 붙어먹는...' 등등 자기 마음속에 있는 모든 부조리와 문제점들의 원흉으로 개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웅성거림이 생겨났다.


보리스는 당황했지만 티를 낼 수 없다. 후퇴도 질서 있게 해야 한다. 그 정도의 연륜은 쌓아뒀다. 바스코라면 침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지만 보리스는 그럴 수 없었다. 뭔가 이야기를 해서 군중의 힘을 돌려야 했다.

"먼저, 양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저도 이번 사태가 엄중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철저와 조사가 이루어져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개를 대표해서 얘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제가 답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지금 양 마을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께서 대답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말에 양들의 머리가 일제히 라훌과 이반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누구도 묻지 못했다. 늑대들은 으르렁 거리지도 않고, 이빨을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양들은 누구도 외람되게 질문을 하지 못한다. 일부 양들은 누군가 질문할 용자를 찾았지만, 개에게 질문을 던졌던 슈잉은 이미 어둠 속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양들은 이반과 라훌을 쳐다봤다. 이반은 아무 말 없이 들어가 버렸다. 양들은 당황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양들은 늑대에겐 본능적으로 대들지도 따지지도 못한다. 물이 꽉 막혀 흐르지도 못하고 고이듯 양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집으로 돌아가지도, 그렇다고 답을 내놓으라고 이야기하지도 못했다.


"이만 집으로 돌아가시죠. 우리의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현명한 늑대와 충성스러운 개들이 날이 밝으면 우리들에게 답을 알려주실 겁니다. 그렇지요? 라훌님? 그리고 보리스님?"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라훌 옆에 중후한 양 한 마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시르였다.


실제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르겠지만 나시르는 라훌과 보리스를 쳐다보고 나선

"두 분이 동의하셨으니 내일 다시 모이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재와 이전의 수호자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끝맺음을 한다.

그리고 나시르는 라훌과 보리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젊은 양의 부축을 받으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양무리들도 나시르의 뒤를 따라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양떼는 회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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